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5

2001.08.02

‘스포츠 토토’는 국립 도박판?

월드컵 재원 마련·스포츠 발전 등 본래 취지 퇴색 조짐 … ‘정부만 배불리기’ 우려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5-01-13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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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토토’는 국립 도박판?
    수십억의 체육복표 상금을 노린 도박단과 짜고 승부를 조작한 심판과 선수들이 검찰에 무더기로 구속….” “자신들이 베팅한 팀이 패하자 흥분한 관중이 운동장에 뛰어들어 해당 팀 선수들을 마구 때리고 소란을 피우다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올 9월 축구 체육복표 ‘스포츠 토토’의 정식 발행을 앞두고 복표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은 이런 상황이 가상의 일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월드컵 재원 마련과 스포츠 발전을 명목으로 발행하는 체육복표인 ‘스포츠 토토’가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사행성만 조장하고 정부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시민단체와 스포츠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다. 물론 문화관광부와 복표 수탁 운영업체인 한국타이거풀스측은 “스포츠 토토는 축구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상금을 타는 건전한 스포츠 게임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체육복표의 도박성과 사행성을 우려하는 이들은 “정선 카지노처럼 도박 중독자를 양산할 뿐이다”며 비판의 날을 세운다.

    스포츠 토토의 도박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당첨자가 없을 경우, 상금이 다음 차수로 계속 누적되기 때문에 상금 규모가 과열 양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고액 상금을 노린 승부 조작이나 관중 난동과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고, 축구 경기장은 투기장화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승부 조작과 관중의 난동은 체육복표를 파는 외국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스포츠 토토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발행하기 전부터 말이 많은 것일까. 스포츠 토토는 1000원짜리 복표를 사서 게임의 결과(승·패·무)를 알아맞힌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1회차에 한 사람당 10만 원까지 베팅이 가능하다. 일곱 경기의 전·후반 종료시 상황, 즉 14번의 승·패·무를 정확히 모두 맞히면 1등, 한 번만 틀리면 2등, 두 번 틀리면 3등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는다.



    문제는 상금이 복권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회차에 모인 모든 베팅액의 50% 중 1등이 40%, 2등이 30%, 3등이 30%를 가진다는 점이다. 베팅 액수가 적고, 당첨자가 많을 때 1등에 당첨한 사람은 수십만 원밖에 못 받을 수도 있지만 베팅한 사람이 많고 당첨자가 단 1명일 경우에는 수십억 원을 가져갈 수도 있다. 정선 카지노의 메가 잭팟 슬롯머신처럼 당첨자가 없으면 돈이 다음 차수로 계속 적립되어 당첨금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지난 3월 체육복표(축구) 사업을 시작한 일본의 경우 벌써 1억 엔(약 10억 원) 당첨자가 두 번씩이나 나온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문화관광부와 타이거풀스가 예상한 축구 체육복표의 매출 규모는 해마다 5000억 원대(연간 50회차). 이 중 50%가 상금으로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1회차에 100억 원의 복표가 팔려 나가 그 중 50억 원이 상금이 된다. 따라서 1등의 상금 총액은 50억 원의 40%인이 20억 원, 2등과 3등은 30%인 15억 원이 된다. 당첨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경우 50억 원이 다음 회차 50억 원과 합쳐져 1등은 40억 원, 2등과 3등은 각각 30억 원의 상금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스포츠 토토’는 국립 도박판?
    타이거풀스측이 말하는 1등 당첨률은 450만 분의 1. 만일 한 사람이 당첨되면 혼자 수십억 원을 가지게 된다.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상금이 걸린 만큼 승부 조작과 과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축구심판 노조 이재성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심판은 각종 공공보험도 안 되는 1년제 계약직이고, 초임이 11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다 보면 승부 조작 제의에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돈에 얽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할 때 우리 스포츠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위원장은 체육복표의 도박성은 차치하고, 스포츠계가 복표 사업을 할 정도로 제반 여건이 성숙했느냐는 점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체육복표 사업을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인정한 나라들에서 승부 조작과 훌리건 난동에 의한 피해는 심각한 실정이다. △91년 독일 분데스리가 뉘른베르크의 유고 출신 수비수 가사로가 2경기 자살골 기록 후 승부 조작 혐의로 체포됨 △94년 콜롬비아 대표팀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미국 월드컵 1차예선 미국전에서 자살골을 넣고 귀국한 후 도박단에 의해 살해당함 △95년 말레이시아 축구협회가 94년 8월 도박단과 미리 짜고 경기한 혐의를 받은 선수 80명을 자국 리그에서 추방함 △9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도박 조직과 연계한 주심이 경기 도중 선수 살해 등….

