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빅 3’ 권력기관 개혁 태풍 몰아친다

국정원=맑음, 검찰=폭풍전야, 경찰=쾌청 분위기 …“5년마다 겪는 일” 내부 관계자들은 시큰둥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1-17 11:0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빅 3’ 권력기관 개혁  태풍 몰아친다
    ”5년마다 겪는 일인데요, 뭘….”

    요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 관계자들에게 세 기관 모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의 ‘개혁 도마’에 오른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놀랍도록 비슷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5년 전에도 비슷한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결국 변한 게 없었기 때문에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가 부산을 떠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세 기관의 현 상황과 분위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다. 세 기관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국정원=대체로 맑음, 검찰=폭풍전야, 경찰=쾌청’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세 기관이 대선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느냐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1997년 대선 직후와 비교해볼 때 국정원과 검찰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점. 당시 김태정 검찰총장이 이끈 검찰은 ‘DJ(김대중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유보를 결정, DJ의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운 반면 국정원은 ‘DJ 죽이기’에 앞장섰다. 그 결과 김태정 총장이 당선자 시절 DJ를 비밀리에 만나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권영해 부장은 DJ 정권 출범 이후 검찰에 구속되는 수모를 당했다.

    97년과 비교해 크게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은 곳은 경찰이다. DJ는 당선자 시절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를 방문, 황용하 경찰청장이 중립을 지켜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당시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황청장은 경찰 정보 라인 등에 ‘중립을 지키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황청장이 DJ 정부 출범 이후 한국전력 감사를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한 핵심 측근은 1월7일 “대선 기간 중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을 한나라당에 흘리기나 하고…”라면서 검찰에 불쾌한 감정을 내비친 반면, 국정원은 이미 노당선자에게 보고를 마쳤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이어 “검찰은 아직 당선자에 대한 보고 날짜도 잡지 못했다”면서 “검찰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개혁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빅 3’ 권력기관 개혁  태풍 몰아친다

    국회정보위에 출석한 신건 국정원장, 대검찰청 행사, 경찰청 행사 모습(왼쪽부터).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정원, 검찰, 경찰 3대 권부가 출렁이고 있다.

    실제 신건 국정원장은 1월6일 노당선자를 독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당선자 주변과 국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의 면담은 시종 화기애애하고 진지한 가운데 1시간 가량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세한 대화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노당선자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국정원 정보를 듣기 위한 자리였을 것으로 관측된다.

    신건 원장의 노당선자 면담 이후 국정원 안팎에서는 한때 “신건 원장이 노당선자 취임 이후에도 당분간 자리를 지킬 것 같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이낙연 당선자 대변인도 1월10일 비슷한 얘기를 했으나 신계륜 당선자 비서실장이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인수위 주변에서는 최병모 옷로비 특검, 조승형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등이 노무현 정권 첫 국정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정원 내부에서는 “국정원의 북한 및 해외 정보, 그리고 국내 정보가 담긴 보고서가 이미 노당선자에게 제공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당선자가 첫 조각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각 분야별 전문가풀도 새로 작성, 데이터베이스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이 정권 교체기 때마다 해오던 일상적인 일이다.

    국정원은 97년 대선 직후에 비해서는 훨씬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선이 여당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지난해 정보학교 연수교육을 신청받을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예상한 호남 출신들이 너도나도 몰리는 바람에 일부는 탈락시키기도 했는데, 현재 연수중인 호남 출신 직원이나 당시 연수를 신청한 호남 출신 직원들 모두 머쓱해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국정원 내부에서는 노당선자의 국정원의 해외정보처 개편 공약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국내정보 수집 기능 폐지가 말처럼 쉽게 이뤄지겠느냐”면서도 “신원장이 노당선자를 독대할 때 노당선자가 국내정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얘기가 사실인지를 탐문하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노당선자가 한때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만큼 노당선자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 직원들도 없지 않다. 국정원 존립의 근거 자체가 국가보안법인 데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된다면 대공수사국의 경우 더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 때문에 인수위 파견 직원 선발을 앞두고 대공수사국이 반드시 자국 소속 직원을 한 명 보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직원들 사이에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 줄을 댄 간부들을 전면 색출해 퇴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국정원이 자칫 격랑에 휩싸일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그런 폐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명분으로 새로운 주도세력들이 국정원 길들이기에 나서는 것도 바람직스럽지는 않다”고 말한다.

    아울러 직원들 사이에서는 “국정원 내 ‘하나회’의 뿌리도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나회란 김은성 전 차장을 중심으로 결성된 국정원 내 사조직으로, 이들은 김은성 전 차장 재직 시절 함께 등산을 가는 등 나름대로 결속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당시 보직 인사에서도 배려를 받는 등 특혜를 받았다는 게 국정원 직원들의 인식이다.

    뿐만 아니라 대공정보실의 조직개편 문제를 거론하는 직원들도 많다. 현재는 수집과 분석 파트가 한 부서에 있어 효율적이기는 하지만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붕괴됨으로써 정보의 질 저하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게 국정원 직원들의 솔직한 토로다. 따라서 과거 안기부처럼 기획판단국을 별도로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빅 3’ 권력기관 개혁  태풍 몰아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박범계 위원(오른쪽)이 1월9일 정순균 인수위 대변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의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검찰은 현재 내부적으로 크게 동요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심지어 “인수위에 검찰이 시범케이스로 걸린 것 같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검찰인사위원회에 시민단체 인사 참여 △한시적 특검제 시행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 △경찰 수사권 독립 등 현재의 검찰 위상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인수위에서 전향적으로 검토되고 있기 때문. 이런 가운데 노당선자측에서 한때 김각영 검찰총장 교체론까지 제기돼 검찰을 더욱 긴장시켰다(상자기사 참조).

