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5

2003.05.22

“베트남전 다이옥신 사용량 美 발표의 두 배”

네이처지 고엽제 관련 새 연구결과 발표 … 피해자 인정·보상 등에 큰 영향 끼칠 듯

  • 박미용/ 동아사이언스 기자 pmiyong@donga.com

    입력2003-05-14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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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전 다이옥신 사용량 美 발표의 두 배”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자와 가족들.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최근호에서 우리의 기억에서 잠시 잊혀졌던 문제를 상기시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베트남전쟁에 사용된 고엽제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4월17일자 커버스토리로 다룬 것.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군사작전 기록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과거 추정치보다 700 만ℓ가 많은 고엽제가 사용됐으며 함께 뿌려진 다이옥신의 양은 두 배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군은 베트남전쟁 중인 1961~71년 울창한 정글 속에서 신출귀몰하는 게릴라들의 은신처와 이동경로를 알아내기 위해 숲의 풀과 나무들을 말려 죽이는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군과 한국정부가 공동으로 북한군이나 간첩의 남파를 막기 위해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이남 일대에 고엽제를 집중적으로 살포하기도 했다. 이때 사용된 고엽제의 양이 베트남전에 사용된 양의 0.3%라고 한다.

    살포지역·살포량 등 상세히 조사

    고엽제는 말 그대로 식물을 말려 죽이는 약이다. 농약의 용도상 분류에서 낙엽제(落葉劑)에 해당하는 것을 속칭 고엽제라고 하지만, 흔히 미군이 베트남전쟁 당시 베트남 밀림에 다량 살포한 2·4·5-T계 제초제를 가리킨다. 이때 사용된 고엽제는 1g만으로도 2만명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을 불순물로 함유하고 있어 그 폐해가 심각했다. 다이옥신은 극소량으로도 생식기능과 면역기능을 파괴하고 암을 유발하며 성격장애를 일으키는, 생명체에 치명적인 독극물. 고엽제의 부작용이 드러나자 미국정부는 1971년 베트남전에서 고엽제 사용을 중단했지만, 74년에 이르러서야 미 국립과학원이 베트남전에 사용된 고엽제의 양을 추정한 결과를 세상에 공개했다. 그 수치가 현재 공식화된 고엽제 살포량 7000만ℓ다.

    “베트남전 다이옥신 사용량 美 발표의 두 배”

    기존의 베트남전 다이옥신 사용량 추정치에는 오렌지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 양만 계산됐다. * 자료제공:네이처

    결국 ‘네이처’에 발표된 최신 연구결과는 74년의 추정치를 전면 재수정하는 것이다. 미 컬럼비아대 진 메이거 스텔만 박사팀은 미 정부의 의뢰를 받아 지난 5년간 베트남전 고엽제 사용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종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군사작전 관련 기록들을 바탕으로 컴퓨터를 활용해 복잡한 분석을 수행했다. ‘HERBS’라는 베트남전 고엽제 관련 군사작전 기록과 당시 미 공군일지를 통해 고엽제를 실은 헬기의 이동경로를 파악했다. 이 기록에는 고엽제를 실은 헬기의 목표지점, 도중에 공격을 받고 헬기가 추락한 지점, 그리고 4~5분간 분산 살포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궂은 날씨 때문에 한 번에 투하한 지점 등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어느 지역에 얼마나 많은 고엽제를 살포했는지에 대한 상세한 지도를 그려낼 수 있었다. 그 결과에 따르면 74년의 추정치보다 약 10% 많은 7700만ℓ의 고엽제가 베트남전에서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고엽제가 베트남 남부에 집중적으로 살포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문제는 다이옥신. 연구팀은 실제로 인체에 치명적인 다이옥신이 얼마나 사용됐는지를 밝히기 위해 고엽제 사용량을 종류별로 따로 조사했다. 베트남전에는 오렌지, 화이트, 블루라고 불리는 세 종류의 고엽제가 사용됐다. 이들을 담은 드럼통에 두른 띠의 색깔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종전에는 오렌지 드럼통 고엽제의 다이옥신만 문제가 되었고 추정치의 근거가 됐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이옥신의 총량은 이제까지의 추정치보다 무려 두 배 가량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베트남전 다이옥신 사용량 美 발표의 두 배”

    고엽제에 노출되기 전 정상 상태의 버크홀데리아 세파시아균(위)과 죽은 뒤의 균을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모습.

    무엇보다도 이번 연구결과의 중요한 의미는 당시 베트남 사람들과 투입된 군인들이 얼마나 많은 양의 고엽제에 노출됐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당시 미군이 기록한 베트남 주민들의 마을 분포 자료와 군인들의 배치와 이동에 대한 기록도 분석했다. 이 분석결과는 고엽제가 살포된 지역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살포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지역을 접근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즉 고엽제에 간접적으로 노출된 사례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까지도 고엽제 후유증에 대한 논란과 재판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이번 연구결과의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 국내 고엽제 환자 보상 제외

    결국 이번 연구결과는 베트남전에 32만여명의 군인이 참전한 우리에게도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자료다. 국가보훈처의 3월 말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지금까지 고엽제 관련 피해자로 인정받은 환자는 6만4723명에 달한다. 이중 말초신경병, 당뇨병, 각종 암 등에 시달리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가 1만8096명이고 일광과민성피부염, 각종 피부염, 각종 신경장애와 혈액순환장애 등을 앓는 고엽제 후유의증(後遺疑症) 환자가 4만6586명, 말초신경병·척추이분증 등으로 고생하는 2세 환자가 41명이다.

    이들 고엽제 환자들은 1964년부터 73년 사이에 베트남전에 참전했거나, 67년부터 70년 사이에 비무장지대에서 군복무를 했던 군인들이거나 그들의 2세다. 더군다나 매달 1000여명이 고엽제 관련 피해자로 등록 신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이번 연구결과를 단순히 자료만으로 넘겨버릴 수는 없다.

    고엽제 후유증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미국에 비해 20여년이나 뒤늦은 1980년대 말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고엽제 후유증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었기 때문에 실제 환자는 현재 파악된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해외로 이민 간 참전군인이 피해보상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내 고엽제 환자들은 아직까지 미국으로부터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이들은 미국정부를 상대로 고엽제 피해자 보상을 위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고엽제가 살포된 당시 베트남에서의 우리 군인들의 배치 상황과 이동경로를 확인해 이 연구결과를 적용해보면 한국군의 고엽제 피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99년 9월 제기된 ‘고엽제 소송’에 대해 2년8개월 만인 2002년 5월23일에 ‘원고청구 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다이옥신이 피해자들의 질병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근거로는 한국군의 작전지역 등이 실제 고엽제 살포지역과 거리가 있고 고엽제 특성 및 살포량과 살포시기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제 새로운 보고서가 나온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피해 규명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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