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4

2001.12.20

햇병아리 보험맨… 스물여덟 살의 성공시대

동부생명 동대구지점 최민호씨… ‘양보다 질’ 그만의 차별화 전략, 20개월 만에 억대 연봉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2-10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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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병아리 보험맨… 스물여덟 살의 성공시대
    알아보기 쉽게 그림과 표로 설명하죠.” 손바닥 두 쪽만한 최첨단 노트북 컴퓨터의 화면이 켜지면서 보험설계사 최민호씨(28)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그의 인터넷폰으로는 개인 비서가 보내주는 보험정보가 쉴새없이 입력되고, 무선 프린터는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즉석에서 인쇄해낸다. 고객은 작은 가죽가방 하나에서 나온 이 모든 첨단 장비들이 신기한 듯 그의 설명에 넋이 나가 있다.

    보험계약이 성사된 후 최씨가 갑자기 고객에게 기념 촬영을 제의한다. “사진기도 가지고 다니느냐”는 고객의 질문에 최씨는 대답 대신 노트북 상단의 조그만 구멍을 가리킨다. 노트북에 내장된 디지털 카메라가 고객과 최씨의 다정한 모습을 촬영하자, 그는 바로 사진을 노트북에서 편집한 뒤 프린트해 준다. 계약서를 받아든 고객은 아주 흡족한 듯, “세상 많이 좋아졌다”며 탄성을 발한다. 최씨는 “좀더 깨끗하게 인화된 사진을 보험정보와 함께 부쳐드리겠다”고 말한 후 자리를 뜬다.

    동부생명 동대구지점 최민호씨는 언뜻 보기에 먼 미래 사회의 보험설계사처럼 보인다. 보험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고객들에게 쉽고 빠르게 보험 내용을 전달하고 가장 알맞은 보험 종류를 찾아내기 위해 투자한 돈과 시간의 결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한사코 자신을 “입사(99년 4월) 3년차의 햇병아리 보험설계사일 뿐”이라고 겸손해하지만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볼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입사한 지 2년6개월밖에 안 된 보험설계사가 3000cc 이상의 개인 승용차를 두 대나 굴리고, 개인 비서까지 두고 있다면 누가 그를 평범한 보험 설계사로 볼 것인가?

    그의 ‘비범함’은 업계 선배들의 평가에서도 잘 나타난다. 국내 생명보험사 소속 20대 보험설계사 중 유일하게 억대 연봉의 ‘신화’를 이룬 이 청년에게 그들이 붙여준 별명은 ‘무서운 20대’. 최씨는 동부생명 입사 20개월 만에 이미 억대 연봉의 고지를 점령했고, 30개월이 지난 12월 현재 그의 월급은 2000만원에 육박한다. 그런 그가 설계사 선배들에게 무섭게 보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터. 반면 새내기 설계사들에겐 불굴의 신화를 이룬 꿈의 선배로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있다.



    햇병아리 보험맨… 스물여덟 살의 성공시대
    하지만 그 역시 시작은 미약했다. 2년 전 그의 첫 월급은 각종 수당을 포함해 고작 100만원. 동기 보험설계사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친구와 친척들을 괴롭히며 구걸 세일즈를 한 것도 똑같았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 더욱이 지방대 출신(울산대 영문학과)인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사실 그리 넓지 않았다. 토익 성적 900점에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실력을 갖췄지만 그를 받아준 대기업은 별로 없었다. 대기업 L사에 취업한 적도 있었지만 IMF 사태가 닥치면서 입사가 취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 와중에서 그가 발견한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은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몇 안 되는 직업으로 받아들여졌다.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던 그가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은 99년 10월 종신보험 상품이 등장하면서부터. 일반 사망보험이나 장애보험, 암보험을 모두 하나로 합치면서도 보상체계는 맞춤형 보상이 가능한 종신보험의 진가를 그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봤다. 교통사고를 포함한 각종 질환(암 포함)에 대한 치료비와 보상금이 죽을 때까지 지급되고, 사망 후나 심지어 자살한 사람에게도 보험금이 지급되는 종신보험의 등장은 그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하지만 당시 보험설계사들은 보험료가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종신보험에 주목하지 않았고, 2000년 하반기부터 보험사간 종신보험 ‘전쟁’이 터진 후에도 그는 좀더 유리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그에게 가입한 종신보험 가입자만 310여명.

    그렇다면 그가 이런 신화를 창조하기까지 독특한 비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겸손이 몸에 밴 그가 어렵사리 꺼내놓은 ‘그만의 비법’은 다름 아닌 ‘고객의 기호 파악하기’와 완벽한 ‘애프터서비스’ 정신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면 끊임없는 ‘자기 개발’.

    그는 실제 ‘먹잇감’을 발견하면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처음 만나서는 보험에 관련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는다는 것. 고객의 취미가 영화면 영화, 음악이면 음악, 미리 파악된 주제를 소재로 상담하다 보면 종래에는 고객이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곧 계약으로 연결된다는 게 그의 신념. 누군가를 소개받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대화할 내용의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서야 고객을 만난다. 그가 하루에 만나는 인원을 2, 3명으로 제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즉 ‘양보다 질’이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만난 사람은 바로 보험을 가입하지 않더라도 친한 사이가 되고 종래는 고객이 되거나 경제적 여력이 있는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게 된다.

    일단 계약이 성립되면 고객에게는 아름답게 편집된 사진과 함께 선물을 배달하고 일주일에 한 번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e-메일이나 휴대전화로 서비스한다. 개인 비서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상팀이 따로 있지만 고객에게 조그마한 문제라도 발생하면 반드시 자신이 직접 처리한다.

    이런 고객 만족 서비스 때문일까. 그에겐 요즘 한 달에 10건 이상의 ‘해피콜’이 쇄도한다. 해피콜이란 기존 고객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는 것으로 모든 고객이 그의 직원 노릇을 충실히 해주는 셈이다.

    “세상에는 세일즈맨과 샐러리맨이라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노예의 길이고 하나는 독립의 길이다.” 그는 비록 샐러리맨이지만 세일즈맨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 부단한 자기 개발은 필수. 지난해 증권업협회에서 주관한 자산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데 이어 요즘은 공인중개사 시험과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AICPA)을 준비하고 있다. 또 사비를 들여 일본과 미국의 선진 보험사를 찾아 한국 보험의 미래를 예측하고 수요 변화도 계산한다.

    학기마다 모교인 울산대학교에 200만원씩 장학금을 기탁하는 그는 후배들에게 실업의 칼바람 속에 비치는 한 줄기 서광 같은 존재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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