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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과 테러’ … 살벌한 콜롬비아

지난해 2만5천 명 피살 ‘무법천지’ … “코파 아메리카 축구 때만이라도 시름 잊고파”

  •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내전과 테러’ … 살벌한 콜롬비아

37년 내전은 콜롬비아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몸값을 노린 납치범들이 극성을 부리고, 마약 밀거래가 판을 치는 곳이 콜롬비아다. 바로 그곳에서 7월12~30일에 코파 아메리카(남미 축구대회)가 열린다. 2년마다 남미 지역 축구왕국을 가리는 ‘남미의 월드컵대회’다. 그런데 대회 전부터 과연 콜롬비아에서 열릴 수 있겠느냐는 논란이 뜨거웠다. 개최지 변경 얘기도 나왔다. 올 들어 수도 보고타를 비롯해 대회가 열리는 주요 도시에서 폭탄차량들이 터져 12명이 죽었다. 콜롬비아축구협회 부회장이 좌익반군에게 납치되는 사건도 일어났다. 안전을 염려한 아르헨티나와 캐나다는 참가를 포기했다. 중무장한 2만 명의 병력이 경기장 주변과 선수 숙소들을 지키는 가운데 대회는 열렸다. 내전에 지칠 대로 지친 그곳 국민은 축구시합을 보는 동안만이라도 내전을 잊고 살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졌다.

오랜 내전을 거치며 콜롬비아는 공권력이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지난 한해 동안 2만5000명이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살되었다. 20분마다 사람이 살해당하는 곳이 콜롬비아다. 희생자 가운데 많은 숫자가 비전투원인 시민이다. 이들은 정부군, 우익 민병대, 그리고 좌익 반군들 틈바구니에서 ‘협력자’로 몰려 죽임을 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지 언론인들도 보도에 불만을 품은 쪽에서 보낸 킬러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지난해에 7명, 올해는 7월 중순 현재 6명의 기자들이 괴한의 총에 죽었다. 콜롬비아는 러시아, 알제리 다음으로 언론인들에겐 위험한 곳으로 악명 높다.

콜롬비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은 누구일까. 콜롬비아 국립여론조사센터가 지난해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가 좌익 반군 FARC의 지도자 마누엘 마룰란다를 꼽았다. 다음이 미국(31%)이고, 현 대통령 안드레스 파스트라나는 단지 10%에 머물렀다. 지난 97년 미 국방정보국(DIA)은 “콜롬비아 정부가 대중적 지지를 얻고 정부군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지 않는 한 반군들을 패퇴할 가능성은 없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보고서가 나온 지 4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거의 변함이 없다.

남한의 11배쯤 넓이에 인구 4000만인 콜롬비아는 메스티소 60%, 백인 20%, 물라토 14%, 흑인 4%로 부유층은 주로 백인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자료에 따르면, 5인 가족 기준 월소득 300달러가 못 되는 빈곤층이 전체의 5분의 1이나 되고 실업률도 20%에 이르러 남미가 다 그렇듯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다(1999년 기준 1인당 GDP 6200 달러). 콜롬비아 내전의 출발은 대토지 소유자들,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군부정권의 탄압에 대해 농민들이 반기를 든 데서 비롯한다. 1950년대부터 작은 자위단 규모로 싸워온 농민 무장집단들은 1966년 FARC를 형성해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벌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콜롬비아 남부와 동부지역의 상당부분을 지배하는 FARC가 전통적인 농민군 출신 지도자들로 구성되었다면, 또 다른 좌익 반군 ELN(국민해방군)은 쿠바혁명을 경험하고 돌아온 급진학생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1964년 결성되었다. 체 게바라의 농촌 게릴라 전술을 따르는 이들은 특히 콜롬비아 석유자원을 수탈해 가는 외국 석유회사들을 공격목표로 삼고 송유관 파괴와 기술자 납치에 주력해 왔다. 콜롬비아 반군의 규모는 1만5000∼2만 명 규모로 콜롬비아 국토의 40% 이상을 지배하고 있다.



보수파 정치인인 파스트라나 대통령은 반군과의 평화협상을 통한 내전종식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지난 98년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그는 지난 3년 가까이 반군들과 줄곧 대화를 가져왔다. 올 2월에는 FARC 반군 지도자 마룰란다를 밀림에서 만나는 등 상당한 진전을 보이기도 했다. 올 들어 FARC 쪽에서 포로로 잡은 정부군과 경찰들을 200∼300명씩 잇달아 석방한 것도 이런 노력의 열매다. 그러나 아직껏 평화협정으로까지 발전하진 못했다. 강경파 군부 지도자들은 파스트라나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우익 민병대 AUC(콜롬비아 연합자위군)도 파스트라나 대통령의 반군협상을 막아서고 있다.

카를로스 카스타노. ‘좌익 협력자’로 의심되는 시민을 쇠톱으로 죽이는 잔인함으로 악명 높은 우익 민병대 AUC의 지도자다. 8000명 병력을 지닌 AUC는 그동안 노조 지도자, 대학 교수나 언론인 등 지식인과 좌파 동조 혐의자들을 납치 암살해 왔다. 그런 카스타노가 지난 6월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AUC의 인권 유린에 대한 비판여론으로 콜롬비아 정부가 AUC에 대한 검속을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자 극우집단의 정치세력화를 꾀하겠다고 나섰다. 10년 전 겨우 몇백 명에서 출발한 AUC는 그동안 세력을 크게 넓혔다. 인권단체들은 AUC가 콜롬비아 군부와 경찰조직의 비호를 받아왔다고 지적한다. AUC의 자금줄은 대지주들과 마약조직에서 걷은 ‘세금’과 마약 밀거래다.

