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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왕권 굳히기 신나는 행보

현대 사사 자료 인수 등 법통 계승 과시… 계열사 부진한 MH와 대조

  •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MK 왕권 굳히기 신나는 행보

MK 왕권 굳히기 신나는 행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MK)의 행보가 거침없다. 이제는 MK가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에게서 ‘공식’ 후계자로 인정 받은 동생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MH)을 제치고 실질적으로 현대그룹의 ‘법통’을 승계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 MK는 또한 내년 말 개최지가 결정되는 2010년 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을 맡아 세계를 돌며 유치 활동을 벌이는 등 대외 활동에도 열심이다. 반면 MH는 소그룹으로 전락한 현대그룹 총수로 위상이 격하해 대조를 보인다.

MK의 화려한 행보를 상징하는 사건은 지난 6월21일의 김대중 대통령 독대.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김대통령은 MK를 현대자동차 회장 자격이 아니라 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만났고, 실제 세계박람회 유치문제에 대해서만 논의했다”고 전했지만 재계는 시샘어린 눈길을 보냈다. 대기업 회장이 대통령을 독대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 김대통령이 올 들어 대기업 회장을 개별적으로 만난 것은 지난 5월12일 삼성전자의 중국 CDMA (코드분할다중접속) 이동전화 사업 진출을 축하하기 위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기태 삼성전자 사장을 청와대로 초청한 이후 처음이었다.

대통령과 독대… 재계 부러움 한몸에

MK는 김대통령 독대를 통해 상당한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 김대통령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지난해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생긴 부정적 이미지를 상당 부분 불식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현대그룹 대북사업 인수 권유를 거부한 MK가 이런 ‘보상’을 받은 것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기아차가 현 정부의 본거지인 광주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단 해태 타이거스를 인수했고, MK가 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으로서 적극적인 활동을 한 때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MK가 현대의 법통을 이었음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 타계 이후 현대건설 계동 사옥 15층에서 상징적으로 운영해 오다 6월28일 100일 탈상과 함께 해산한 ‘명예회장 비서실’ 직원 3명을 현대차에서 받아들인 조치며, 두 번째는 비슷한 시기에 해체된 그룹 PR본부가 보관해 온 현대그룹 사사 자료를 현대차그룹에서 인수한 일이다. 명예회장 비서실 직원들은 현재 본인들의 희망에 따라 현대차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MK 왕권 굳히기 신나는 행보
이 과정에서 관심을 끈 것은 지난해 형제간 경영권 분쟁 당시 MH측을 대변해 온 PR본부장 K모 상무의 거취. 예상을 깨고 K상무를 6월 말 현대차그룹 계열인 현대모비스 홍보실장 겸 현대모비스가 기아차에서 인수할 농구단 단장으로 내정했으나 끝내 그 자리에 취임하지는 못했다. 내정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된 직후 갑자기 취소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 현대그룹 관계자는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된 이후 MK의 일부 측근들이 K상무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는 바람에 K상무 영입을 추진한 현대모비스 박정인 사장도 어쩔 수 없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MK 측근들이 문제삼은 것은 언론이 K상무 영입을 두고 ‘MK의 MH 끌어안기’ ‘채권단의 출자 전환으로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의 모 기업 현대건설 인수 포석’ 등으로 해석한 대목. 현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MK는 MH를 자신에게 말도 제대로 걸지 못하는 까마득한 동생으로 여기는데, 이런 동생에게 화해 손짓 운운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을 것이고, 이를 잘 아는 측근들이 K상무를 영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한 것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언론의 ‘현대건설 인수 포석’이라는 해석 때문에 현대차가 받은 타격도 무시할 수 없었다.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현대차의 이익이 유출할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우려로 증시에서 현대차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이다. 다급해진 현대차측은 즉각 “현대건설 인수 계획이 전혀 없다”고 공시해야만 했다.

