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4

2001.12.20

테러 전쟁은 석유 전쟁?

에너지 전문가들 “미국 속셈 따로 있다 … 아프간에 송유관 건설로 중앙亞 석유 확보”

  • < 박인규/ 프레시안 국제담당 에디터 > inkyu@pressian.com

    입력2004-12-10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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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전쟁은 석유 전쟁?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던 탈레반이 12월7일 사실상 항복함으로써 미국이 시작한 대(對) 테러 전쟁은 예상 외의 조기 승리로 매듭지을 전망이다. 물론 미국에는 이번 전쟁의 최대 목표였던 오사마 빈 라덴 제거라는 과제가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 테러 근절이 이번 전쟁의 목표라는 미국 정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중앙아시아 지역에 정통한 관측통들, 에너지 문제에 밝은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이 아프간 전쟁에 나선 이면엔 중앙아시아 석유자원의 수송경로 확보라는 또 다른 목표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프간 전쟁을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도대체 중앙아시아 지역의 석유자원이 어느 정도이기에 미국은 이처럼 지대한 관심을 보인 걸까?

    미국 정부 에너지부에 따르면 카스피해 연안의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카스피안4로 불린다)에는 자그마치 270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전 세계 매장량의 5분의 1이나 된다. 이 지역보다 석유 매장량이 많은 곳은 걸프 지역(6750억 배럴) 한 곳뿐이다. 또 천연가스 매장량도 665조 입방피트로 전 세계 매장량의 8분의 1을 차지한다. 한마디로 이 지역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남은 에너지 자원의 보고인 셈이다.

    소련이 해체된 1990년 이전까지 이 지역의 어마어마한 에너지 자원은 서방이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이 지역에 신생 독립국들이 생겨나면서 서방의 석유기업들은 이 지역에 앞다투어 진출을 모색했다. 97년 4월 미 국무부는 의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카스피해 연안 에너지 자원의 조속한 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처음 밝혔다. 세계 최대 석유서비스 업체인 미 핼리버튼사 사장을 지낸 체니 현 미국 부통령도 카스피해 지역만큼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곳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의 핵심은 카스피해 지역의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도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한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점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치적·경제적으로 가장 합당한 이동 루트는 바로 아프간을 관통하는 루트다. 우선 미국은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나 이란을 통한 석유 수송에는 결사 반대다. 유럽의 석유소비 증가율은 둔화되고(연간 0.5%) 있으며 게다가 석유공급자간 경쟁도 치열하다. 중앙아시아에서 서쪽 흑해 연안으로 석유를 운송하는 길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는 의미다.

    테러 전쟁은 석유 전쟁?
    반면 아시아의 석유 소비는 2010년까지 현재 소비량의 두 배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마디로 카스피해 지역의 석유를 남쪽 아라비아해까지 송유관으로 운반해 항구에서 배를 통해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으로 수송해 파는 쪽이 훨씬 이익이 난다. 즉 최대 이윤을 보장하는 석유 운반 경로의 길목에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95년 미국의 석유회사 유노칼(Unocal)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간을 거쳐 파키스탄의 아라비아해 쪽 항구에 이르는 석유 및 가스관 공사 건설 협상을 시작했다. 탈레반 정권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96년 9월,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미국이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묵인한 가장 큰 이유는 (탈레반의 동의를 구해) 아프간을 통한 석유 이동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미국의 이런 기대를 저버렸다. 유노칼은 동아프리카의 미 대사관이 테러 공격을 받은 지 4개월 후인 98년 12월 아프간 경유 송유관 건설계획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이 테러는 오사마 빈 라덴에 의한 것이며 탈레반 정권이 빈 라덴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 이상 이 계획을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탈레반 설득작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11월15일 프랑스에서 발간된 ‘빈 라덴과 감춰진 진실’이라는 책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취임 직후인 지난 2월부터 은밀히 탈레반측과 송유관 문제에 관한 협상을 시작했다. 3월에는 탈레반측 특사가 워싱턴을 방문했는데 이 책에 따르면 협상 도중 미국측 대표는 탈레반 특사에게 우리가 제안한 황금카펫(a carpet of gold)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신들을 융단폭격(a carpet of bombs)으로 묻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고 한다.

    송유관 경유 대가로 미국이 아프간정부에 무엇을 지불하기로 약속했는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한 석유회사가 아프간에 연간 10억 달러를 보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략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부시 정부는 빈 라덴 지원 문제와는 무관하게 탈레반과 협력할 용의까지 있었다.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을 아프간 영내에서 보호하고 있는데도 미국이 아프간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려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아프간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다간 미국의 석유기업이 송유관 건설계획을 탈레반 정부와 협상하는 일 자체가 법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탈레반측이 끝내 미국의 송유관 협력 요청을 거부하면서 미국은 군사력을 동원한 탈레반 제거 쪽으로 입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최근 서방국가에서 나오는 자료들에 따르면 미국은 9·11 테러가 발생하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8월 중앙정보국(CIA)을 중심으로 아프간 침공계획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라덴 신병 인도를 위한 양국간 비밀협상은 지난 8월 초 최종 결렬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한 달 후 9·11 테러가 발생했다. 미국은 테러 근절이라는 너무나도 떳떳한 명분을 들고 아프간 전쟁을 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쟁 결과로 탈레반 정권이 몰락하고 아프간에 친미 정부가 들어설 경우 미국은 중앙아시아의 석유자원 확보라는 오랜 숙원을 달성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것은 빈 라덴 제거와 테러조직 파괴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미국에 이익을 주는 일이다.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자국 내 송유관 건설에 왜 반대했는지에 대해선 아직 설득력 있는 해답이 없다. 어쩌면 송유관 건설에는 동의했지만 빈 라덴의 신병 인도 문제가 걸림돌이 됐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모두 미국 석유회사와 매우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세계 최고 미국경제의 힘의 원천은 바로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에 기초한다. 미국이 수행중인 아프간 전쟁이 향후 과연 미국 석유업계의 중앙아시아 석유 수송 프로젝트와 연결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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