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형상의학’ 가라사대 “생긴 대로 病 온다”

외양·행동으로 병 진단·치료하는 전통의학 … 한의사 300여명 학회 가입 ‘관심고조’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3-01-15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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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상의학’ 가라사대 “생긴 대로 病 온다”

    어류는 입이 약간 튀어나오고 행동이 재빠르다. 허재, 강병규, 인순이(왼쪽부터) 등이 이 형에 속한다.

    사람은 생긴 대로 병에 걸리게 마련입니다. 얼굴형·눈·코·입·귀·피부색 등 나만의 독특한 생김새, 성격, 생활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병이 생기는 겁니다. 형상의학이란 사람의 겉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학입니다.”

    형상재단 이사장 조성태 박사(아카데미 한의원장)의 말이다. 예컨대 형상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유난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뚱뚱한 체형보다 마른 체형의 사람이 신경이 더 예민해 스트레스에 약하며, 눈이 큰 사람들은 간담(肝膽)이 허한 체질로 두려움과 겁이 많아 유난히 스트레스에 민감하다는 것.

    요즘 갈수록 증가하는 불임여성들의 경우도 형상의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고 한다. 즉 코가 크거나, 눈밑이 거무스름하거나, 목이 길거나, 얼굴이 각지거나, 입술이 크고 두툼하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 이런 모습은 임신 기능에 관여하는 장기가 허약하다는, 겉으로 드러난 ‘상징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생긴 대로 병에 걸린다’고 주장하는 형상의학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1976년 한의학자인 지산(芝山) 박인규 선생(2000년 작고)이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짧은 역사에 비해 그 전파 속도는 빨랐다.

    조성태 박사는 “현재 300여명의 한의사들이 대한형상의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지산 선생의 형상의학 강의를 거쳐간 한의사만도 7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대한한의사협회에 의해 공식 학회로 승인받기도 했다.



    형상의학회 부회장 조장수 원장(남제한의원)은 형상의학을 따르는 한의사들의 열기가 뜨거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산 선생이 주창한 형상의학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낸 학문이 아니라 ‘황제내경’과 ‘동의보감’ 등 전통의서에 기록돼 있는 진단과 치료법을 체계화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배우려는 한의사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동의보감’에는 얼굴의 부위를 보고 어느 장기에 병이 있는가를 구분한다’고 씌어 있는데, 지산 선생은 풍부한 임상적 경험으로 이런 동양의서의 진단법을 구체화, 체계화함으로써 한의사들의 진단과 치료에 많은 도움을 준 것입니다.”

    형상의학은 사람을 그 생김새에 따라 1만3500여개의 유형으로 분류할 정도로 복잡다기하지만, 크게는 4개의 범주로 구분해 설명한다. 즉 인체의 생긴 모습에 따라 어류(魚類)·조류(鳥類)·주류(走類)·갑류(甲類)로 분류하거나, 얼굴형에 따라 정과(精科)·기과(氣科)·신과(神科)·혈과(血科)로 나눈다. 사람은 이러한 유형에 따라 체내 장기의 허실, 성격, 병리 현상도 달리 나타난다는 게 형상의학의 핵심. 생긴 모습에 따른 특징적인 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류(수체형)

    어류는 그 생김새나 성질이 물고기와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수체형(水體形)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얼굴색이 검고, 입이 튀어나온 편이다. 걸을 때 흑인처럼 엉덩이를 약간씩 흔들면서 걷는 특징이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매우 영특하여 똑똑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행동은 느린 듯하면서도 재빠르며 겁이 많고 잘 놀란다. 성격이 냉정해 일의 맺고 끊음도 분명하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신장의 허실에 따른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할 가능성이 많다.

    ‘형상의학’ 가라사대 “생긴 대로 病 온다”

    최진실처럼 입술이 얇고 눈이 동그란 조류는 성격이 불같이 급하다.

    조류(화체형)

    조류는 새와 비슷한 생김새와 특성을 지녔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화체형(火體形)이라고도 한다. 입술이 얇으며 하관(얼굴의 아래쪽)이 좁고 뾰족하다. 눈은 아주 동그랗고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난다. 새가슴처럼 흉골이 앞쪽으로 불거져 있는 것도 조류의 특징. 이 유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얼굴이 붉은 편이고 성격 역시 불같이 급하다. 무슨 일을 하든 꾸물대는 법이 없고 신속 정확하게 처리한다. 이렇듯 성격이 급하면서도 동시에 정확하길 원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할 때가 많고 가슴이 자주 두근거리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웃는 편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가슴 두근거림 등 심장질환에 잘 걸린다.

