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5

2001.08.02

‘라틴 음악’과 함께 이 여름을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5-01-13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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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 음악’과 함께 이 여름을
    검은 옷에 검은 숄을 걸친 여가수가 무대에 서서 두 손을 모은 채 노래를 부른다. “사랑은 비틀거리는 발걸음 미쳐버린 눈길 눈물의 향연 차갑게 식어버린 빛이라네 더 이상 사랑에 대해 노래하지 말아요….” 애수어린 가사와 흐느끼는 듯 처연한 목소리, 그리고 기타 반주가 검푸른 바다를 연상시킨다. 포르투갈의 민요 ‘파두’(Fado)의 연주 장면이다. 우리에게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배’ 정도로만 알려진 음악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것은 여러 드라마나 CF에서 파두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SBS 주말드라마 ‘파도’에 삽입한 ‘정원’이나 018 CF의 배경음악인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등은 누구나 한번 들으면 바로 기억할 수 있는 곡이다.

    축구(Futebol), 파티마(Fatima)와 함께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3F로 불리는 파두는 유럽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의 역사 자체다. 이베리아 반도 끄트머리에 있는 포르투갈은 말 그대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이다. 국토의 삼 면은 스페인에 둘러싸였으며 나머지 한 면은 대서양에 맞닿았다. 과거의 포르투갈인은 지리적 여건을 십분 활용해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고 희망봉에 최초로 발을 딛는 등 해양대국의 위용을 떨쳤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혼란의 와중에서 포르투갈은 많은 식민지를 모두 잃고 유럽의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라틴 음악’과 함께 이 여름을
    파두는 이러한 포르투갈의 애환과 잃어버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민중음악이다. 그래서 파두 가사는 주로 불행한 사랑이나 이별의 슬픔, 또는 거역할 수 없는 숙명 등을 노래한다. ‘파두’라는 이름부터가 라틴어 ‘파둠‘에서 나온 말로 ‘숙명’이라는 뜻이다. 최근 들어 기존의 어두운 분위기에 반발하는 밝은 파두도 등장하였지만 그래도 파두의 주된 기조는 슬픔과 향수다.

    파두는 가수와 하트 모양을 한 포르투갈 기타의 단촐한 형태로 연주한다. ‘파디스타’라고 하는 파두 가수는 남녀를 불문하고 검은 옷을 입은 채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른다. 그 모습이 마치 해변의 선술집, 또는 달빛이 어스름한 뒷골목을 연상할 만큼 처연하기 그지없다. 포르투갈인에게 파디스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1999년에 사망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파두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국가적 위인들의 무덤인 판테온에 묻혔다.

    같은 라틴음악이면서도 파두의 반대방향에 자리한 음악이 아르헨티나의 탱고다. 파두가 어둡고 슬픈 데 비해 춤곡인 탱고는 관능적이며 화려하다. 파두가 ‘숙명’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탱고는 ‘만지다’라는 뜻의 라틴어 ‘탄게레’에서 비롯했다. 이름에서부터 관능미가 물씬 풍기는 탱고는 유럽의 댄스 음악과 아르헨티나의 음악, 그리고 아프리카의 리듬이 혼합한 복합적인 음악이다.



    탱고 하면 담배연기 자욱한 살롱에서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신사가 춤추는 장면을 연상한다. 그러나 탱고의 발생지는 이러한 상류층이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의 지저분한 항구 보카였다. 하층민의 체념적인 인생관이 라틴 음악의 격정과 융화해 탱고라는 4분의 2박자의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라틴 음악’과 함께 이 여름을
    파두가 기타 반주를 동반한 목소리의 음악인 데 비해 탱고는 여러 가지 악기로 연주한다.

    반도네온(아코디언보다 약간 작은 악기)을 주축으로 한 소편성 악단이 연주하는 경우가 많지만 특별한 규칙은 없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첼로·플루트 등 어떠한 악기라도 탱고를 연주할 수 있다. 실제 탱고 열풍이 불어 닥친 90년대 이후로 첼리스트 요요 마,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등 쟁쟁한 클래식 연주자들이 탱고 음반을 내기도 했다.

    탱고를 전 세계에 전파한 매체는 영화였다. 등장인물이 멋지게 탱고를 추는 장면은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적잖은 사람은 영화 ‘여인의 향기’(1992년)에서 알 파치노가 카를로스 가르델의 ‘포르 우나 카베차’에 맞춰 젊은 여인과 함께 탱고를 추는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보는 이의 가슴마저 뜨겁게 만든 이 장면을 곧 ‘트루 라이즈’(1994년)에서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제이미 리 커티스가 재현한다. 두 영화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년) 전편에 흐르는 우울한 탱고 멜로디와 왕자웨이 감독의 ‘해피 투게더’(1997)에서 벌어지는 절망 속의 탱고 역시 인상적이다.

    파두와 탱고는 라틴 음악에 속한다는 점 외에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음악들이다. 그러나 두 음악은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파두가 그리워하는 바다와 탱고의 고향 항구, 그리고 그들이 노래하는 우수와 정열은 우리의 정서와 어떤 면에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절로 머리가 후끈거리는 올 여름, 굳이 북적대는 피서지를 찾아 나서기보다 탱고와 파두 음반을 플레이어에 올려놓고 눈을 감아보자. 뜨거운 머리 속은 절로 시원해지고 마음은 어느새 머나먼 이국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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