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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참여 정부’시대 개막

영부인 1계명 ‘친인척 관리’

권양숙 여사 청와대 생활 기대 반 부담 반 … “서민 대통령 이미지 부합하게 처신”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영부인 1계명 ‘친인척 관리’

영부인 1계명 ‘친인척 관리’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 권양숙 여사.

청와대로 거처를 옮긴 권양숙 여사가 이삿짐을 싸면서 무엇보다 애지중지한 것이 있다. 자택에서 키우던 ‘관음죽(觀音竹·열대성 야자과 식물)’이다. 1m 크기의 이 관음죽은 1978년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할 때 사법시험 동기(17회)인 김종대씨(현 부산지법 동부지원장)가 선물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25년째 연을 맺고 있는 이 관음죽은 노대통령이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98년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취임한 2000년 등 지금까지 두 번 꽃을 피웠다. 노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기관장 모임에서 “관음죽이 꽃을 피우면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했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권여사의 한 측근은 “관음죽을 관저 응접실에 놓아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여사의 영부인(퍼스트레이디) 생활이 시작됐다. 퍼스트레이디란 자리에는 생각보다 권력과 힘이 많이 몰린다. 고려대 함성득 교수(대통령학)는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대해 ‘비공식 제1의 참모’라고 정의한다.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가 그만큼 가깝고 대통령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권여사는 청와대 입주를 앞두고 함교수가 쓴 ‘영부인론’과 12명의 미국 대통령 부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 등 대통령 부인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권여사가 읽은 책에는 ‘세계는 남자가 움직이고, 그 남자는 여자가 움직인다’거나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따라 한 국가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등 대통령 부인의 역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런 내용에 대해 권여사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 청와대 제2부속실 박은하 비서는 “처음에는 청와대 생활에 대해 기대감을 보였지만 요즘은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한다.

대통령 부인 관련 서적 탐독 각계 인사 조언 청취

권여사는 한때 고 육영수 여사를 존경했다. 단아하고 자애로운 육여사의 이미지를 닮고 싶다는 말을 측근들에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여사는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상적인 대통령 부인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꼽아 정반대의 영부인상을 피력하기도 했다. 대통령 부인에 대한 권여사의 이런 상반된 인식은 육여사와 힐러리를 섞은 새로운 형태의 대통령 부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권여사는 청와대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학자, 여성의원, 여성계 인사 등을 만나 ‘참여정부’의 대통령 부인상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베갯머리 내조형, 동반자적 내조형, 참여적 내조형 등 모델은 많지만 권여사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제2부속실 이은희 비서는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한 이유인 원칙, 정직, 당당함을 잃지 않으면서 ‘국민 대통령’ ‘서민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대통령 부인상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권여사의 내조 원칙은 ‘조용한’ 청와대 만들기다. 이런 내조의 기본 틀 속에는 노대통령의 정치 동지로서의 역할도 포함된다. 그는 오래전부터 남편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할 때 함께 고민하고 조언하는 정치 동반자였다. 권여사는 “노대통령이 험난한 정치역정을 헤쳐온 ‘바람’이었다면, 나는 노대통령과 가족을 든든하게 지켜온 ‘바위’였다”는 말을 종종 한다. 지난해 11월, 정몽준 국민통합 21대표와의 후보단일화를 앞두고 노대통령이 노심초사하자 권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가진 것도 없고 더 잃을 것도 없다. 이제까지 기대 이상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역사적 단일화에 합의했으니 이제 결과를 기다리자. 안 되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영부인 1계명 ‘친인척 관리’

요리중인 권양숙 여사.

청와대로 자리를 옮긴 권여사는 이런 ‘정무’ 활동의 각을 조금 비틀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가 한배를 탄 동반자라면 이제는 노대통령의 활동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에 보다 비중을 둘 것이란 해석이다. 권여사 주변에서는 이를 ‘청와대 속의 야당’으로 그린다. 이에 대해 2월21일 권여사는 “너무 강한 표현”이라며 수위를 조절했다.

