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토지보유세’로 수도권 과밀 해소?

  • 입력2003-01-15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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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지보유세’로 수도권 과밀 해소?
    124년 전 미국의 사상가 헨리 조지(1838~1897)는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사회가 눈부시게 진보함에도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리고 주기적으로 경제불황이 닥치는 이유는 토지사유제로 인해 지대가 지주에게 불로소득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대를 징수하여 최우선적인 세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진보와 빈곤’은 영미권에서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10여개국 언어로 번역돼 19세기 말까지 영어로 쓰인 논픽션 분야에서 성경 다음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대안이 될 수 있었던 헨리 조지의 사상은 20세기 주류 경제학계에서 철저히 무시됐다.

    1989년 ‘진보와 빈곤’(축약본)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소개한 경북대 김윤상 교수(행정학)는 “20세기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생존경쟁을 벌이는 시기였다. 정치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중간이란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헨리 조지의 사상은 기득권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으로 받아들여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빠질 만큼 배척됐다”고 말한다.

    한국 땅에 헨리 조지의 사상을 전파한 사람으로 대천덕 신부(예수원 설립자, 2002년 작고)를 꼽을 수 있다. 조지의 ‘토지공유제’가 성경적 토지 개념과 같다는 차원에서 종교적 목적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학계에서는 1960년대 초부터 개인적으로 헨리 조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있었으나, 1993년 4월 경북 대구 지역 교수들이 ‘헨리 조지 연구회’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초기에는 이정우·김종달(경북대 경제통상학), 김윤상(경북대 행정학), 한동근(영남대 경제금융학), 전강수(대구가톨릭대 경제통상학), 이재율(계명대 경제통상학), 엄창옥(상주대 산업경제학) 교수 등 10여명이 매달 한 차례씩 모여 헨리 조지의 저서를 읽고 토론하는 독서회 성격이었다가 차츰 현대 조지스트들 연구로 영역을 넓혀갔다. 연구회의 지원 아래 1996년 말 김윤상 교수가 ‘진보와 빈곤’(비봉 펴냄)을 완역하고 연구논문 ‘토지정책론’(한국학술정보 펴냄)을 펴냈으며, 올해 초 연구회 탄생 10년 만에 공동 저작물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경북대 출판부 펴냄)를 완성했다.

    ‘헨리 조지 연구회’를 비롯한 이 땅의 조지스트들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 균형 발전)의 해결책이 바로 헨리 조지의 ‘토지보유세’에 있다고 주장한다. 김윤상 교수는 ‘노무현 당선자에게 드리는 글’에서 “토지보유세를 가장 우선적인 정부 수입으로 삼는 세제, ‘지대조세제’가 실현된다면 사회정의는 물론 대선 공약인 7% 경제성장도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연구회는 이정우 교수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진출로 고무돼 있는 상태다. 헨리 조지의 사상이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될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도시 빈곤층과 소득분배에 관심이 많은 이정우 교수는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에서 9장 ‘한국의 토지문제-진단과 처방’ 부분을 집필했다. 여기서 그는 한국의 토지문제를 해결하는 데 세 가지 정책-토지세의 강화, 공유지 확대, 국민관념의 변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개막과 함께 100년 만에 부활한 헨리 조지의 사상이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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