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4

2001.12.20

한류 열풍에 ‘역풍’ 불라

중국 내 한국인 상당수는 漢流에 냉소적 … “10여년 걸친 터닦기 무산될까” 오히려 걱정

  • < 강현구/ 베이징 통신원 > beha@263.net

    입력2004-12-08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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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열풍에 ‘역풍’ 불라
    한류(漢流)를 바라보는 중국 진출 한국인들의 심경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기대는 한류가 한국이 중국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말 그대로의 기대감이고, 우려는 과거처럼 바람에 휩쓸려 더 많은 부작용만 남긴 채 사그라지지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다.

    한류란 신조어를 떼어놓고 생각하면, 한국의 중국 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교를 전후해 불었던 중국행 러시는 차치하더라도, 지난해 말의 정보기술(IT)업종 중국 진출 붐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지금의 한류에 비해 그 열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중국 진출을 3단계로 구분한다. 즉 한국에서 한계에 봉착한 산업들이 임가공 형태로 진출한 시기, IMF사태 여파로 임가공 형태의 진출이 주춤하고 중고 플랜트와 중간 가공품의 수출이 주를 이룬 시기,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직접 진출이 활성화된 요즘으로 나눈다.

    흥미로운 것은 각 시기마다 중국 진출의 유형과 성패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 1차 중국 붐을 일으킨 첫 시기는 중소기업의 직접 투자가 주류를 형성했고, 지역 역시 한국과 가까운 산둥성 및 동북 3성에 편중해 있었다. 현재 중국 교민사회의 토박이 역할을 하는 사람들 중엔 이때 진출한 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중국에서 자리잡은 과정은 고난의 과정이었다. 충분하지 못한 자본 사정에 한국과 전혀 다른 사업환경, 여기에 더해진 사기와 속임수 등은 큰 부담이었다.

    반면 IMF사태의 여파가 잠잠해진 시기에 IT업종을 중심으로 한 투자 붐은 그래도 조금 나은 조건에서 진행됐다. 중국의 투자환경이 많이 개선됐고, 한국 정부도 현지에 지원기관을 설립하는 등 중국 투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투자자들 중에도 무모한 진출을 시도하거나, 아예 한국시장에서의 인지도 향상을 노린 ‘묻지 마 투자’를 강행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최근의 중국 투자는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출발한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전후로 한 각종 법제 및 투자 규정의 개선은 좀더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것은 한국의 중국 진출 노력의 성과가 서서히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국 대기업의 중국 내수시장에서의 선전과 중소기업들의 IT시장에서의 약진이 대표적이다. 아직은 물론 속단할 정도의 뚜렷한 성과를 얻지는 못하고 있지만, 중국 내수시장에서 일정 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10여년의 짧은 중국 진출 역사를 놓고 볼 때, 중요한 전환점인 것만은 틀림없다.

    바로 이런 환경변화가 재중(在中) 한국인들에게 한국의 한류에 대해 과거의 시니컬한 반응과 달리 기대를 갖게 하는 근본 이유다. 이런 경향은 학생들보다 사업가들에게, 특히 이미 자리잡은 사람들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사업가들에게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베이징에서 IT업종에 종사하는 한 사업가는 “과거보다 한국에 투자를 권유하기가 훨씬 쉬워졌다”며 한류가 가져올 혜택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한류에 대해 절대적 기대를 갖는 이들은 한국 정부가 파견한 기관원들과 대기업 종사자들이 대다수다. 다른 많은 한국인 사업가나 학생들은 오히려 한국의 한류 열풍에 다소 냉소적이다.

    한류 열풍에 ‘역풍’ 불라
    중국에 제2의 본사 설립이니, 사내 중국 전문가 양성이니 하는 한류 열풍의 단편은 아직 일부에 국한된 현상일 뿐, 중국 내 대다수 한국인은 오히려 그 역풍을 걱정한다. 이들에게 중국은 한때 열풍의 대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투자하면서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이자 도전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남들보다 한발 앞서 중국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한국에서 무섭게 부는 한류 열풍이 10여년에 걸친 중국 진출의 성과를 실패로 몰아가지나 않을까 근심한다. 과거 한국의 중국 진출 과정에서 보여진 실패를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인 것이다. 멀리 보지 않더라도, 올 초 중국에 진출하겠다고 공언한 100여개의 IT기업 중 현재 베이징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회사가 몇이나 되는지 따져보면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붐이 일 때마다 한국언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는 중국 전문가의 부재다. 사실 한 명의 중국 전문가를 배출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언어 구사능력 면에서 중국인과 기본적 언어소통이 가능하려면 최소 1년 이상 중국 현지에서 투자해야 한다. 비즈니스가 가능한 정도의 유창한 실력을 원한다면 그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다. “중국 내수시장 진출을 위한 필수조건인 중국문화에 대한 심층적 이해는 단지 책을 통해서만 흡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는 게 많은 중국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당장 필요한 중국 전문가의 수요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실제로 충분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중국 전문가의 잠재적 인력 풀(pool)은 존재한다. 베이징 소재 4년제 대학의 한국인 졸업생만 해도 매년 200여명이다. 여기에 석ㆍ박사 배출까지 고려하면, 베이징에서 한 해에 배출되는 중국 전문가 수는 결코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장ㆍ단기 유학생 구분은 물론, 적게는 6000명에서 많게는 2만명까지 전체 유학생 규모에 대한 추산치도 천차만별이다.

    더 큰 문제는 한류 열풍에도 불구하고 유학생들에게 취업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베이징 유학생 다수가 중국에서 일하길 원하지만, 실제 취업은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한국 기업들의 인식 부족에 기인한다. 일례로 얼마 전 베이징에서 IMF사태 이후 처음으로 채용박람회가 개최됐는데, 50여 기업이 참가한 이 행사에 대한 유학생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채용 의욕을 가진 기업보다 정보수집 차원에서 참가한 기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전문가와 예비 전문가의 풀은 한국과 중국에 걸쳐 폭넓게 상존한다.

    한류 열풍으로 파생될 불확실한 미래의 인력자원에 기대를 걸기보다 현존하는 인력자원에 먼저 눈돌려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전에 현황 파악부터 우선돼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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