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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차세대언론’ VJ가 뜬다

발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단식원 병원 노동현장 등 생생한 모습을 다큐로 … 진실 묻어난 화면에 시청자 시선 고정

  • < 김문영/ 자유기고가 > noname01@freechal.com

발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발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오만하게 서 있는 한 여성. 그녀의 아이디(ID)는 6mm, 곧 이어 디지털의 파급력에 경외감을 표하며 산산이 분열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디지털 전사’의 강렬한 이미지와 아날로그 영화계 거장의 무력한 퇴장이 묘한 대치를 이룬 인상적인 CF의 한 장면이다. 디지털의 위력은 ‘경제성’에서 비롯한다. 빠르고 편리하며 대량 복제를 가능케 하는 디지털 방식은 아날로그 시대에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처리한 일을 순식간에 해치워버린다. 테크놀로지가 몇몇 전문가에서 일반 대중에게로 넘어 온 이런 디지털 시대엔 아날로그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손쉽게 누구나 테크니션이 된다.

6mm 디지털 캠코더는 VJ라는 또 다른 ‘디지털 전사’들을 만들어 냈다. 정규 프로그램에서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된 효시는 Q채널의 ‘아시아 리포트’다. 이후 아리랑TV, K-TV, YTN 등 케이블 방송에 이어 iTV의 ‘리얼TV’ 시리즈, KBS의 ‘세계는 지금’ ‘영상기록 병원24시’ ‘VJ특공대’ ‘현장르포 제3지대’, MBC의 ‘PD수첩’ ‘현장 카메라르포’, SBS의 ‘출발! 모닝와이드’ ‘리얼 코리아’ 등 공중파방송 프로그램에서도 VJ시스템을 적극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Q채널 ‘아시아리포트’ 효시 … 지금은 방송사마다 제작

발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시청자들에게 VJ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 프로그램으로는 단연 KBS의 ‘VJ특공대’가 꼽힌다. 이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무겁고 따분한 것’이란 세간의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리며 다큐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다큐 프로그램으로선 드물게 편성 초기부터 1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아이템에 따라선 25%의 시청률을 웃도는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 중 지난해 6월 프로그램 편성 3주째에 방영한 ‘단식원 24시’는 ‘VJ특공대’란 프로그램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었음에도 17.7%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VJ특공대’ 외주제작업체인 허브넷의 VJ 서경선 PD가 15일간 직접 단식원에서 생활하며 촬영한 것.

서PD 역시 ‘단식원 24시’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다.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취재원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은 취재 아이템을 접할 때가 많은데, 단식원 촬영은 특히 사전 섭외가 무척 어려웠어요.”



어렵사리 단식원측의 촬영 허락을 받아냈지만, 이번엔 정작 얘기를 해줘야 할 원생들이 서PD를 외면했다. “원생들이 며칠씩 굶은 상태라 무척 예민해져 있었죠. 카메라만 들이대면 모두 피하기 바빴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절대 나오지 않으려 했으니까요.” 서PD는 당시 상황을 “암담했다”고 표현한다. 보다 못한 그는 결국 원생들과 생활을 같이했다. 함께 굶고 운동하는 동안 원생들은 서서히 서PD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기 시작했다. 취재원에 밀착할수록 화면은 더욱 생생해지고 메시지는 진솔해졌다. 덕분에 잠자리에 든 시간, 당시 한방을 쓴 15명의 원생들이 누운 채 단식원을 나와서 맨 처음 먹고 싶은 음식을 돌아가며 얘기하는 진풍경도 담아낼 수 있었다.

