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환상의 그린, 18홀의 유혹

해외 이색골프장 3選 … 캥거루 뛰놀고 정글 속 라운딩 ‘정말 특이하네’

  • 조주청/ 여행가·골프 칼럼니스트

    입력2003-01-15 15:5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환상의 그린, 18홀의 유혹

    타슈켄트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1번홀의 그린 너머로 눈 쌓인 천산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캥거루 떼와 함께 골프를 치고, 황금 궁전에서 머물며, 눈부신 호숫가 코스에서 하루 36홀을 돌았다. 돌아올 땐 골프가방 가득 행복을 넣어 가지고 왔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레이크사이드 골프클럽

    1990년대 초, 한잔 술에 실러의 시를 줄줄 외우는 로맨티스트 서건이씨가 우즈베키스탄 초대 한국대사로 부임했다. 부임 후 서대사는 우즈베키스탄에 대우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고 우즈베키스탄 외교가에서 눈부신 활동을 했다.

    그런데 골프광이었던 서대사는 이 나라에 골프코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실망했다고 한다. 궁리 끝에 그는 “외국자본을 유치하려면 골프장이 필요하다”고 카리모프 대통령을 설득해 타슈켄트 시내 호수공원 부지를 확보하고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94년 서대사는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8홀 코스를 갖춘 타슈켄트 레이크사이드 골프장을 완공시켰다. 골프장 설립에 타슈켄트에 주재하고 있는 외교관, 외국계 기업인들이 모두 환호했고, 이후 우리나라 골퍼들도 몰려가기 시작했다.



    천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다 쉬어가는 수많은 호숫가로 언제나 푸른 양잔디 페어웨이가 이어지는 멋진 골프코스다. 하루에 36홀씩 라운드하고 저녁이면 타슈켄트 시내 술집으로 가 인형 같은 이국의 아가씨들과 양주를 마시고도 비용은 우리나라 고깃집에서 소주 마신 정도밖에 안 든다. 늦은 밤 휘파람을 불면서 골프장 안에 있는 리조트로 돌아와 잠을 잔다.

    이튿날 아침, 또다시 36홀 라운드 진군 나팔을 분다.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이나 반복되는 중노동(?)에도 피곤해서 두 손 드는 사람이 없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에서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서 전 대사와 마주앉았다.

    “공기가 맑아서일까요, 아니면 석류 주스?”

    “글쎄요, 기막힌 색깔에 환상적인 맛이긴 하지만 그게 경이의 활력소라고 말할 수야 없죠.”

    “양고기 꼬치구이 샤슬릭, 아니면 까레이스키네 개고기 갈빗살 무침?”

    서 전 대사는 양고기와 개고기를 먹지 않은 골퍼도 힘이 넘쳤다고 반론을 편다. 천산산맥의 눈 녹은 물이 모인 호수에서 잡아올린 우즈벡 잉어탕도 같은 이유로 제외되었다. 사우나탕에서 진짜 꿀을 온몸에 발라 뼛속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마사지도 정답으로는 함량미달이다.

    우리의 결론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몰라도 정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땅기운(地氣)밖에 없었다. 이곳은 실크로드의 동서 접점, 유라시아 대륙의 배꼽, 산소가 가장 풍부하다는 해발 500m, 그리고 천산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에 위치해 있다. 산맥의 눈이 서서히 녹아내려 사막을 오곡백과가 잘 자라는 땅으로 만들어놓았다.

    이곳은 1월에도 보름 정도만 한기를 느낄 뿐 낮엔 반소매 옷을 입어야 할 만큼 기후가 쾌적하다. 그리고 타슈켄트의 2월은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다(문의 011-718-1751).

    환상의 그린, 18홀의 유혹

    앵글시 골프장에서 캥거루와 골퍼는 더 이상 서로에게 경계의 대상도 흥미의 대상도 아니다.

    호주에서 캥거루를 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어느 동물원에든 캥거루가 가득하다. 그러나 동물원의 캥거루가 아닌 야생의 캥거루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로울까?

    들로 산으로 다닌다고 해서 캥거루 떼가 눈앞에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골퍼에게는 틀림없이 보장되는 곳이 있다. 호주 동남부 빅토리아주 주도 멜버른에서 서쪽으로 남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차로 두 시간쯤 달려가면 앵글시(Angle sea)라는 소읍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오른쪽 방향에 있는 언덕을 오르면 아담한 앵글시 골프장 클럽하우스가 골퍼를 맞는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고 카트를 끌며 벅찬 가슴으로 1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오르자 이게 웬 일인가. 페어웨이에 100여 마리는 됨직한 캥거루 떼가 골퍼는 본 체 만 체 풀을 뜯고 있는 것이다.

