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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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사 9인의 ‘대하 서사시’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2-16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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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무사 9인의 ‘대하 서사시’
    작년에 개봉한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본 사람이라면 초반 10분의 전투신을 잊지 못할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전투신에서 배우들의 고속 동작을 시분할한 뒤 연속된 삽화처럼 펼쳐보임으로써 강렬한 시각효과를 낳았다.

    오는 9월7일 개봉하는 우리 영화 ‘무사’에서도 이런 기막힌 전투신을 볼 수 있다. 사막의 습격신, 계곡의 전투신, 숲에서의 게릴라전, 토성에서의 마지막 전투신 등 영화에는 여러 차례 전투장면이 등장하는데 화려하면서도 공포스럽고 비장하기까지 한 각각의 전투신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실적인 무협액션으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별 사전정보 없이도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기획 제작에만 5년, 총 제작비 70억 원(한국영화 사상 최고 제작비다), 중국 대륙 1만 km 횡단의 올로케 촬영, 거기에다 출연배우는 안성기 정우성 주진모, ‘와호장룡’의 장쯔이 등 이름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이는 톱스타들이다. 감독 역시 만만치 않다. ‘비트’ ‘태양은 없다’ 등 남성적인 액션영화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온 김성수 감독은 이름만으로도 관객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다.

    고려 무사 9인의 ‘대하 서사시’
    잘만 하면 한국 영화사를 다시 쓸 대작, 그러나 이런 영화가 잘 안 되면 그것만큼 실망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궁금증을 있는 대로 증폭시킨 후에야 비로소 실체를 드러낸 ‘무사’에 대해선 뭐랄까, 전자와 후자의 반응이 50 대 50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1375년 한반도에선 고려와 조선이, 중국에선 원과 명이 교체되던 혼란기를 배경으로, 영화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돌아오지 못한 무사 9명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극한상황에 내던져진 인간의 모습에서 명예와 희생, 충성과 신의, 명분과 선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던지고 있으며 생존에 대한 처절한 본능,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상실감 등이 단순한 액션영화의 궤를 벗어나 장대한 대하서사시로서의 품격을 갖추었다.



    이런 미덕은 높이 살 만하고 이역만리에서 사라져 간 무사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장대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현란한 영상 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어느 때보다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는 정우성 주진모 등 스타들의 연기에서도 카리스마는 다소 부족한 편. 이젠 세계적 스타로 성장한 장쯔이도 문화와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 이전 영화에서의 매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한국영화 시장에 더할 수 없이 어울리는 규모와 스케일을 갖추었지만, ‘무사’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는 자못 궁금하다.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등 지극히 가볍고 발랄한 영화들에 관객의 사랑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런 무겁고 진지한 영화에도 우리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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