    검찰을 특히 동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경찰 수사권 독립 추진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수사상 동등한 신분으로 활동하게 됨을 의미한다. 검찰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당장 서울지검의 한 중견 검사는 “현재 검찰이 수사 지휘를 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것은 바로 국민이고,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경찰관 개인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검찰 일각에서는 좀더 대범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검찰이 모든 사건을 다 하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면서 “민생치안에 관련된 것은 경찰에 넘겨주고 검찰은 대형 비리사건 등 인지사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여전히 많은 검사들은 “세 기관 가운데 검찰만큼 공개된 조직은 없다. 국정원이야 원래 정보기관이기 때문에 폐쇄성을 인정해준다 해도 경찰은 15만명이나 되는데, 경찰이 더 비대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검찰을 위축시키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당선자측이 구상중인 고위 공직자 비리조사처도 실제로 설치될 경우 검찰의 핵심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서울지검 특수부’의 독점적 명성을 퇴색시킬 가능성이 높다. 경찰 수사를 지휘하는 일선 검사에서부터 대검 중수부를 거쳐 검찰총수에 이르기까지 검찰은 창설 이래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검찰 조직을 지나치게 흔드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부장급 검사는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그것은 정치권이 검찰을 장악한 결과인데 거꾸로 그런 정치권이 검찰개혁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을 노리고 있는 것은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각종 게이트의 재수사와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비리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검찰의 ‘내상’ 치유도 급선무다. 특히 지난해 신승남 전 검찰총장 기소 이후 일부 간부들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갈등이 심각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찰

    경찰은 노당선자의 경찰 수사권 독립 공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경찰대 동문회장을 역임한 서울 용산경찰서 황용하 경정은 “다시 찾아오기 힘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경찰청은 사법경찰관이 검사와 동등한 자격으로 수사할 수 있는 ‘수사권 독립’ 방안을 1월15일 인수위에 보고했다.

    문제는 수사권 독립 논의 과정에서 경찰 내부적으로 지휘부와 일선 경찰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앙금이 생겼다는 점이다. 경찰 수뇌부가 한때 민생범죄에 국한된 부분적 수사권 독립을 추진하자 경찰대 동문들을 중심으로 완전한 수사권 독립을 촉구하기도 했다.

    내부적으로 간부진과 일선 수사관 사이에 미묘한 의견의 차이도 나오고 있다. 범죄수사의 시작에서 종결에 이르기까지 경찰이 검찰의 지휘 없이 전권을 행사하게 될 경우 경찰 지휘부의 권한은 훨씬 강화된다. 그러나 일선 형사들은 본인 책임이 커지는 부분을 껄끄러워한다. 현재는 위법 여부가 모호한 사건은 검찰의 지휘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경찰 수사권이 독립될 경우 수사 결과에 대한 책임이 일선 경찰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 고위 관계자는 “결국 수사권 독립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수위가 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친(親)검찰 인사가 다수 포진된 국회 법사위에서 법안이 통과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경찰 내부에선 수사권 독립 못지않게 노무현 정권의 첫 경찰청장이 누가 될 것인지도 관심사다. 전례에 따르면 현 이팔호 청장(치안총감) 아래 세 명의 치안정감 중 한 명이 발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낙식 경찰청 차장은 전북 출신, 이대길 서울경찰청장은 전남 출신, 최기문 경찰대학장은 경북 출신이다. 성차장과 이청장은 서열면에서 청장 후보 1순위다. 최학장은 내부에서 신망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가 되든 경찰조직에 강한 메시지를 던지게 될 전망이어서 경찰은 지금 당선자의 의중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한 중견 간부는 “경찰청장도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겠지만 한나라당이 주로 문제 삼을 대상은 국정원장과 검찰총장이 되지 않겠느냐”면서 “누가 되든 경찰청장은 쉽게 청문회 관문을 통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팔호 청장의 향후 거취에 대해서도 여러 얘기가 나온다. 대통령선거 뒤 한나라당 김용환 의원은 충남 보령 지구당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고향 후배에게 물려주겠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보령 출신 이청장은 자천타천으로 정치권에 입문, 2004년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한편 1월6일 경찰청은 56명의 경정을 ‘경찰의 꽃’인 총경으로 승진시켰다. 경찰에 따르면 경쟁률이 무려 5대 1이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 “노무현 정권의 사정기관 인사 스타일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번 승진자의 지역별 분포는 영남 19명, 호남 12명, 기타지역 25명이었다. 경찰청은 이번 인사에서 96년 이전 경정 승진자만 총경 승진 대상에 올렸다. 오히려 이 기준이 호남지역 출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호남 편중이라는 뒷말은 쑥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팔호 경찰청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인수위와 협의를 거쳐 인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총경 승진 인사가 퇴임 이후 행보를 준비중인 충청 출신 이팔호 청장의 의지가 더 반영된 것 아닌가 하는 일각의 관측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 “이번 총경 인사에서 충청 출신이 약진했다”는 뒷말이 나오는가 하면 “애초 총경 승진이 잘 되는 자리에 충청 출신이 많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