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2년만의 복직 … 희망과 불안의 시동

대우차 해고자 296명의 재입사 표정 … 기쁨도 잠시, 낯섦·미복직자에 대한 미안함 교차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1-17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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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만의 복직 … 희망과 불안의 시동

    정리해고 후 재입사했지만 엉뚱한 부서로 발령난 조립1부 채수근씨(왼쪽)는 불만을 이야기했고 원부서로 복귀한 차체1부 고재권씨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사상 최초의 대규모 정리해고로 노사분쟁의 화약고가 됐던 대우인천자동차(구 대우차 부평공장). 2002년 12월23일, 이 공장에 반가운 이들이 찾아왔다. 2년 전 정리해고 통보를 받고 분노와 슬픔을 안은 채 회사를 떠났던 1750명의 해고자 중 296명이 재입사 형식으로 복직한 것. 대규모 정리해고가 처음이었던 만큼 해고 후 재입사 역시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희망으로 넘실거릴 것만 같은 대우인천자동차. 그러나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희망만은 아니었다.

    이제는 희망

    승용1본부 차체1부 고재권씨(41)가 복직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동안 진 빚을 갚는 일이다. 2001년 정리해고를 당한 뒤로 짊어지게 된 생계형 빚만도 어림잡아 2000만원. 돈벌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늘어나는 빚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리해고로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고씨가 맨 먼저 나섰던 일은 택시운전이었다. 대우차에 다니면서 틈틈이 익혀 따놓았던 택시운전 자격증이 그나마 효자 역할을 한 것이다. ‘이거라도 없었더라면…’ 하는 심정으로 택시를 몰았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와 나머지 가족들을 책임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건설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말로만 듣던 인력시장. 그러나 거기에도 기술자들은 따로 있었다. 기술이라고는 없는 고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잔심부름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용역업체 소개비 등을 떼고 나면 한나절 막노동으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단돈 4만원. 고씨가 회사로부터 재입사 통보를 받은 것은 여기저기서 끌어 쓴 빚이 2000만원을 막 넘어섰을 때쯤이었다.

    “돌아와보니 남아 있던 사람들도 고생한 건 마찬가지더라구요. 지금껏 2년째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쩌구요. 오늘 아침에도 정문 앞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빨리 회사 형편이 나아져서 이 사람들도 복직했으면 좋겠네요.”



    2년 만에 다시 현장에 돌아온 고씨는 이제 어렴풋하게나마 희망을 읽는다. 자신이 떠난 자리에 남았던 동료들에 대한 감정도 섭섭함보다는 고마움이다. 1월9일 차체1부에서는 2년 만에 돌아온 고씨를 환영하기 위한 조촐한 소주파티가 열렸다.

    그래도 불안

    조립1부에 근무하는 채수근씨(39)의 얼굴에서 다시 직장을 얻었다는 기쁨이나 안도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1750명이나 되는 정리해고자 중 복직의 혜택을 입은 296명 안에 들었음에도.

    “ 사실 복직 통보를 받고서도 망설였어요. 워낙 경기가 안 좋다 보니 그래도 일정한 급여를 받는 게 낫겠다 싶어 회사로 돌아오기는 했는데….”

    채씨가 2년 만에 돌아온 자리는 정리해고 전에 근무하던 엔진 구동 파트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조립 파트였다. 15년 동안 ‘깎고 손질하는’가공업무에만 종사하면서 키워왔던 ‘장인(匠人)’으로서의 꿈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다. 지난해 말에 재입사한 근로자들 대부분이 채씨처럼 이전 업무와 무관한 부서로 배치됐다.

    회사 입장에서 이런 조치를 취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정리해고 당시 부서로 그대로 발령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조직 내 마찰을 우려한 것이다. 인사고과를 기준으로 자신을 공장 밖으로 내몬 당시 직장(職長)이나 공장(工長)들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얼굴을 맞대기는 영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돌아온 사람이나 남아 있던 사람이나 똑같이.