콜롬비아는 마약 밀매업자들의 근거지다. 미국에서 유통하는 코카인의 90%, 헤로인의 상당량이 콜롬비아에서 흘러 들어온다. 마약 밀매업자들은 좌익 반군 FARC와 ELN에게 보호비 명목의 세금을 바치며 콜롬비아 정부의 단속을 피해왔다. 미 마약당국은 해마다 5억∼6억 달러어치의 마약이 이 지역에서 거래된다고 추산한다.

콜롬비아 남부 아마존강 밀림지대는 일종의 ‘마약공화국’으로 치외법권지대를 이뤄왔다. 마약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인 미국으로선 콜롬비아가 골칫거리다.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콜롬비아계획’(Colombia Plan)이란 이름 아래 파스트라나 정권이 벌이는 캠페인을 재정적으로 도와왔다. 마약 밀매업자들을 소탕하기 위한 군사원조, 코카 재배밭 소각과 사회경제 발전 프로그램 등 콜롬비아계획의 규모는 75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은 이 플랜에 16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이미 3억 달러어치를 건넸다. 이 가운데 80%가 공격용 헬기 제공이다. 이같은 미국의 대(對) 콜롬비아 원조규모는 현재 이스라엘, 이집트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콜롬비아에 대한 미 군사원조는 80년대 엘살바도르 상황을 떠올린다. 미 의회는 미국이 60, 70년대의 베트남전을 비롯해 남의 나라 내전에 끌려 들어가 대리전 양상을 띠지나 않을까 경계하는 분위기다. 한편 페루나 베네수엘라, 브라질 같은 콜롬비아의 이웃나라들은 미국의 콜롬비아 개입으로 내전의 불똥이 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다. 정부군의 공세에 밀린 반군과 마약 밀매조직들이 국경을 넘어 활동 근거지를 옮길 가능성 때문이다.

올해 상영한 미국영화 ‘생존의 증거’의 무대가 콜롬비아다. 이미 콜롬비아는 세계 최대의 납치 범죄국이란 오명을 얻었다. 지난 한 해 동안 일어난 납치사건은 3706건. 하루 10명꼴로 납치한 셈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외부에 알려진 것들일 뿐이다. 많은 경우 피랍자의 회사나 가족이 은밀히 납치범과 협상해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K&R(kidnapping and ransom) 산업’으로 알려진 콜롬비아에서의 납치극은 해마다 수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주는 ‘성장산업’이다. 5년 전보다 300% 늘어났다. 99년 콜롬비아 군부가 발표한 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적어도 6억 달러를 인질범들에게 지불했다.

대부분의 납치사건은 이 지역 최대 마르크스주의 반군조직인 FARC가 한 것이다. 또 다른 좌파 반군조직인 ELN도 군자금과 대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납치를 주요 사업으로 삼아왔다. 외국인들, 특히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외국 기술자들이 인질산업의 희생자들이다. 반군들은 이들 기술자들이 콜롬비아의 지하자원을 약탈해 간다고 여긴다. 어떤 인질들은 몸값을 놓고 밀고당기는 협상과정이 길어져 2년이나 3년 동안 밀림에서 고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콜롬비아에선 경호산업이 호황을 누린다. 지난 6년 동안 경호전문 용역회사가 380개에서 600개로, 경호요원은 9만 명에서 14만 명으로 늘어났다. 덩달아 보험사를 비롯해 위기관리 회사들도 호황이다. 이들은 직접 인질범들과의 협상을 맡기도 한다.

인질범 납치에 대해 반군들은 “우리는 납치하지 않는다. 소집할 뿐이다”고 주장한다. 반군의 시각에서 ‘납치’란 콜롬비아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재산을 지닌 부자들을 ‘반군기지로 소집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흔히 말하는 ‘몸값’이란 부자들에게서 걷는 ‘평화를 위한 세금’(tax for peace)이다. 전에는 부자들이 납치의 공포에 시달렸으나, 지금은 평범한 시민도 지방 나들잇길에 납치될까 두려워하는 형편이다.

우익 민병대 AUC가 마구잡이로 시민을 죽이고, AUC와 이런저런 관련을 맺은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민주제도 정착을 꺼리고, 좌익 반군들이 끊임없이 시민을 납치해 ‘세금’을 걷고, 정치적 반대자들이 끊임없이 암살 당하고, 보복이 두려워 사법부가 제대로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가난한 농민이 코카인 재배말고는 달리 생존수단을 찾지 못하는 콜롬비아에 민주주의와 평화의 볕이 깃들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로 보인다. 콜롬비아 사람은 그래서 조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 살고 싶어한다.

지난 5년 동안 110만 명이 미국 등 외국으로 떠났다. 반군들과 평화협상에 노력을 기울인 파스트라나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13개월 남았다. 그는 차기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다음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유력 후보들은 좌익 반군들에 강경한 입장이다. 그럴 경우 콜롬비아 상황이 나아질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힘의 균형 때문이다. 누구도 상대를 이길 수 없는 전쟁이 콜롬비아 내전이다. 가난한 일반 국민의 고통이 덜어질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주간동아 2001.08.02 295호 (p52~54)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 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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