‘VJ특공대’는 이렇듯 시청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현장의 얘기를 빠른 화면으로 전개하며 보여준다. 깊은 성찰이나 의미 부여에 치중하기보다는 흥미로운 소재를 선택해 가볍고도 밀착된 접근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특공대’가 출동하지 못하는 성역이란 없다. 이들 VJ가 호기심 많은 시청자를 대신해 사회 곳곳을 캐고 다니는 것이 높은 시청률의 비결이다. 그러나 현역 VJ들 중엔 ‘VJ특공대’를 ‘소재주의의 전형’이라 비판하는 부류도 있다. 심지어 다큐멘터리의 진실과 감동은 사라진 채 충격적 영상들로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쇼크멘터리’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아시아 리포트’를 4년간 제작한 Q채널의 이창재 PD는 “VJ시스템이 유행처럼 전파된 데에는 저렴한 제작비, 흔들리는 영상, 파격적 소재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부가적 이익일 뿐 다큐멘터리의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VJ가 마치 스타처럼 떠오르면서 비디오 저널리즘이 상업성에 물들어 본연의 정신을 잃어간다는 VJ 내부의 자성인 셈이다.

이PD가 VJ시스템의 최대 매력으로 꼽는 건 ‘다큐를 자기 색깔로 만들 수 있다’는 점. 그런 의미에서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은 Q채널 프로그램인 ‘뷰파인더’ 중 한 편인 ‘그들의 선택-현장으로 간 대학생들’.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현장으로 간 대학생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위장취업 20년이 지난 오늘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은 왜 현장으로 가야만 했는지를 세밀히 그려낸 수작이다.

발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이 작품을 방영한 때는 지난 1월. 한 시간 남짓한 분량이지만 작품이 방영되기까지는 곡절도 많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기획도 촬영도 아니었다. 바로 회사와의 의견 충돌이었다. 노사 문제가 여전히 민감한 사안인 한국사회에서 노동운동가의 삶을 그린 다큐 방영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회사측의 반대는 예상보다 극렬했고, 이는 이PD에 대한 징계로까지 이어질 뻔했다. 결국 두 차례의 수정을 거쳐 작품은 방영되었다.

작품이 나간 후 취재원이던 철도노조원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들의 선택-현장으로 간 대학생들’을 녹화한 복사 테이프를 각 철도사업장마다 돌렸고 그 결과 철도노조의 민주성을 높일 수 있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일화는 다큐의 낮은 시청률에도 이PD가 VJ로서 보람을 느끼는 하나의 근거기도 하다.

사실 방송용 베타캠으로 제작한 기존의 다큐는 도구와 상황의 한계에 연출이 잦아 진실은커녕 사실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VJ들이 주목 받는 이유도 단순한 사실을 넘어 진실을 추구하는 다큐 정신을 구현할 수 있는 적임자란 인식이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VJ 작품인 ‘상계동 올림픽’은 비디오 저널리즘의 전설로 회자된다. 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붕 떠 있던 1988년, 기쁨과 흥분의 이면엔 축제에서 소외된 자의 아픔이 있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서울의 가난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이유로 대대적으로 추진된 도시재개발사업. 상계동을 비롯한 서울 곳곳의 달동네 거주자들은 갈 곳 없이 쫓겨나야 했다.

김동원 감독(푸른영상 대표)은 3년 동안 철거민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애환과 투쟁과 희망을 이 작품에서 생생하게 펼쳐보였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소외된 이웃을 향한 따뜻한 관심이 묻어난 ‘상계동 올림픽’은 다큐멘터리의 진실과 감동을 유감없이 구현해 일본의 권위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야마가타 영화제에 공식 초청될 정도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Q채널의 이은희 차장은 ‘상계동 올림픽’에 대해 “촬영이나 편집은 굉장히 거칠지만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힘이 느껴진다. 다큐멘터리의 기본 정신에 충실하다”고 평가한다. 그는 또 “최근 비디오 저널리즘이 재미나 특이한 편집, 영상미를 강조하고 제작자들이 VJ들에게 단시간 내 많은 작품을 찍을 것을 요구하면서 작품의 깊이가 점점 얕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누구나 테크니션이 될 수 있는 디지털 시대라 해서 모든 테크니션을 선뜻 전문가라고 칭할 수 있을까. 비디오 저널리즘의 주역 VJ들은 이제 비디오냐 저널리즘이냐의 기로에 선 듯하다.



주간동아 2001.06.28 290호 (p68~69)

< 김문영/ 자유기고가 > noname01@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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