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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솥밥 먹기 쉽지 않네

英 블레어 총리·브라운 장관 갈등설 파다 … 유로화 도입 문제 이견에 밀약 파기 소문도

  • < 안병억/ 런던 통신원 > anpye@hanmail.net

한솥밥 먹기 쉽지 않네

한솥밥 먹기 쉽지 않네
최근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이 신문의 사설은 내각회의실(Cabinet Room)에 전선이 형성되고 있으며, 토니 블레어 총리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각각 전선을 맞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문은 두 사람의 갈등이 정부의 정책에 혼선을 더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영국의 내각제를 움직이는 사람이 총리라면 내각의 제2인자는 재무장관이다. 영국 총리의 관저는 다우닝가 10번지고 재무장관의 관저는 11번지다. 총리와 재무장관은 정원도 함께 사용한다. 최근 영국 언론이 두 사람의 갈등을 집중 보도하자 이웃사촌인 총리와 재무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브라운 재무장관은 “토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받아넘겼고 블레어 총리는 “여러분이 듣고 보는 것과 달리 고든과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부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갈등설은 끊이지 않는다. 두 사람이 ‘결투’ 직전까지 간 것은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다. 1994년 노동당 당권 경쟁 때 두 사람 간의 밀약이 있었는데 블레어가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설, 의료와 교육·교통 등의 공공 서비스 개선, 그리고 무엇보다 유로화 도입문제에서 두 사람이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979년부터 97년까지 노동당은 장장 18년간이나 야당의 설움을 겪었다. 노동당은 83년과 87년 선거 당시 유럽공동체(EC) 탈퇴와 핵무기 포기를 공약으로 제시하는 등, 점차 급진 좌익적 성향을 강하게 보였다. 마침내 92년 총선에서 네 번째로 정권장악에 실패, 닐 키녹 당수가 물러나면서 노동당 당수는 존 스미스로 바뀌었다. 스미스 당수의 취임 이후 노동당은 급진 좌익에서 벗어나 국영기업의 사유화 등 ‘대처리즘’의 여러 요소를 받아들였다. 이른바 노동당의 현대화(new Labou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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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5월 존 스미스 당수가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당수 부재의 상황에서 노동당의 당권 경쟁이 시작됐다. 당시 고든 브라운은 그림자 내각(shadow cabinet)의 재무장관, 토니 블레어는 내무장관이었다. 또 브라운은 노동당의 기반을 이루는 최대 노동조합인 교통노조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때문에 브라운이 차기 노동당 당수가 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블레어는 원외 지지세력이 약했고 예비내각의 서열에서도 브라운에게 뒤져 있었다. 브라운과 블레어, 두 사람이 당권 경쟁을 벌인다면 노동당은 97년 총선에서의 승리도 불투명해질 상황이었다.



이때 선거전략의 귀재라고 불리던 피터 만델슨이 브라운 진영을 이탈해 블레어 지지로 급선회했다. 블레어가 노동당의 정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브라운은 블레어와 만나 담판을 벌였다. ‘당수에 출마하지 않는 대신 재무장관 자리를 달라. 그리고 집권하면 국내 정책을 주도하겠다. 블레어는 정책을 국민에게 제시하는 총리 역할을 해라.’ 두 사람은 이렇게 합의했고 블레어는 브라운의 지지에 힘입어 노동당수로 취임, 총선에서 승리했다. 일각에서는 블레어가 집권 2기 중반에 당수 자리를 브라운에게 물려준다는 약속을 했다는 루머가 파다했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 6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집권 2기를 맞았다. 또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 때 국제사회의 ‘총리’ 역할을 하며 지도력을 회복했다. 의료보험과 교육, 교통 등 국내 개혁이 미진한 가운데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우세했는데 결과적으로 블레어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블레어의 인기 회복과 맞물려 블레어-브라운 간 갈등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 와중에 내각회의실에서 브라운 재무장관이 블레어를 못 본 체하며 지나치는 장면이 BBC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또 전직 장관이 두 사람의 갈등설을 확인해 주어 언론이 이를 집중 보도하기도 했다. 블레어가 상승세를 타고 있는 데 반해, 브라운은 의료보험과 교육 등 공공서비스 개선을 두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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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유럽연합(EU)의 단일화폐인 유로화 가입을 두고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블레어는 2005년 5월에 끝나는 이번 의회중 단일화폐 가입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여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브라운은 단일화폐에 가입하기 위한 조건(이자율과 인플레이션이 단일화폐 가입 회원국 중 최저 국가보다 어느 정도 높아서도 안 되고 공공부채와 재정적자도 일정 범위를 지켜야 한다. 영국은 이미 이를 충족했기 때문에 이론상 유로화에 가입할 수 있다) 외에도 유로화 가입이 영국에 투자하려는 기업에 장기적으로 유리한지, 영국의 금융산업에 끼치는 영향 등 네 가지 조건을 더 만들었다.

문제는 이 네 가지 추가조건의 평가기준이 애매모호해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유로화 가입을 결정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브라운은 영국의 유로화 가입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의료와 교육, 교통 서비스 개선 문제에서도 브라운 재무장관과 담당 장관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재정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97년부터 3년간, 즉 노동당 집권 1기중 의료와 교육, 교통 등 공공투자 비율이 역대 정권 가운데 최저다. 의료보험에 투자하는 비율 역시 6.8%에 불과하다. 이는 EU 회원국 평균인 8%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또 영국의 도로 혼잡률은 EU 회원국 중 최고며 대중교통 요금도 가장 비싸다.

당연히 담당 장관은 의료보험과 교통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려 하지만 브라운 재무장관은 순순히 응하지 않고 있다. 브라운은 연금 소득자와 저소득층 세제 혜택에 더 많은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을 통해 지도력을 회복하고 나이도 48세에 불과한 블레어 총리가 집권 2기 중반에 물러날 리 만무하다. 이미 집권 3기를 준비한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또 데이비드 블렁킷 내무장관이 최근 급부상하는 점도 브라운 지지자에게 경계심을 줘 갈등설이 과장됐다고 일부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두 사람의 갈등이 잠잠해지더라도 언제든지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유로화 가입 여부가 영국 정계에서 갖고 있는 폭발력, 그리고 6개월을 기다려도 수술받지 못하는 환자가 부지기수인 의료상황에서 총리와 재무장관의 쌍두마차가 계속 순항할지, 재무장관이 중도하차하는 파국을 맞을지, 아니면 또 다른 공생관계를 정립해 갈지 두고 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1.12.20 314호 (p54~55)

< 안병억/ 런던 통신원 >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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