    채씨의 복직은 재입사 형식이다. 그러다 보니 근속수당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15년의 경력은 무시되고 스타트라인에 다시 선 신입사원 처지가 됐다. 입사 당시 호봉만을 인정받았을 뿐이다. 기자가 오해할까 봐서였을까. 옆에 있던 관리직원이 ‘퇴직금을 중간정산해서 다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채씨의 표정에서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2년만의 복직 … 희망과 불안의 시동

    2001년 2월 정리해고 통보에 반발하는 해고자들이 대우차 부평공장 진입을 막는 경찰에 맞서 격렬히 저항하고 있다.

    조립2부에서 2년 전 해고당했던 신승민씨(31). 신씨가 매일같이 출근하는 곳은 부평공장 노동조합 사무실이다. 신씨는 여전히 해고자 신분이다. 노조 규약에 따라 조합원 신분만 유지하고 있을 뿐. 노조 사무실에서 다른 부서로 통하는 입구에는 용역업체 직원들이 경비를 서면서 출입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신씨는 2001년 2월 대우차 근로자들에게 해고통보가 날아든 뒤 산곡성당 농성에 참여했다. 농성에 참여한 것은 주로 노조 간부들로 평조합원으로는 신씨가 유일했다. 해고자들 중 가장 나이 어린 축에 속하는 탓에 취업도 미뤄놓고 투쟁전선의 맨 앞줄에 섰다. 신씨는 “ 나이 든 형님들을 남겨두고 생계 해결을 위해 먼저 성당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2002년 7월25일 미리 발표된 재입사자 명단에 자신이 끼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가 작용한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1750명이나 되는 정리해고자 중 회사가 어떤 기준으로 296명을 뽑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천대우차 이원현 관리팀장은 “ 인사고과가 기준” 이라고 말했다. 해고 당시와는 역순이라는 것이다.

    2002년 7월 296명의 재입사자 명단이 해고자들에게 통보되자 인천대우차는 또 한 번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구제받은 자와 구제받지 못한 자가 나뉘어졌다. 떠나야 할 자와 남은 자를 나누었던 정리해고 당시와 같은 또 한 번의 선택. 회사는 재입사자 명단에 대해 ‘회사측 추천 절반, 노조측 추천 절반’이라고 밝혔다. 명단에 들지 못한 해고자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분노의 대상은 이번에는 회사가 아니라 노조였다. 노조 사무실로 몰려온 미복직자들이 노조 집행부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노조 간부가 2층에서 떨어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이 간부는 현재 6개월 가까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신씨는 “정리해고 과정에서 회사로부터 버림받고 재입사자 선발 과정에서 믿었던 노조로부터도 버림받았으니 가슴에 쌓인 분노를 말해 뭐하겠느냐”고 말했다. 신씨는 다음달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처가 쪽에는 여전히 자신이 해고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아니 ‘밝히지 못했다.’

    인천대우차가 완전 정상가동하려면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인천대우차 중에서도 매그너스 생산라인 같은 경우는 여전히 ‘70% 휴업’ 을 실시하고 있다. 일감이 없어 매그너스 라인의 모든 근로자들이 한 달에 8일씩 근무하고 월급의 70%만 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칼로스 생산라인은 8월부터 2교대 근무를 시작한다. 현재 주간으로만 운영되는 라인이 북미 수출을 앞두고 드디어 완전가동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재입사자 명단에 들지 못한 해고자들은 이때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말 정리해고자 복직은 ‘정리해고 이후 2년 내에 인력수요가 발생하면 해고자를 우선 채용한다’는 법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정리해고로부터 2년’이 지나버렸다. 회사측은 정리해고자 복직보다는 신규채용이나 파견업체를 통한 비정규직 고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눈치다. 노조에서도 이런 점을 모르지 않는다. 노조 김경호 정책실장은 “ 일단은 땅에 떨어진 회사 이미지를 높여 가동률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해고자들의 정문 앞 시위는 2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출입을 제지하는 정문 경비원들과도 이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됐다. 정문 앞에서 불을 피워놓고 ‘해고자 복직’을 외치던 한 해고자가 정문 경비요원들에게 군고구마를 가져다 주었다. 이 경비원은 정문에서 떨고 있던 기자에게도 고구마를 권했다. 기자는 고구마를 받지 못했다. 시커멓게 타버린 고구마는 숯덩이가 돼버린 해고 근로자들의 가슴패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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