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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개혁이냐 분란 시작이냐

민주당 특대위 쇄신안 ‘양날의 칼’ … 당권·대권 분리 둘러싸고 주자들 예각 대립

  • < 김종혁/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kimchy@joongang.co.kr

정치 개혁이냐 분란 시작이냐

정치 개혁이냐 분란 시작이냐
지난 12월4일 오후 5시 여의도 민주당사 기자실. ‘민주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위원장 조세형·이하 특대위) 간사인 김민석 의원이 서류 몇 장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그리곤 또박또박 결정 사항을 읽어나갔다.

“정당 민주화를 위해 당권과 대권을 완전 분리하기로 특위가 의견을 모았습니다. 누구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는 인사들은 당 지도부 선출 때는 후보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김의원이 전한 메시지는 간단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 쪽에 적(籍)을 걸어놓고 여론의 주목을 받은 뒤 떨어지면 다시 당권을 기웃거리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자신 없으면 괜히 나서지도 말라”는 일종의 경고다.

“대선 후보들을 제쳐놓고 당 지도부를 구성하면 무게가 실리겠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의원은 “특대위 위원들은 결국 정리가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국에는 차기 주자 일부가 스스로 방향을 전환해 당 지도부로 남는 길을 택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대위의 이날 결정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이날 오후 7시경 한화갑 고문측의 이용범 언론특보가 헐레벌떡 민주당 기자실로 달려왔다. 그는 흥분한 표정으로 “당권·대권을 분리한다는 특대위의 발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고문의 계보인 문희상 의원은 “중복출마 금지는 공민권 제한이고 헌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고문측은 한걸음 더 나아가 “대선후보 경선에 나가지 않을 당내 인사들이 경선 후보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당을 지배하려는 것 아니냐”며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한고문측은 한광옥 대표와 당내 주류로 부상한 중도개혁포럼(회장 정균환)까지 겨냥하는 듯한 뉘앙스였다.

그러나 애가 탄 한고문측과 달리 이인제 노무현 김중권 고문측은 “특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근태 정동영 고문 역시 “권력 분산이란 큰 취지를 위해 당권·대권 분리는 찬성하지만 지도부 출마까지 금하는 건 심하지 않느냐”는 소극적 반대를 표시하는 데 그쳤다.

한고문측의 격렬한 반발은 또 다른 구설수를 낳았다. “한고문은 대권이 아니라 사실은 당권을 노렸다”는 소문이 나돈 것이다. 애초 당권에 뜻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흥분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고문측의 반발은 대권이 아닌 당권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이날 특대위 결정이 한고문의 경선 전략에 치명타를 입혔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그동안 한고문은 “1월에 전당대회를 먼저 열어 당 대표를 뽑고, 당 체제를 정비한 뒤 대선은 지자제 선거 이후인 7월에 치르자”는 ‘2단계 전대론’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명분이야 여러 가지 내세웠지만 여기에 깔린 계산은 간단하다.

그는 지난 8월30일 최고위원 전당대회 선출 때 1위를 했다. 대의원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 후보로서의 지지도는 낮지만 당 대표로서의 지지도는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1월에 당 대표만 뽑는 전당대회를 먼저 치르면 한고문으로선 그만큼 승산이 높은 것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97년 대선 경험도 한고문에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됐을 법하다. 당시 이총재는 3월에 대표가 되고 난 뒤 그때까지 박찬종 고문에게 뒤지던 지지도를 역전시키고 7월 경선에서 후보로 선출됐다. 따라서 당권과 대권 중복출마를 금지하면 한고문측으로선 중요한 교두보 하나를 빼앗기는 셈이다.

특대위는 당권·대권 분리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후보난립 방지를 들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이 당장은 성과를 보기 힘들 것 같다. 민주당 6명의 유력한 차기주자 전원이 대권 경쟁을 포기하고 당권으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일 특위 안대로 확정된다면 민주당의 차기 경선은 제주도를 출발, 전국 16개 시·도를 순회하며 치러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인구가 적은 지방을 역순으로 올라와 경기·서울에서 경선의 대미를 장식한다는 것인데 이런 방식이라면 미국에서처럼 자연스레 탈락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신의 근거지에서조차 지지도가 낮으면 여론의 압력 때문에라도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이 뻔하다. 어찌 보면 민주당의 차기 주자들로서는 자연스레 몸을 빼면서 자신과 가까운 다른 주자와 당권과 대권을 나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대위의 계산이 무엇이고, 쇄신안이 얼마나 선의(善意)에서 나온 것이든 그것이 실현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당권·대권 분리뿐 아니라 내년 경선 시기까지 포함한 특대위의 최종안은 이번 주말(15일)에 확정되지만 이게 곧바로 당내 분란과 잡음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수는 특대위 공정성에 수시로 이의를 제기해 온 한고문측이다. 한고문의 측근인 설훈 의원은 지난 9일 “특위가 엉터리 결론을 내면 무작정 따를 수 없다”며 불복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한고문에게는 지난 5월 정풍운동을 주도했던 쇄신연대가 우군 역할을 하고 있다. 쇄신연대는 소속 의원이 20여명에 불과하지만 선점해 온 명분이 있어 이들의 목소리는 숫자보다는 훨씬 큰 게 현실이다. 이런 쇄신연대가 10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특위안과는 별도의 안을 내겠다”고 공언한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일정대로라면 특대위가 만든 최종안은 19일로 예정된 당무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고문과 쇄신연대가 당무회의에 불참하면서 승복을 거부할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민주당은 또다시 심각한 내분사태에 빠질 전망이다.

당내에서는 “한고문측이나 쇄신연대가 당을 깨겠다는 생각이 없는 한 특대위 최종안이 당무회의를 합법적으로 통과하면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한다. “경기 도중 규칙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특대위 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부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이를 인식한 듯 특대위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대위는 10일 ‘특대위가 잘한다는 응답이 60.7%’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여론의 힘을 빌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당내 갈등과 별개로 민주당 특대위는 정당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회의원을 총재가 일방적으로 낙점하던 구태에서 벗어나 당원들의 상향식 공천으로 뽑도록 한 것이나,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에 일반 유권자를 30% 참여시키겠다는 방안 등은 획기적이다. 총재직을 폐지하고 당과 정부를 분리한다는 내용 역시 여당으로선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발맞춰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고 있다. 김덕룡 박근혜 부총재 등은 “민주당의 개혁 움직임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며 당내 민주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쉽게 예를 찾기 어려운 ‘개혁 도미노’ 현상이다.

민주당 특대위의 정당정치 쇄신안은 현재로선 양날의 칼이다. 잘되면 민주당이 환골탈태하고 등 돌린 민심을 끌어안을 개혁의 불씨가 되겠지만 자칫하면 당내 분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지금 개혁과 분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주간동아 2001.12.20 314호 (p14~15)

< 김종혁/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 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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