MH를 바라보는 MK의 눈길이 아직도 싸늘하다는 것은 현대차측의 한국로지텍㈜ 설립 등에서도 나타난다. 현대차측이 올 2월 초기 자본금 50억 원으로 설립한 종합 물류전문회사 한국로지텍㈜은 현대자동차 수출 물량 수송은 물론 현대하이스코의 철강 제품, 현대모비스의 자동차 부품 등 그룹 계열사와 협력업체, 관계사들의 모든 국내외 물류업무를 독점적으로 펼칠 계획. 재계에서는 MH계열 현대상선에 자동차 수출 물량 수송을 맡기지 않으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로지텍 설립 이후 MK와 MH 진영 사이에는 한때 긴장감도 감돌았으나 한국로지텍의 해운사업 포기로 현재는 진정된 상태다. 현대상선이라는 해운회사가 있는 마당에 친족 그룹에서 또다시 해운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은 중복투자라는 여론이 있는데다 내부적으로도 다른 자동차 회사 수송 물량을 확보하기 곤란하다는 점을 인식, 해운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이나 완성차 수출 물량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운회사를 설립할 수 있겠지만 당장 시작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MK 왕권 굳히기 신나는 행보
현대차가 광고대행사 진출을 검토한 것도 비슷한 차원이었다. 현대차는 SBS가 올 3월에 설립한 종합 광고대행사 ㈜SM애드에 지분 참여를 검토했으나 막판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SBS측은 당초 설립자본금 25억 원의 ㈜SM에 SBS와 SBS프로덕션이 각각 34%와 36%를 출자하고, 나머지 30%는 현대자동차에 출자를 요청했지만 현대차측의 고사로 무산되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SBS측의 요청에 따라 지분 참여를 검토했지만 특정 언론사가 대주주인 광고대행사에 출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광고업계에서는 SBS가 현대차측을 파트너로 끌어들이려 한 것은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SBS로서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 광고주를 주주로 영입해 광고대행사의 안정적인 영업 기반을 확보할 수 있고, MH 계열로 분류되는 금강기획에서 광고를 대행하는 현대차로서는 계열 광고대행사를 확보할 수 있어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것.

금강기획은 99년 12월 영국 CCG그룹의 지분 참여로 지난해 1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했지만 지분 20%는 여전히 MH 계열 현대상선이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측은 ㈜SM애드에 참여하지 않는 대신 금강기획으로 하여금 자동차사업부를 따로 만들도록 해 친MK 인사로 분류되는 C모씨를 담당 사장으로 앉혔다. 실질적으로 MH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현대차가 텔레비전·신문·잡지 광고 등에 집행하는 연간 국내 광고 물량은 1500억 원 정도에 달한다.

물론 MK가 MH를 도와주고 싶어도 과거처럼 무턱대고 지원할 수는 없다. 증시에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을 돕는다는 조짐만 보여도 주가가 악영향을 받는다. MK로서는 도와주지 않을 명분이 생긴 셈이다. 현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그렇다고는 해도 형제간 갈등을 증폭하는 측근 인사들이 문제다”고 지적했다.

MK와 MH간 운명을 이처럼 역전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이 MK와 MH의 그룹 계열사들 ‘성적’. 계열 분리 이후 재계 서열 5위권을 유지하는 MK 그룹은 자동차 부문의 호조로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리며 순항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내수와 수출에서 선전, 매출 18조2310억 원, 당기순익 6679억 원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올 들어서도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수출 증가로 1/4분기에 2759억 원의 당기순익을 올리는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현대차측은 올 순익을 1조 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반면 MH가 ‘선장’으로 있는 현대호(號)는 불안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MH 지배하의 현대그룹 계열사는 8개 상장사와 18개 비상장사 등 총 26개. 이 중 지난해 적자를 보지 않고 흑자를 낸 계열사는 상장사 중 현대엘리베이터, 비상장사 중 현대택배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그룹 내 핵심 사업인 대북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은 금강산사업 적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현대상선은 해운업체 특성상 높은 부채비율에 환차손 등으로 수백억 원대의 적자를 보았다. 현대하이닉스와 현대중공업이 각각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가는 올해 말쯤 현대그룹은 재계 순위 10위권에서도 크게 밀리는 중견 그룹 정도로 몰락할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1.08.02 295호 (p26~27)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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