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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대용 약물 원초적 불량 분통 터져”

10개 품목 조사 용량 불일치 제품 상당수 … 수급대장 위반 의·약사들 소송 준비중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마약 대용 약물 원초적 불량 분통 터져”

“마약 대용 약물 원초적 불량 분통 터져”

제약업체가 공급하는 향정신성의약품의 상당수가 수량이 일치하지 않거나 파손된 상태로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의·약사들이 집단 반발하고 있다.

”이럴 수가….”

지난 4월3일 서울 강남구 서초동 대한약사회 대강당. 시중 병·의원과 약국에 공급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이하 향정약품)의 불량 상태를 조사하던 약사회 직원과 외부 참석자들은 조사결과에 경악했다. 마약 대용 약물의 유통에 문제가 많다는 소문에 따라 실시된 이날 조사에서 조사 대상 향정약품의 21.2%가 약통의 겉포장에 기재된 용량보다 실제 용량이 많거나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고, 11.8%는 파손된 의약품이 포함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 심지어 일부 제약사의 약품의 경우 무려 80%가 약통 포장에 밝힌 수량과 실제 수량이 불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제약사가 생산하고 있는 향정약품의 상당수가 수량이 일치하지 않거나 파손된 상태로 공급되고 있다는 의약계의 풍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모자라거나 남고 가루 된 채 공급도

향정약품은 강한 환각작용을 일으키고 중독 효과가 있어 다량 복용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마약 대용 약물. 때문에 정부는 향정약품을 의사 처방이 필수적인 전문 의약품으로 지정하는 한편 법상 마약류로 구분해 생산, 유통, 소비 전반에 걸쳐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히로뽕으로 통하는 ‘암페타민’을 비롯해 속칭 ‘도리도리’로 불리는 엑스터시와 해서시, 최근 문제를 일으킨 ‘러미라’와 ‘S정’ 등이 향정약품의 대표격이다.

이날 약사회와 전문가들이 선정한 조사대상 향정약품은 전체 약품 중 다빈도 처방 품목을 중심으로 한 10개 품목 170개 통(총 9만7000정). 불량 상태 조사 결과 이중 36개 통에 57정의 알약이 적게 들거나 많이 든 사실을 확인했고, 20개 통에서는 40정의 파손된 약품이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 이중 ○○제약의 경우 조사대상 20개 통 중 16개 통에서 약품이 모자라거나 많은 사례가 발견됐으며 다국적제약사 ○○제약의 경우에는 20개 통 중 6개 통에서 파손된 약품이 나왔으며, 심지어 1개 통에서는 10정의 약품이 부서지거나 가루가 된 채 발견됐다.



하지만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의약 관련 전문가들까지 배석시킨 약사회의 이날 조사 결과는 조사가 끝난 지 한 달 이상이 지나도록 전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향정약품의 관리 당국인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조사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거나 문제 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 그래서인지 일반 언론에서도 관련 기사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약사회도 해당 제약사들과의 비공식 면담을 통해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고 더 이상 문제를 확대하지 않았다. 제약업체들은 “이런 일이 향정약품을 빼돌리거나 끼워 파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알약을 자동으로 분배하는 정제 충진장치에 문제가 있어 벌어진 것”이라고 해명하고 이의 시정을 약속했다. 사실 의약품의 표기용량과 실용량에 차이가 있는 경우 제조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거나, 위반 횟수에 따라 영업정지에서 최고 허가취소까지 받을 수 있도록 법에 규정돼 있다(약사법).

이 문제가 뒤늦게 불거진 것은 그동안 병·의원과 약국에 대한 마약류 수급대장(관리대장) 단속에 걸려 벌금을 내거나 행정처분을 받은 약사와 의사들이 발끈하고 나서면서부터.

현행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마약류관리법)과 그 시행규칙은 병·의원과 약국은 반드시 마약류 수급대장을 작성해야 한다고 강제하고, 실제 보관된 향정약품의 숫자와 수급대장에 기록된 숫자가 단 한 알이라도 차이가 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영업정지, 허가취소 등의 행정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 시·군·구 보건소는 이 규정에 따라 거의 매년, 잦은 곳은 1년에 2~3회씩 향정약품 숫자 점검에 나서고 있으며 식약청과 검찰, 경찰, 심지어 감사원까지 이에 대한 단속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식약청의 단속 실적 총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의 경우 216개 소의 병·의원과 190개 소의 약국이 수급대장 단속에 걸려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돼 있다. 또 검찰은 지난해 1월 마약류 의약품 불법유통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벌여 대장과 약품 수가 맞지 않는 병·의원과 약국의 의·약사 293명을 약식 기소하기도 했다.

