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5

2001.08.02

더 낳을까 말까… 헷갈리는 가족계획

‘저출산 위기’ ‘시기상조’ 치열한 공방 … ‘양보다 질’로 인구정책 논의할 시기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5-01-13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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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낳을까 말까… 헷갈리는 가족계획
    출산율 저하에도 불구하고 세계 인구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1999년 10월을 기해 전 세계 인구는 60억 명을 넘어섰고, 2050년께는 지금보다 50%가 늘어난 93억 명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 중 개발도상국 인구가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해 85억 명에 육박할 전망이다(2001년 유엔인구보고서).

    지난 7월9일 세계인구의 날을 이틀 앞두고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전 대한가족계획협회) 이시백 회장은 “인구밀도는 팔레스타인,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3위인 우리 나라가 벌써부터 저출산 문제를 걱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이틀 뒤 보건복지부는 “1970년 4.53명이던 출산율이 83년 2.1명(인구가 현 상태로 유지되는 출산율), 99년 1.42명으로 급격히 떨어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우리 나라의 출산율 감소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대로라면 2018년부터 총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므로 저출산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해묵은 ‘저출산’ 공방을 다시 점화한 것.

    사실 양측의 출산 공방은 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인구의 날에 즈음해 당시 서울대 보건대학원 이시백 교수는 ‘오늘날 저출산 시대의 인구정책 위기’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교수는 여기서 “80년대 중반 이후 출산력과 인구증가율 수준(1%)을 당초 목표 시점인 93년보다 8년 앞당겨 달성함으로써 정부는 더 이상 인구정책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 있으나, 늦둥이 현상 등이 만연해 출산력이 매우 불안한 상태다”면서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제1차 베이붐 세대가 제2의 베이비 붐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정부는 9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인구개발회의에서 정반대 상황을 보고했다. 30여 년 간 추진해 온 출산조절정책의 성공으로 인구증가율이 0.9%까지 낮아지는 등 인구증가 억제정책이 성공을 거뒀으나, 이 기조로 갈 경우 신규 노동력 부족과 노령인구 급증 등으로 부작용이 우려되어 산아제한 인구정책을 포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95년 보건복지부 산하에 인구정책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저출산 시대의 ‘신인구정책’ 마련에 들어갔다. 96년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저출산 시대의 인구정책 방향’도 2010년 무렵 15만 명 가량의 산업인력이 부족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정부 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런데도 이시백 교수를 중심으로 한 산아제한 지지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나라 인구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97년 보건복지부와 대한가족계획협회가 공동개최한 ‘가족보건사업평가 세미나’에서 이교수는 “2021년 이후 국내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정부의 장래인구 추계는 단순한 수학적 계산일 뿐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뿌리깊은 남아선호 사상, 30대 중반 이후의 늦둥이 출산 바람, 불임시술자 복원수술 증가, 높은 피임 실패율, 역이민, 사생아 출산 증가, 사망률 하락 등을 감안하면 2021년에도 인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더 낳을까 말까… 헷갈리는 가족계획
    이교수는 또 98년 5월 대한가족계획협회(이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로 바뀜) 신임회장이 된 부임사에서 “우리 나라도 기존의 양적인 생산인구 확보라는 산업사회 의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정보화시대가 진척할수록 가족계획은 더 필요하다. 실업 잠재력이 어느 나라보다 큰 우리 나라는 가족계획 사업에서도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것 같다”고 경고를 늦추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산아제한 시대인 지난 30여 년 간 정부와 한목소리를 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대가 바뀌면서 출산 문제에 관한 한 정부와 정반대 입장에서 공방을 벌이는 사이가 된 것.

    최근에는 출산장려냐 억제냐의 논쟁이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지난 7월17일 민주당 이미경 제3정조위원장은 “부부 한 쌍이 2명의 자녀를 낳는 것이 적정 수준이다”면서 “출산장려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반면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은 “기계적인 계산법에 의해 인구가 준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정책은 비과학적 발상이다”고 이에 반대하면서 “향후 산업구조개편, 남북관계, 노동시장 문제 등의 변수를 다각적으로 검토한 후 인구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 매스컴은 지난해부터 ‘출산 장려’ 쪽에 상당히 무게중심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일단 87년 90년 각각 1.6명으로 유지된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예상 자녀 수)이 93년 1.75명으로 늘었다가 96년 1.71명에서 99년 1.42명으로 급격히 하락하는 등 수치상의 근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3년마다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를 벌이는 보건사회연구원측은 99년 출산율이 1.42명으로 급감한 데 대해 IMF 경제위기로 인한 소득격감 및 구조조정에 의한 실업자 증가로 많은 사람이 결혼 및 출산을 연기한 데서 비롯한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한다.

    이 조사 책임자인 김승권 박사(인구가족정책팀장)는 “경기 회복과 함께 연기한 결혼 및 출산이 이루어져 2000년에는 다소의 출산율 상승이 기대되지만 한번 낮아진 출산율은 쉽사리 회복되지는 않는다”면서 “앞으로 출산율은 1.5~1.55명 수준에 머물 것이다”고 예측했다. 또한 출산율이 다소 회복된다 해도 96년 통계청이 발표한 출산율 1.8명을 기준으로 인구 증가가 정지하는 시점인 2028년이 훨씬 앞당겨져 2015~2018년께가 되면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본다.

