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나라 망신 첨병 ‘어글리 골퍼’

내기 골프 일삼고 캐디 하인 부리듯 … 라운딩 후엔 음주에 매춘관광 열올리기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01-15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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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망신 첨병 ‘어글리 골퍼’
    1월10일 오전 9시30분 인천국제공항 기타화물 반출신고 창구 앞. 수십명의 관광객들이 골프가방을 카트에 싣고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이다. 중년 남성뿐 아니라 30대 여성, 60대 할머니까지 있다. 한 중년 남성은 벌써 마음이 푸른 골프장에 가 있는지 퍼터를 끄집어내 퍼팅 연습을 하기도 했다. 두 명의 60대 후반 할머니는 “뉴질랜드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관광도 하고 골프도 치며 보름쯤 머물다 올 계획”이라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추위 탓에 국내 골프장들이 잇따라 휴장하면서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나는 골프 애호가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겨울로 접어든 지난해 11, 12월 두 달간 골프채를 갖고 해외로 나간 여행자는 2만4570명으로 2001년(1만5160명)에 비해 무려 62%나 증가했다. 1월 들어서는 하루 평균 1000명에 이를 정도로 골프여행이 성황이다. 2002년 한 해 동안 골프채 휴대품 반출신고를 한 해외여행자는 9만3135명으로, 2000년(4만940명)과 2001년(5만4697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실제 골프여행을 떠나는 관광객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당국의 추정이다. 즉 상당수 골퍼들이 몸만 해외로 떠난다는 소리다. 골프가방을 갖고 나갈 경우 세관에 일일이 신고해야 하고 차후 이를 통한 세무조사의 우려가 있는 데다 남의 눈치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행업계에서는 실제 해외 골프 여행객 수가 반출신고자의 5배 이상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현지에 골프채를 대량 구비해두고 골프여행객을 모집하는 여행사가 많아졌다”며 “골프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수십, 수백 달러를 주고 해외에서 골프채를 빌리는 것은 결국 외화낭비가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11, 12월 골프여행객 2만4570명 … 전년보다 62% 늘어



    나라 망신 첨병 ‘어글리 골퍼’

    해외 골프여행을 떠나려는 관광객들이 인천국제공항 세관의 휴대품 신고 창구 앞에서 줄 서 기다리고 있다.

    골프 애호가들이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와 중국 일본 등지로 골프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국내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여유 있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따뜻한 날씨 등 좋은 환경과 유흥 여건 때문이다.

    우선 비용을 보자. 3박5일(기내 1박)짜리 태국 골프여행은 70만∼90만원이고, 일본의 경우도 3일짜리가 70만원대다. 여기에는 그린피, 호텔숙식비 등 모든 비용이 포함돼 있어 국내 골프장에서 즐기는 가격(하루 평균 20만원)보다 50% 이상 싸다.

    겨울철에도 따뜻한 제주도 지역 골프장은 지난해 4월부터 세금을 대폭 감면했지만 6월에 그린피와 캐디피 등이 올라 감세효과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 육지에서 건너갈 경우 제주도는 1박2일 이상의 일정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숙식비 등이 추가돼 동남아로 떠나는 것과 별반 비용 차이가 없다.

    그리고 국내 골프장의 경우 부킹이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 골프코스에서도 다음 팀에 밀려 서둘러야 하는 형편이지만 해외로 나갈 경우 하루에 36홀까지 돌 수 있는 등 여유롭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따뜻한 날씨와 꿈에도 그리던 푸른 잔디 위라는 매력까지 있다.

    골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나라는 태국 필리핀 중국 3국. 그러나 특정 지역에만 몰려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기도 하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태국의 방콕과 파타야 등지의 골프장을 한국인들이 점령했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라며 “한국 골퍼들의 가장 큰 특징은 소문난 곳에 한꺼번에 몰려들었다가 그곳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 망신 첨병 ‘어글리 골퍼’

    인도네시아 발리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는 한국인들.

    또 일부 골퍼들이 골프장에서 추태를 부리거나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골프 전문가는 “한국 골퍼들이 캐디를 하인 부리듯 하거나 곧잘 소란을 피워 눈총을 받기 일쑤”라며 “심지어 내기 골프를 한 뒤 서로 다투거나, 캐디를 성희롱하고 때리는 사례까지 있어 현지에서는 한국 골퍼가 예의 없는 사람들로 각인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골프 여행객들 가운데는 경건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 ‘성지순례(라운딩)’를 한 다음 조용히 돌아오는 이들도 있지만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술 마시고 ‘19홀(골퍼들 사이에서 여자를 뜻하는 은어)’에 집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같은 동남아 국가지만 음주와 매춘을 금지하는 말레이시아 같은 회교국가에 상대적으로 골프 여행객이 적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19홀’에 대한 한국인의 수요가 넘치자 비용도 해마다 널뛰기를 한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 골프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는 특이하게도 18홀을 갖춘 골프장이 단 하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한국인이 많이 찾는 이유는 이곳 여성들의 미모와도 관계가 있다고 이곳을 다녀온 한 골프 애호가가 말했다.

    실제 해외 골프여행을 다녀온 이들의 소감은 저마다 달랐다. 1월 초 5박6일 일정으로 중국 샤먼(廈門)을 다녀온 아마추어 골퍼 이정재씨(50·의류업)는 “한국에서의 절반 가격으로 앞뒤 팀들에 상관하지 않아도 좋은 ‘대통령 골프’를 즐겼다”며 “별미도 즐기고 경제특구 샤먼을 돌아보며 중국의 성장세를 짐작할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반면 골프여행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밝히는 이들도 있다. 여행사에서는 대개 무제한(보통 하루 36홀) 라운딩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현지에 가면 한국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런데 이런 경우는 대개 한국인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려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겨울방학을 이용한 대규모 청소년 골프연수다. 지난 겨울 해외로 골프연수를 떠난 청소년들이 1만5000∼2만명에 이른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들은 한 달 훈련비로 최소 300만∼400만원을 지출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처럼 연수 인원이 많은 것은 박세리 최경주 같은 세계적인 골프선수들이 성공신화를 이룬 뒤부터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세계적인 선수로 기르려는 욕심에서 무리하게 해외로 골프연수를 떠나 보내면서 생겨난 현상인 것이다. 한 골프 전문가는 “그 많은 아이들 가운데 세계적인 선수가 몇 명이나 나올 수 있겠느냐”며 “부모의 과욕이 아이들의 장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런저런 문제점들은 국내 골프 환경의 열악함 탓에 생겨난 현상들이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는 지난해 골프장을 찾은 골퍼가 연인원 15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골프 전문가는 “실제 골프 인구는 300만명(업계 추산)인데 이를 수용할 골프장은 165개소에 불과한 상황에서 나온 결과여서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골프장이 2500여개소, 미국이 1만6000여개소나 된다. 인구 기준으로 따지면 한국이 29만명당 1개소, 미국과 일본은 각각 1만7000명, 5만명당 1개소가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일본 등과 지리·환경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폭증하는 골프 애호가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선근 골프다이제스트 편집장은 “골프 외유를 줄이고 골프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세금이 절반 가까이 되는 그린피를 대폭 인하하고 유휴지 등을 이용한 퍼블릭 코스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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