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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노무현이 헷갈려!

비서실 제 역할 하고 있나

부족한 국정 경험 탓 위기관리에 한계 드러내 … 노대통령 ‘나 홀로 분투’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비서실 제 역할 하고 있나

비서실 제 역할 하고 있나

노무현 대통령이 5월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의 거제 해금강 별장 특혜 의혹이 ‘신동아’에 보도된 직후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가 보인 첫 반응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대부분 지난해 대선 때 제기됐던 문제”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별거 아닌 것에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이를 지켜본 민주당 고위 당직자 K씨는 “그게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고 불행히도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5월20일 거제 해금강에서 출발한 작은 회오리는 하루 만에 청와대 담장을 넘어 대형 의혹사건으로 비화했다.

노대통령은 3월 말, 외국계 금융기관 관계자 및 펀드매니저들과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대다수 참석자들은 노대통령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좋게 가져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모두 빠져나가 경제가 무너진다”고 조언했다.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 공식 시스템과 노대통령의 지인들도 비슷한 톤의 조언을 잇따라 전달했다”면서 “이 시점을 전후해 ‘반미면 어떠냐’는 노대통령의 대미관이 국익 우선 쪽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외교·홍보 라인은 계속 “대통령 입장은 달라진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청와대 홍보라인의 이 같은 경직성은 결국 일정한 성과를 거둔 노대통령의 방미외교를 ‘변절과 굴욕의 외교’로 전락시키는 데 일조했다. 외교적 사안의 경우 당국자들이 해오던 백그라운드 브리핑도 하지 않아 노대통령의 ‘급선회’가 불러온 충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달됐다.

비서실 역할 부재 … 각 부처 무사안일주의 불러



국정이 급격히 난조(亂調)에 빠져들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는 국정혼란을 부채질한 대표적인 사안들이다. 여기에 물류대란, 한총련 문제, 전교조 연가투쟁 등을 보태면 출범 100일을 맞는 참여정부를 위협하는 요인들은 전방위에서 창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총무처 장관 출신인 K씨는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 부재를 첫번째 요인으로 꼽는다.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적응력이 뒤떨어진다는 것. K씨는 “대통령 혼자서 뛴다”고 말한다.

참여정부 청와대는 컨트롤타워식 수직 통할이 아닌 네트워크형 수평 협력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다. 각 행정 부처에 최대한 재량권을 주는 등 민주주의적 기능에 무게를 둔 시스템은, 그러나 비서관들의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적응력이 뒤떨어지면서 과도기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의 이런 분위기는 눈치를 살피며 ‘오더’를 기다리는 관료들의 타성을 자극, 결국 어느 쪽도 책임 있는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는 것.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 화물연대 집단행동 등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 간 논의가 별로 없었다는 점을 관련 공무원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청와대는 노대통령의 ‘386 참모’들이 주도한다. 그러나 시시각각 중요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는 그들에게 국정 경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 최근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비서실 제 역할 하고 있나

5월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 중인 윤태영 대변인.

경험 부족은 업무혼선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4월8일 청와대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실은 공무원 보수를 내년까지 민간 중견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이를 유보했다. 가장 중요한 예산문제를 검토하지 않고 성급하게 발표한 결과였다.

화물연대 집단행동 현장에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나타나고 경호실의 문제점을 비서실에서 지적하는 것이 참여정부 청와대의 현주소다. 노대통령이 앞장서 ‘물’을 흐리는 경우도 있다. 노대통령은 스스로 일선 검사와 특정현안을 놓고 토론을 했다. 주무장관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이 과정에 무장해제돼 ‘옵서버’로 전락했다.

KBS 사장 선임문제와 관련, 노대통령이 노조와 직접 담판에 나서 역시 주무장관은 팔짱을 끼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 부재는 각 부처의 무사안일주의와 보신주의를 불러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한다. 이 과정에서의 행정부 수장인 고건 국무총리의 역할은 의혹과 비난의 대상이다. 나라가 이렇게 시끄러운 지금, 행정의 달인은 어디서 무얼 하는가라는 비판이 봇물을 이룬다. 그렇지만 총리실도 할 말은 있다. “책임총리제 한다고 네트워크를 구성해놓고, (총리에게) 권한은 주지도 않고….”

총리실 기능에 대한 새 정부의 일관성 없는 태도를 꼬집는 이 지적은 총리비서실에서 나온 것이다.

시스템이 무너지면 ‘인치(人治)’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의 청와대에서도 이런 현상이 감지된다. 중요 현안을 독점 처리하는 민정수석실이 대표적인 사례. 문재인 민정수석은 청와대 입성 1개월 만에 ‘왕(王)수석’이란 별칭을 얻었다. 최근 그가 맡은 업무를 보면 왜 왕수석으로 불리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통상적인 인사검증 및 공직기강 업무가 본업이지만 문수석은 최근 한총련 합법화, 화물연대 파업, 부산 선물거래소 이전, 부산고속철 노선 변경, 보길도 댐 건설 문제 등을 핸들링하고 있다. 여기에 건평씨 문제도 일정 부분 관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DJ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DJ 정부 시절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충고한다. 이는 결국 시스템 구축을 더욱 저해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문희상 비서실장도 최근 비서관회의에서 “참여정부는 위기관리시스템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획일적 명령이나 통제체제에서 벗어나 법과 시스템에 따른 조정시스템이 정착하는 과도기적 단계라는 주장이다. 청해대에서 3일간 휴식을 취한 노대통령은 시스템에 의한 국정운영 방안 마련에 골몰했다는 후문이다.





주간동아 387호 (p16~17)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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