“마약 대용 약물 원초적 불량 분통 터져”

지난 4월3일 대한약사회에서 이루어진 향정신성의약품 불량 상태 조사 장면.대한약사회의 조사 결과 11.8%의 약통에 파손된 약이 들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왼쪽부터)

이에 따라 당시 10정 미만의 차이로 단속돼 벌금형이나 행정처분을 받은 의·약사들이 이번에 심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미 단속기관을 상대로 정식 소송을 준비중이다. 이들 의·약사들은 “결국 제약사의 잘못을 우리가 다 뒤집어쓴 꼴”이라며 “제 용량을 맞추지 못한 제약사를 처벌하지 않고 왜 우리를 처벌하느냐”고 항의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4월 대장상의 기록과 단 3알의 향정약품이 차이가 나 1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 서울 A약국의 김모 약사(43)는 “설마 하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대형병원 앞에 있다 보니 한 달에 10통(5000정) 이상, 1년에 수만 정의 향정약품을 소비하는데 약사회의 검사 결과대로라면 이렇게 적게 차이가 난 것이 이상할 정도”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는 현재 국가를 상대로 벌금처분 취소소송과 함께 손해배상 신청을 준비중이다.

대한약사회 김대업 상근이사는 “한 알이 차이가 나거나 1000알이 차이가 나거나 똑같이 처벌하도록 규정한 법이 문제”라며 “향정약품이 파손된 상태로 공급되더라도 의·약사가 마약류 사범으로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현행 마약류관리법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0.2% 손실률 인정키로”

약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의사들 중에서는 이미 소송을 내 승소한 경우도 있다. 2000년 10월 검찰의 마약류 의약품 불법유통 단속에 걸려 2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은 정신과 전문의 김모씨는 검찰의 약식 기소에 불복, 정식 소송을 신청해 최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얻어냈다. 김씨는 “정신과 의사가 몇 통도 아니고 향정약품 몇 알로 무엇을 하겠냐”며 “제약회사가 잘못 공급한 것 때문에 의사와 약사가 마약사범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향정약품의 최대 소비처인 정신과개원의협의회 이택중 회장(정신과 전문의)은 “이미 정신과 개원의 2명이 같은 사안으로 소송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제 및 포장을 포함한 투약과정에서의 손실률을 최소한 3∼5% 선에서 인정해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최소한의 향정약품 손실률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 약무식품정책과의 김진섭 사무관은 “마약류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0.2%의 손실률을 인정키로 했다”며 “하지만 이는 조제과정에서 부서지거나 환자가 뱉어내는 등 어쩔 수 없이 멸실 처리되는 것을 인정하기로 한 것으로 제약업체에서 잘못 공급된 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욱이 김사무관은 “제약업체에서 잘못 공급된 것이 확실하다면 조사를 한 약사회나 병·의원, 약국이 당국에 고발해서 해당 제약업체가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처음 약품을 공급받을 땐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제조업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곤란하다”고 의·약사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즉 향정약품 공급 당시 수량이 맞는지 확인하고, 숫자가 맞지 않으면 당국에 고발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인 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찮다.

“매달 수만 정씩 들어오는 향정약품을 들어올 때마다 다 헤아리라는 것도 말도 안 되지만 나중에 쓸 약을 미리 개봉하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약사법상 제조업체의 용량 공급 잘못에 대한 처벌과 관리의 주체는 정부지 의·약사가 아니다.”(이택중 회장)

“의약품을 믿고 사는 것은 제약업체와 의약품에 대해 정부가 판매허가를 내줬기 때문인데 이제 와서 소비자에게 그 책임을 지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 비현실적인 법을 바꾸라고 요구했더니 의·약사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대한약사회)

이해단체와 복지부의 끊임없는 입씨름 속에 제약업체는 오히려 느긋한 표정이다. 제약업체들에 대한 식약청의 조사는 두 달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주간동아 387호 (p40~41)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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