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0

2001.09.06

‘라디오 스타’ 대 끊길라

‘뮤비’에 밀려 ‘소리’영향력 상실… 거센 상술바람에 ‘승자독식 법칙’만 강화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 authodox@orgio.net

    입력2004-12-15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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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 스타’ 대 끊길라
    ‘뮤비’에 밀려 ‘소리’영향력 상실… 거센 상술바람에 ‘승자독식 법칙’만 강화

    1980년 단돈 20만 달러의 자본금으로 하루 종일 뮤직비디오만 방영하는 음악 유선방송국(M-TV)이 개국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 미국 음악산업 관계자는 황당한 발상에 조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5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M-TV는 음악의 역사는 물론, 방송의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 없이 80년대 초엽 팝의 황제로 군림한 마이클 잭슨과 당시 떠오르는 샛별인 마돈나와 프린스 같은 슈퍼스타들을 상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뮤직비디오는 음반 홍보 보조물의 지위에서 벗어나 음악의 생산과 소비의 개념을 혁신시켰으며, 독자적인 표현 미학의 영토를 순식간에 완성해 버렸다. 뮤직비디오의 부상과 디지털 포맷인 CD의 출현은 80년대 세계 대중음악사의 거대한 전환점이 된 것이다.

    ‘보는 음악’의 붐은 90년대 초엽 템포가 빠른 댄스뮤직의 득세와 더불어 한반도에 거세게 몰아쳤고, 1995년 유선방송의 개국과 함께 이제는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90년대 벽두만 해도 제대로 제작비를 투입한 뮤직비디오 클립은 당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한 변진섭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92년 봄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열풍은 뮤직 비디오의 전성시대를 예감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통은 90년대 후반을 장식한 슈퍼스타 조성모로 이어진다. 조성모의 기록적인 성공으로 인해 출판보다는 많이 들고, 영화보다는 훨씬 저렴하다는 음반 제작비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너졌다. 4분여의 영상에 10억 원 가까운 제작비를 쏟아붓는 광경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이다. 90년대 초반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한 ‘서편제’가 제작비 3억5000만 원 내외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엄청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보는 음악’의 역기능은 상당히 심각하게 형성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음악’ 자체의 ‘청각예술에 대한 존중’이 시장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변모하면서 음반산업의 손익분기점은 급속히 치솟았고, 승자독식의 게임의 법칙은 더욱 강화하였다. 98년부터 일기 시작한 가난한 인디의 신화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마이너 아티스트의 고귀한 가치는 날이 갈수록 빛이 바랬다.



    뮤직비디오의 퍼레이드가 낳은 어둠의 뒤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의 선풍이 머지않은 장래에 황금알을 낳을 거위로 예상되는 모바일 폰 콘텐츠 시장의 주력 소프트웨어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있긴 하지만, 이미 우리는 음악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미디어 하나를 완전히 초토화하는 우를 범했다.

    아무리 동영상이 미디어의 근간이라 하더라도 음악의 근본은 여전히 ‘소리’이며 그것의 주력 미디어가 역시 FM 라디오 채널임은 음악산업의 본토라 할 수 있는 미국 시장에서도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더 이상 라디오 스타는 존재하지 않으며, 나아가 라디오라는 전통적인 음악 매체 자체가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이보다 근원적 문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음악이 그저 흥행기획 상품의 지위로 전락할 때 시장은 장기적인 불황의 늪으로 빠져든다. 할리우드라는 주류의 견고한 성채 아래엔 다양성과 개성에 바탕을 둔 미국 인디 영화의 광범한 인프라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뮤직비디오는 음악에서 필요악이다. 하지만 이 필요악이 전진하는 개념이 되기 위해선 독창적이고 전위적인 인디 뮤직비디오가 활성화하여야 한다. 미국 얼터너티브 진영의 몇몇 아티스트처럼 뮤직비디오 자체를 거부하고 라이브 콘서트에 주력하는 대안적 노선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한국 뮤직비디오의 향방은 바로 이 지점에 걸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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