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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음악회’ 열릴 만큼 열렸나

고정 레퍼토리·뻔한 얼굴 식상… 제작진 ‘초심찾기’로 정체성 위기 극복 추진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열린음악회’ 열릴 만큼 열렸나

‘열린음악회’ 열릴 만큼 열렸나
”옛날이 좋았어.” 매주 일요일 방송되는 KBS ‘열린음악회’를 즐겨보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93년 5월에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벌써 8년째, 지난 22일에는 400회 기념 특집방송까지 떠들썩하게 내보낸 이 장수프로그램에 대해 사람이 느끼는 아쉬움은 어떤 걸까.

한 시청자는 “열린음악회가 이제 맛이 갔다”고 말한다. “고정적인 레퍼토리,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출연자들 보기가 식상해 예전과 같은 감동과 신선함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열린음악회’ 무대에 립싱크하는 댄스가수들의 출연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다. “라이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서조차 요란한 춤을 추며 입만 벙긋거리는 가수들을 봐야 하는가” “시청률과 대중성 확보라는 명목하에 ‘열린음악회’가 변질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무대에서 가요 팝송 클래식 국악이 어울리며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음악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열린음악회’는 방송 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음악의 크로스 오버를 시도해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이다. 대중음악과 고급음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대형 음악 프로그램의 새 장을 연 이 프로그램의 성과와 의의는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이 떨어지고 큰 변화 없이 고정된 형식과 레퍼토리가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 여기다 초창기와 달리 대중적 인기를 앞세운 트로트와 댄스 가수들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열린음악회’가 클래식이나 국악 등 문화적 거리가 있는 음악을 대중적 정서에 밀착시키는 작업보다 대중가수를 위한 고급스런 무대마련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작진의 고민도 날로 커지고 있다. 400회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앞으로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열린음악회’ 제작팀이 얻은 결론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 “성악가와 대중가수, 신세대 가수가 한무대에서 어울리고 가족 단위 청중이 함께 노래하는 건강한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과감하고 다양한 기획으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오세영 차장을 비롯한 PD, 작가 등 스태프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다.

‘열린음악회’ 열릴 만큼 열렸나
“이 프로그램의 변함 없는 중심은 ‘좋은 음악’이다. 그러나 8년 전과는 사회적 상황이나 음악적 흐름 등 모든 것이 변했다. 그러니 그저 옛날로 돌아갈 수만은 없다.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열린음악회’를 보는 시청자층 역시 변했다. 요즘엔 40, 50대 관객들도 댄스그룹의 노래를 좋아한다. 중년의 아저씨들도 S.E.S나 핑클의 노래를 듣고 싶어한다.”



방청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호응이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되다 보니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노래,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 위주의 편성을 한다. 라이브가 원칙이지만, 공연장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선 댄스가수도 필요하고 이들에겐 립싱크를 허용한다. 가요나 팝보다 정통 클래식이나 국악에 큰 비중을 두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주제에 따라 국악 위주로 편성해 보려고도 하는데, 대중화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민요도 자꾸 개발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출연진을 다양화할 필요도 많이 느끼지만 사실 이런 대형무대에서 라이브로 노래할 수 있는 가수가 별로 없어요.”

기본적인 가창력을 갖추고 자기 노래뿐 아니라, 관객이 원하는 노래를 척척 부를 수 있는 가수가 우리 가요계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제작진의 또 다른 고민이다. 더군다나 요즘은 컴퓨터 음악이 주를 이루다 보니 ‘열린음악회’ 무대의 성격과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력 있고 새로운 얼굴의 가수를 끊임없이 발굴해야 하는 것도 제작진이 안고 있는 숙제다.

요즘 ‘열린음악회’의 평균 시청률은 7∼8%. 그리 높지 않은 수치지만 제작진에 따르면 초창기에는 이보다 더 낮았다고. 시청률이 높아지기 시작한 건 야외 및 지방공연을 하면서부터였다. 스튜디오에서 청중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제작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팬들을 찾아가는 ‘열린음악회’의 적극적인 제작방식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청와대, 국정원, 민통선 안 땅굴 등 당시로서는 성역으로 분류된 곳들까지 무대공간으로 확장함으로써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열린’ 음악회가 되었다.

‘열린음악회’ 열릴 만큼 열렸나
“공간적·계층적 권위에 도전해 음악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열림의 주제를 실천하는 것이 ‘열린음악회’의 또 다른 존재 이유입니다.” 김승우 PD는 이 프로그램을 단순히 음악만 듣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회적 이슈를 함께 고민하고 화합하는 무대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출연자들을 기계적으로 나열해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감상하는 데 그치는 평면적 구성에서 벗어나 시각적으로도 즐길 수 있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치 있는 공공의 프로그램으로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고민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지만 여기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음악비평가그룹 ‘21세기 문화광장’을 이끄는 탁계석씨는 “열린음악회의 사회적 시효는 이미 끝났다. 똑같은 포맷으로 400회를 지속해 오면서 대중의 음악적 감수성과 취향은 오히려 닫히고 말았다”고 일갈한다. 그는 “열린음악회가 빠른 템포의 음악이나 클래식의 정형화한 레퍼토리를 유포함으로써 공연장에 온 사람조차 ‘축제의 노래’나 ‘오 솔레미오’ 같은 노래만 듣길 원하고 소규모의 순수 클래식 공연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 음악과 저 음악을 적당한 수준에서 버무리는 것이 진정한 크로스오버는 아니다. 대중성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적 감동이다. 이젠 ‘닫힌음악회’가 필요하다”는 것이 ‘열린음악회’를 반대하는 클래식 전문가들의 입장. ‘열린음악회’에 출연하는 한 성악가는 “지금도 일부 대학에서는 ‘열린음악회’ 출연 교수에게 경위서나 시말서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만남을 통해 장르간 벽을 허문다는 ‘열린음악회’ 애초의 취지가 결과적으로 예술의 하향 평준화와 공연장 문화의 위축을 낳았다는 일부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더라도, 이 프로그램의 존재가치를 전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다수 시청자의 생각이다. “열린음악회는 엄격한 의미에서 대중 프로그램이지 예술프로가 아니다. 나름의 오락적 기능도 필요하고 스타도 나와야 한다. 필요한 것은 다양한 레퍼토리와 건강한 기획으로 시청자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것이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는 대중 음악계와 클래식 음악계가 서로의 다름과 음악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때 진정한 ‘열림’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주간동아 2001.08.02 295호 (p70~71)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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