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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漢流 열풍의 허실

‘조선족’ 漢流와 韓流 사이

높아진 중국 위상에 희비 교차 … 차별 해소 ‘기대’ 속 귀국해도 기반 마련 못할까 ‘초조’

  •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조선족’ 漢流와 韓流 사이

‘조선족’ 漢流와 韓流 사이
한류(漢流)는 조선족들에게 ‘희망’과 ‘소외’를 되새김질하게 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서울 가리봉동과 안산 등지의 조선족 밀집지에선 요즘 밤마다 조선족들의 이야기꽃이 만발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된 흐름은 수직상승한 중국의 위상에 대한 무한한 기대감과 그 이면에 깃든 조선족들의 초조함이다.

“상당히 다급해졌다. 황해를 건너면서 저마다 품었던 꿈을 행여 이루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최근 조선족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한국 내 조선족의 권익찾기 활동을 벌이는 중국동포 김일남씨(50)는 “외국자본의 중국 유입이 가속화하면서 뒤늦게 중국에 돌아갈 경우 경제적 기반을 제때 마련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당초 예정보다 귀국시기를 앞당기는 조선족들이 적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대다수 조선족이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귀국시기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후다.

귀국을 서두르지 않더라도, 향후 중국에서의 자립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에서 새롭게 기술을 익히는 조선족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옌볜 출신 Y씨(32)도 그런 경우다. 지난 98년 3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3년간 섬유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7개월 전부터 한 PC부품 제조업체로 이직해 밤엔 컴퓨터학원에서 인터넷 관련 기술을 배우는 ‘주경야독’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체류기한을 넘겨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내년 10월 중국에 돌아가 소규모 정보기술(IT)업체를 경영할 꿈을 갖고 있다.

헤이룽장성(黑龍江省)이 고향인 조선족 여성 J씨(41)는 두 달 전부터 강원도 태백의 한 목욕탕에서 때밀이로 일한다. 10년 전 고향에 두 아들을 둔 채 남편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식당 종업원, 파출부,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해 서울 시내에 집까지 마련할 정도로 적지 않은 돈을 모은 그는 2년 뒤 중국으로 돌아가 목욕탕업을 해볼 생각이다.

‘조선족’ 漢流와 韓流 사이
재중동포를 재외동포의 범위에서 제외한 재외동포법에 대해 지난 11월29일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그동안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온 조선족들이 일면 고무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지난 10월 몇몇 조선족이 내년 월드컵 기간중 중국어 통역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조선족 신문인 ‘동북아신문’ 관계자를 통해 2002월드컵한국조직위원회에 전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서글픔도 이들에겐 앙금처럼 남아 있다. 조선족 대다수가 불법체류자인 마당에 이들에게 자원봉사 기회를 주면 다른 재외동포와의 형평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조직위측이 내세운 반대 이유. 그럼에도 조직위엔 요즘도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조선족들의 문의가 잇따른다.

그러나 조직위 인력운영담당관실 관계자는 “대회 운영을 위한 2200여명의 외국어서비스 인력(자원봉사자) 모집은 지난 9월 마감됐다”며 “다만 최근 조 추첨 이후 중국어 통역인력의 추가 모집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아직 모집 계획이 구체적으로 서지 않았다”고 밝힌다.

서울조선족교회 최황규 목사는 “사회적 혼란을 우려해 현행 재외동포법의 효력을 2003년 12월31일까지 유지한 탓에 조선족들이 아직도 불법체류자 신분에 놓여 있긴 하지만, 이들 중엔 통역능력이 충분한 고학력자도 많은데 경직된 잣대만 들이대는 것은 지나친 처사 아니냐”고 반문한다.

사실 재외동포법이 개정돼 2년 뒤 신분을 보장받더라도 한국에 정착하려는 조선족은 극히 드물다. 기술과 자금력도 없이 마냥 3D업종에 종사하면서 살아갈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이나 가까운 장래에 중국으로 돌아가면 한국 돈 10만원으로 1ha의 임야를 살 수 있는 ‘희망’이 이들에겐 더 자연스럽다. 자연히 한류 열풍을 바라보는 조선족들의 기대 또한 클 수밖에 없다. 한류 열풍의 한쪽 끝자락을 붙잡은 조선족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은다. “너무 박대하지 말라. 두고 봐라. 중국을 떼놓고선 한국을 설명할 수 없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같은 동포이면서도 중국 국적을 지닌 이들이 내뱉는 이구동성이 예사롭지 않게만 들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주간동아 2001.12.20 314호 (p34~35)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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