    일본의 경우는 지난 3월 복표 사업을 시작하기 전 경찰청이 일본 프로축구 선수 및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체육복표와 관련해 도박단의 조직적인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지침을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 경찰은 골 결정력이 있는 공격수들이 승부 조작의 주된 표적이 된다며, 후한 사례와 함께 사인을 요구하는 팬에게도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타이거풀스측은 승부 조작은 한국적 토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한다. “단위 경기가 아니라 일곱 게임에 대해 14번의 승부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승부 조작의 가능성은 전혀 없으며 훌리건의 난동 같은 것은 우리 나라에서 보고된 바가 없다. 시뮬레이션 결과와 산술적 계산상 당첨자 없이 5회 이상 상금이 누적되지 않는 것으로 나왔으므로 거액의 돈이 걸릴 위험도 없다”(타이거풀스 심영대 과장).

    또 타이거풀스측은 “복표 발매가 주민등록을 확인한 성인에 한해 10만 원까지로 제한하므로 과열 투기나 도박성은 전혀 없다. 스포츠 토토는 경기와 선수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한 사람이 상금을 얻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도박이 아니라 게임일 뿐이다”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축구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대규모 도박단이 형성될 경우 일곱 게임의 승부를 조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대한축구연맹 관계자). 전문가들은 승부 조작을 하지 않는 한 일반인이 승패를 알아맞힐 확률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국내 프로리그 10개 축구팀의 수준 차이가 확실히 드러나는 것도 아닌데다 승부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에서 14번의 경기 결과를 모두 맞히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축구복표는 건전한 오락게임이라기보다는 요행수만 바라는 도박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양세진 처장은 “돈을 주고 가족이나 친구·친지에게 사라고 했다가 당첨되거나 도박단이 조직되어 승부를 조작한다면 엄청난 후유증이 생길 것이다”고 복표의 도박성을 경계했다.

    스포츠 토토의 시행 명분은 월드컵 재원 마련과 스포츠 발전. 그러나 스포츠 토토가 그런 명분에 걸맞은 사업으로 발전할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에는 복표 발행액 중 상금(50%)을 제외한 나머지 50% 중 25%는 수탁사업자(한국타이거풀스)가, 10%는 월드컵 구장을 건립중인 지방자치단체, 2.5%는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가져가도록 규정하고 있다. 순수 체육발전에 쓰일 국민체육진흥기금과 경기종목단체(프로축구 연맹)에는 각각 7.5%와 2.5%만을 지원하는 데 그치며, 나머지 2.5%는 문화체육사업이라는 알쏭달쏭한 명목의 지원비로 쓰인다.

    국회 문광위 남경필 의원은 “정부가 카지노의 중독성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축구 복표를 통해 공인 도박시장을 넓히면서도 실리는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며 “축구 복표가 본래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 체육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수탁사업자의 초기 투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며 “월드컵이 끝나고 수탁 사업자와의 5년 계약이 끝나면 수익금의 많은 부분이 스포츠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고 해명했다.

    “폐광 살리자고 카지노 만들고, 월드컵 준비하다 돈 모자란다고 복표 팔고, 이러다 ‘도박공화국’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민단체의 이런 우려가 있는데도 정부는 축구에 이어 프로농구와 프로야구, 프로배구에까지 복표를 발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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