    ‘형상의학’ 가라사대 “생긴 대로 病 온다”

    주류는 몸체에 비해 팔·다리가 긴 편. 한기범, 안성기, 정보석, 황신혜 등이 이 형에 속한다.

    주류(목체형)

    주류는 달리기를 잘하는 동물과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목체형(木體形)이라고도 한다. 갸름한 얼굴형에다 치켜올라간 눈꼬리 때문에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유형이다. 서양인처럼 몸체에 비해 팔다리가 길고 털이 많은 편이다. 주류답게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을 잘하며, 주위사람들로부터 인정이 많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예민하고 날카로운 성정 때문에 항상 무엇엔가 쫓기는 듯 불안해하는 경향도 있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간과 근육질환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갑류(금체형)

    갑류는 거북과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금체형(金體形)이라고도 한다. 목이 짧고 어깨는 넓은 편이다. 얼굴은 대체로 둥글넓적하며, 피부색은 흰 편에 속한다. 갑류의 사람들은 영감과 예감이 뛰어나고 상상력이 탁월해 주위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맨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쉽게 우울해지는 성격이라 가끔 혼자 있고 싶어하고 울기도 잘 한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폐와 관련된 호흡기 계통에 병이 잘 생긴다.

    ‘형상의학’ 가라사대 “생긴 대로 病 온다”

    갑류는 목이 짧고 어깨가 넓은 것이 특징. 노사연 이영자, 이용식, 방실이 양희은(위부터) 등이 이 형에 속한다.

    어찌 보면 형상의학의 네 가지 유형 분류법은 관상법과도 유사한 면을 보인다. 이에 대해 조성태 원장은 “생긴 모습을 파악하고(觀形) 얼굴빛이나 피부색깔을 살펴보는(察色) 것은 형상의학이나 관상학이나 다를 바 없다”면서 실제로 환자들로부터 “관상쟁이가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콧구멍이 유난히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환자에게 ‘어릴 적에 소변을 늦게 가리셨고, 요즘도 몸이 많이 피곤하면 소변 실수를 하실 때가 있지요’ 하고 물어보면 ‘어떻게 말하지도 않았고 맥도 안 짚어봤는데 알아맞히세요’ 하고 놀라서 묻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형상의학에서는 콧구멍이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방광이 좋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에 당연히 방광을 중점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조원장은 형상의학은 관상학과는 관점이 엄연히 다르다고 말한다. 관상은 얼굴의 상에서 길흉을 알아내는 것이지만, 형상의학은 얼굴의 형상을 보고 병증을 가려내는 학문이라는 것. 이에 따라 관상에서는 ‘길한 상’이 형상의학에서는 병을 앓기 쉬운 체질로 설명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관상에서는 귀가 크고 귓불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좋은 상으로 보는데, 형상의학에서는 허리가 잘 아프고 나쁜 기운에 의해 상하기 쉬운 체질로 보는 것.

    한편으로 형상의학은 그 처방에서도 약재와 음식의 모양과 성질이 반영된다. 신장이 상하기 쉬운 어류는 콩팥과 모양이 비슷한 오미자를 달여 먹거나 밤 또는 검정콩을 삶아먹는 것이 좋으며, 폐가 약한 갑류는 도라지를 달여 먹거나 귤껍질을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좋다는 것. 또 조류는 심장의 기능을 도와주는 연자(연씨), 붉은 팥, 씀바귀 등이 좋고, 주류에게는 간장을 도와주는 결명자, 냉이씨, 모과 등이 좋다고 한다.

    보약 역시 마찬가지다. 예컨대 인삼은 피부색이 희고 비교적 뚱뚱한 체질에 효과가 좋은 반면, 피부색이 검고 마른 체질에는 부작용을 일으키기 쉽다. 녹용의 경우는 뼈가 굵은 체질에 효과가 좋은 반면 그렇지 않은 체질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지산 선생의 연구로 세상에 나와 빛을 본 형상의학은 제자 한의사들에 의해 현재 일부 한의과 대학의 강의 과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그 연구가 활성화돼 있다. 구한말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의학처럼 형상의학이 또 다른 한국의 독창적 의학으로 부상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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