    어떤 녀석은 열 걸음도 안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서 드라이버를 든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쫓아내려고 드라이버를 휘두르며 티잉그라운드를 내려서자 함께 골프를 치던 호주 친구가 “미스터 조, 소용없는 짓이야. 그냥 날려버려” 하고 소리친다.

    “ 따악─.”

    티잉그라운드에서 폭발한 드라이브샷 공이 아슬아슬하게 캥거루 목덜미를 스치며 날아가는데 녀석들은 눈도 꿈쩍하지 않는다. 첫 홀만 그렇겠지 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홀에서도 캥거루 떼는 떠나지 않고 골프코스를 점령하고 있었다.

    페어웨이의 푸른 잔디는 산속의 풀보다 훨씬 부드러워 캥거루에게는 별미다. 어떤 녀석들은 그린 위에 앉아 작은 공에 울고 웃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장난’을 내려다보며 혀를 차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프로치한 공이 그린에 앉아 있는 캥거루의 등을 맞고 그린 밖으로 나가도 로컬 룰(local rule)에 따라 구제해주지 않는다.

    라운딩을 마시고 클럽하우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매니저에게 물어봤다.

    “도대체 이 골프코스엔 캥거루가 몇 마리나 있습니까?”

    “일일이 헤아릴 수는 없지만 1000마리 이상일 겁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점점 불어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하루에도 수십 마리가 골프공에 맞아 비명횡사할 것 같은데 매니저의 대답은 의외였다.

    “1년에 열 마리 가량 죽습니다. 공에 맞아 죽는 경우엔 그날 저녁 클럽하우스에 메뉴 하나가 추가됩니다. 캥거루 스테이크!”(앵글시 GC 전화: 61-3-5263-1582, 이메일 info@angleseagolfclub.au).

    브루나이 로얄브루나이 골프클럽

    환상의 그린, 18홀의 유혹

    R.B.G.C를 한 라운드 돌고 나면 정글투어를 한 셈이 된다.

    ‘번쩍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는 곳이 브루나이(Brunei)다. 동남아 보르네오섬 꼭대기에 있는, 경기도 면적의 반만한 ‘초미니 국가’지만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번쩍이는 것은 모두가 황금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최상급 호텔엔 별 다섯 개가 부여되지만 ‘세븐 스타’ 로 불리는 엠파이어 호텔에 들어서면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바벨탑 같은 황금기둥, 황금의자, 황금탁자, 황금 문고리…. 번쩍이는 것은 모두가 황금이다. 폴로클럽 카펫엔 황금가루가 뿌려져 있어 신발을 신은 채 번쩍이는 황금을 밟고 다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어둠이 내리면 브루나이 밤하늘엔 수많은 ‘황금 UFO(?)’가 떠오른다. 하사날 볼키아 모스크의 29개 황금돔과 오마르 알리 모스크의 28개 황금돔이 조명을 받으면 대장관을 이룬다.

    브루나이 여행의 볼거리 중 두 가지만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첫째는 황금돔이 번쩍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이슬람 사원)이고 두 번째는 정글 트레킹이다. 정글 트레킹은 차와 배를 번갈아 타고 걷고 하면서 하루 이틀 정도 정글을 헤매는 코스다.

    만일 정글투어 할 시간이 없다면 R.B.G.C(Royal Brunei Golf Club) 라운드에서 부족하나마 트레킹 맛을 볼 수 있다. 브루나이의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에서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정글 속 골프코스이기 때문.

    R.B.G.C는 브루나이 최고의 골프코스로, 왕실에서 조성했으며 왕실에서 운영하는 전용 골프코스다. 회원은 불과 233명이지만 외국인 비회원에게도 라운드 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두고 있다. 페어웨이에 난 디봇 자국으로 추측컨대 하루 평균 라운드 하는 골퍼는 다섯 팀도 안 될 듯했다.

    울창한 정글을 뚫고 카펫 같은 페어웨이가 펼쳐진 블루 T-6175m, 화이트 T-5758m를 따라 가노라면 온갖 열대의 새들이 푸드덕 날고 원색의 열대꽃 위로 나비 떼가 훨훨 날아다니며 수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떼지어 어슬렁어슬렁 페어웨이를 건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때로 원숭이가 공을 집어들고 정글 속으로 사라지는 일도 있다. 이때 원숭이가 공을 집어드는 걸 봤다면 벌타 없이 그 자리에서 리플레이스할 수 있고 못 봤다면 꼼짝없이 로스트 볼로 처리된다.

    로널드 프림이 디자인한 이 아름다운 골프코스는 적당한 둔덕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완벽한 관리 덕분에 아시아의 오거스타 내셔널(US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 조지아 주의 골프장)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이 붙기도 했다(문의 011-254-9211).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