    일부 매스컴은 벌써부터 ‘둘은 기본, 셋은 애국’ ‘세 자녀 낳아 문화시민’과 같은 출산장려 시대의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2015년 각료들이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다산장려금과 같은 새로운 인구증가 방안 마련에 부심한다는 가상 시나리오를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출산장려 쪽으로 돌아섰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저출산 시대의 인구정책’에 대한 연구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한 상태. 내년 2월 이 연구결과가 나오면 통계청이 올해 말 발표할 2000년 인구센서스 결과를 함께 검토해 새로운 인구정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처럼 더 낳도록 해야 한다, 계속 적게 낳아야 한다는 정책 공방이 치열한 가운데 정작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국민의 자녀관은 지난 10년 동안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2000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 후 ‘반드시 자녀를 가져야 한다’고 대답한 경우는 91년 90.3%에서 97년 73.7%, 2000년 58.1%로 급감했다. 반대로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는 의견은 97년 9.4%, 2000년 10%로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자녀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응답한 여성들은 ‘15~29’세의 젊은 연령층이 다수를 점하고 있어 가치관이 바뀌지 않는 한 출산장려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같은 조사에서 현재의 자녀 수에 관계 없이 몇 명의 자녀를 두면 이상적이라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평균 2.2명. 이것은 76년 2.8명, 85년 2.0명, 94년 2.2명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앞에서 제시했듯이 99년 출산력은 1.42명. 이상과 현실은 이처럼 크게 다르다.

    더 낳을까 말까… 헷갈리는 가족계획
    이런 결과를 토대로 김승권 박사는 아무리 출산장려 정책을 편다 해도 1.7명 수준까지 회복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출산장려 정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산아제한 정책을 펼 때는 적극적인 가족계획 사업과 동시에 자녀를 적게 낳는 게 좋다는 가치관의 변화가 가속도를 붙여주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자료를 보니 자녀 한 명을 키우는 데 매달 6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자녀가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면 방도 하나 더 있어야 하는데, 20평대 아파트에서 30평대 아파트로 옮기려면 서울에서는 1억 원 정도가 더 든다. 현실적으로 그런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하면서까지 출산을 장려할 여건이 되는가.”

    김승권 박사는 무엇보다 인위적인 출산장려 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를 여성의 높은 미혼율로 설명했다. “과거에는 기혼부인이 아이를 적게 낳는 게 출산율 저하의 주원인이었지만 최근에는 미혼 여성의 초혼 연령 상승이 출산율 저하에 더 기여하고 있다. 95년 인구 센서스를 보면 20~24세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년 전 43%에서 65%로 높아졌고, 미혼율도 16%에서 81%로 크게 높아졌다.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경제활동에 참가할수록 결혼을 늦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출산장려냐 억제냐를 놓고 벌이는 공방은 그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더욱이 현재로서는 우리 나라의 적정 인구 수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이에 대한 정확한 연구조차 없다. 즉 많다, 적다 하는 판단기준이 될 적정 인구 규모가 파악되지 않는 한 출산 공방은 정답 없는 입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올해 세계인구의 날을 맞아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1968년 폴 에어리히가의 저서 ‘인구폭탄’은 지금 당장 비상계획에 착수한다 해도 1970년대와 80년대에 수억 명의 사람이 굶어죽을 것이라 경고했지만 인구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고 비웃었다. 인구 폭탄의 뇌관을 제거한 것은 세계 인구증가율이 떨어진 것도 원인이지만 그동안 과학기술이 식량과 에너지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엔인구기금의 발표를 보면 그리 낙관적인 것도 아니다. 세계인구 증가율은 1960년대 초 약 2%로 최고조에 달한 이후 1.3%까지 낮아졌지만 그래도 해마다 7700만 명씩 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세계 인구의 구조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이다. 지난 50년 사이 사망률은 절반으로 떨어져 노령인구가 크게 늘어난 반면 소(少)자녀 가정이 증가하고 있어, 2050년에는 어린이(0~14세) 1명당 노인(65세 이상) 2명꼴이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는 2000년에 7%로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이 추세라면 2005년 8.7%, 2010년 9.9%, 2020년 13.2%로 계속 증가한다. 이제 인구정책에서 양이 아닌 질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대가 된 것.

    이시백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회장은 “우리는 자꾸 노동력을 머리 수로 계산하려 한다. 부족한 만큼 더 낳아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까지 경제활동인구에 편입하지 않은 여성인력을 활용하는 방안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다”고 말한다. 당장 필요한 정책은 아이를 더 많이 낳아 고령화를 대비하는 게 아니라, 여성들에게 안전한 가족계획방법과 성 및 생식보건 서비스를 제공해 그들이 자녀의 수와 터울을 책임성을 가지고 자유스럽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는 국제인구개발회의 행동계획 기본원칙에도 제시되어 있다).

    물론 세계 인구변화 추세보다 우리 나라는 지나치게 감소 속도가 빠른 것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감소 속도에 제동을 걸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최근 대두한 출산장려 정책은 최소한의 제동장치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계획을 곧 산아제한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단순한 출산장려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고령화를 “조용하게,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진행하지만 점차 속도가 붙어 향후 25년이 지나면서 그 윤곽이 분명해질 사회혁명이다”고 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혁명이 진행중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이렇다 할 해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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