남편의 정치활동에 대한 완급 및 수위 조절, 민심 전달 등이 퍼스트레이디의 비공식 정무활동이라면 각종 행사 및 모임 참석 등은 대통령 부인의 공식활동이다. 특히 역대 정권의 대통령 부인은 여성복지 문제 등과 관련해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권여사는 대통령선거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활동 방향과 기본 계획을 이렇게 제시했다.

“우선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할 수 있도록 내조에 힘을 기울일 생각이다. 또한 친인척 비리 단속에 신경을 쓸 것이다. 장관도 청와대 비서진도 할 수 없는 대통령 부인의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한다. 여성문제, 보육·교육문제와 장애인과 노인 등 소외된 계층을 위한 제도적 개선에도 노력할 것이다. 대통령 부인은 한 나라의 어머니다. 어려운 시기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대통령 부인이고 싶다.”

박비서에 따르면 이 가운데 권여사의 대통령 부인 1계명은 친인척 관리다. 임기 말 역대 대통령 가족의 씁쓸한 말로를 지켜본 권여사는 친인척의 부정부패에 대한 단죄 의지가 남다르다고 한다. 이런 의지는 자녀 결혼식장에서도 배어 나왔다. 2월8일, 정연씨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친인척들에게 권여사는 일일이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당부했다.

권여사는 선거 때 호주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당시 권여사는 “호주제는 특히 뿌리 깊은 남성 위주 문화의 상징이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호주제 폐지를 이뤄낼 수 있도록 홍보활동에 나설 생각이다. 혹시라도 대통령이 다른 국정을 이유로 호주제 폐지 공약의 이행을 미루지 않도록 옆에서 독촉할 것이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들어가기 직전 권여사는 이 문제에 대해 “선거공약인 만큼 차근차근 챙기겠다”며 다시 한번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권여사는 자신을 “아줌마 기질로 무장한 사람”이라고 평한다. 이 말 속에는 신혼시절 고시 준비하는 남편 밥해주고 아이 키우며 농사를 짓던, 넉넉지 못한 살림을 꾸려온 억척주부로서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와대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싼 이삿짐 속에도 이런 이미지가 묻어 있다. 권여사는 청와대로 짐을 옮기면서 자신들이 사용하던 장롱을 건호씨와 정연씨에게 한 짝씩 나눠 주었다. 78년 변호사 개업을 전후해 장만한 이 장롱은 ‘천수’를 누린 셈이지만 권여사는 “아직도 충분히 쓸 수 있다”며 신접살림을 차린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 명륜동에서 쓰던 가전제품 및 가재도구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가친척들에게 ‘분양’됐다. 권여사는 이런 아줌마 기질을 바탕으로 청와대 살림살이에 임할 생각이다. 청와대 제2부속실 관계자는 “청와대 생활도 평소 하던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여사는 대통령 당선 후 노대통령과 함께 동네 골프장을 찾았다가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온통 녹지공간인 청와대는 마음만 먹는다면 훨씬 쉽게 골프 연습을 할 수 있다.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에는 언제라도 라운딩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박비서는 “권여사는 골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부가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서민 대통령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주변의 평가에 노대통령 부부가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대통령은 한 사석에서 권여사를 ‘Confident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본래 뜻이지만 노대통령은 ‘행운을 가져다주는 마스코트’ 등으로 해석한다. “그 사람(권여사)이 있으면 뭔가 일이 잘 된다. 그 사람이 (선거에서) 이긴다면 이기고, 진다면 졌다. 대통령선거에서도 이긴다고 했다.”

노대통령에게 있어 권여사는 또 하나의 ‘관음죽’인 셈이다. 권여사는 청와대에서도 노대통령이 선거 때 늘 마시던 오미자 인삼차를 계속 끓일 계획이다.



주간동아 374호 (p14~15)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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