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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짧은 ‘아리랑’ 들을수록 끌리네

외국 성악가들 한국 가곡 음반 잇따라 출시 … 독특한 감성 신선한 해석 찾는 사람 많아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혀 짧은 ‘아리랑’ 들을수록 끌리네

혀 짧은 ‘아리랑’ 들을수록 끌리네
요즈음 라디오 클래식 방송이나 음반 매장에서 가끔 기묘한(?) 발음으로 부르는 ‘사랑으로’나 ‘새야 새야’가 들려올 때가 있다. 한국 사람이 부르는 노래는 아닌 듯하나 어색함은 순간일 뿐, 들으면 들을수록 온화하고 유려한 노래가 마음을 잡아끈다. 이 노래를 부른 주인공들은 스페인 출신인 테너 호세 카레라스와 독일의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이다. 지난 11월 나란히 출반된 이들의 음반 ‘어라운드 더 월드’와 ‘방랑하는 이방인’에는 각기 한국 가요 ‘사랑으로’와 가곡 ‘새야 새야’ ‘아리랑’이 녹음되어 있다.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노래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언어를 사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국어에는 영어나 독일어에 없는 ‘으’나 ‘를’ 같은 발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국 성악가들이 내한공연 무대에서 한국 가곡을 부르거나 아예 한국 가곡을 녹음한 음반을 내놓는 경우가 늘고 있다.

혀 짧은 ‘아리랑’ 들을수록 끌리네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가곡 하면 적잖은 성악팬들은 반사적으로 1995년의 플라시도 도밍고 내한공연을 떠올린다. 잠실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이 공연에서 도밍고는 앙코르곡으로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 폭풍 같은 환호를 받았다. 도밍고의 딕션은 ‘짓밟힌’ 등 몇몇 부분에서만 어색했을 뿐 거의 자연스러웠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할 리 없는 도밍고의 ‘그리운 금강산’이 너무도 훌륭했다는 데 있었다. 이 공연은 주최측인 삼성영상사업단이 실황음반과 LD로 녹음해 시장에 내놓았다.

외국 성악가들이 한국 노래를 녹음하는 이유는 음반 판매 때문이다. 보통 한두 곡의 한국 노래가 들어가면 한국 시장에서 이 음반의 판매량은 20% 정도 상승한다. 킹스 싱어즈의 ‘마법의 성’은 애당초 판매 목표를 3만장으로 정했으나 4만장 이상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발매되는 로컬 버전(Local Version)에만 한국 곡이 수록되었지만 최근에는 세계 각국에 발매되는 인터내셔널 버전에도 한국 곡이 들어가는 사례가 종종 있다. 호세 카레라스의 ‘어라운드 더 월드’에 수록된 ‘사랑으로’는 ‘With Love’란 영어 제목으로 전 세계에서 출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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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가곡이 오히려 한국 성악가들의 노래보다 더 좋게 들리는 것일까? 정말로 외국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을 더 잘 부르는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부분적으로 ‘예스’다. 실제로 도밍고와 바버라 보니, 호세 카레라스 등은 세계적 수준의 가수들이다. 워낙 노래를 잘하는 가수들이 부른 만큼 좋게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동시에 한국의 정서와는 아무래도 다른, 독특한 감성으로 노래를 해석하다 보니 우리 귀에 신선하게 들리기도 한다. 교보문고 클래식 매장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가곡을 매장에 틀어놓으면 ‘정말 특이하다’면서 누가 불렀는지 묻는 고객들이 많다고 한다.



이 문제는 우리 가곡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다. “이탈리아 가곡은 이탈리아 민요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한국 가곡은 적잖은 수가 민요 등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서양 음악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작곡한 곡들입니다. 서양 음악에 가까운 정서에 한국 가곡이라는 이름만 덧입고 있는 곡들을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더 잘 부르는 것은 당연하지요.” 음악칼럼니스트 유형종씨(40)의 설명이다.

한국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을 이탈리아 가곡이나 독일 가곡처럼 부르는 것도 외국 성악가의 한국 가곡 음반을 택하게 만드는 한 원인이다. 그런데 성악가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항변한다. ‘명색이 성악가지만 한국 가곡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성악과에는 한국 가곡 시간이나 한국어 딕션 시간이 없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해도 한국어 발음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인지, 또 한국 가곡의 정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러시아에서 성악을 전공한 음악평론가 장일범씨(34)는 ‘러시아나 독일, 이탈리아 등의 음악원에는 모두 자국어 딕션 시간과 자국 가곡을 배우는 과정이 마련되어 있다’면서 우리나라 성악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양 음악의 한국화에 힘써온 북한은 이미 나름대로의 딕션 체계를 확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평양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이 내한공연을 가졌을 때, 북한 성악가들은 분명 한국 성악가들보다 또렷한 발음으로 노래불렀다. 당시 내한했던 북한 성악가 한 사람이 “조수미씨는 노래는 잘하는데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고 말했던 것이 한동안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약간은 어색한 발음과 색다른 감성이 실린 외국 성악가들의 한국 노래를 듣는 것은 확실히 독특한 경험이다. 우리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가 하면, 놀라울 정도의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까지 이들의 노래가 주는 인상은 다양하다.

“이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어 발음에 더 신경 씁니다. 반면, 우리는 우리말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노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음악대학 입시나 콩쿠르 등 어디서도 한국 가곡을 부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한 음반사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 성악가가 부른 것보다 훨씬 낫네’ 하면서 즐기기에는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가곡은 우리 음악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듯싶다.





주간동아 2001.12.20 314호 (p60~61)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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