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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식의 아프리카 문화기행 | 코트디부아르 ② 희생제

의외로 역사깊은 이슬람 문화

  • <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magenta@kornet.net >

의외로 역사깊은 이슬람 문화

의외로 역사깊은 이슬람 문화
탱골란 마을을 찾은 데에는 코미안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들인 그들에게 가장 큰 종교축제라 할 수 있는 ‘희생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특별히 탱골란을 고집한 이유는 도시화하지 않은 희생제와 더불어 서아프리카인들의 소박한 삶과 정취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희생제를 보기 위해 찾았던 탱골란에는 뜻밖에도 5일장이 열리고 있었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장이 서면 가장 마음이 들뜨는 사람은 아이들인가 보다. 이곳 어린이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노동에 익숙하다. 9세가 넘으면 부모 대신 집안 살림을 맡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라고 스스로 크는 이 아이들에게 시장은 가장 큰 놀이터 같은 것이다.

어린 동생을 들쳐 엎고 잠시나마 장 구경을 나온 아이들과 몇 푼 안 되는 동전을 땀이 차게 손에 꼭 쥐고 무엇을 살까 고민하는 아이, 이곳저곳 몰려다니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들의 모습은 정겹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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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장으로 가는 사람, 며칠씩 모아온 듯한 달걀 한 판을 들고 찾아오는 아낙네들, 머리에 재봉틀을 이고 와 옷을 수선해 주는 사람, 마치 시장이 축제처럼 들뜨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울긋불긋한 열대의 과일들,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의 옷들, 신기하게 생긴 목걸이와 팔찌, 점토로 만든 그릇들, 어떤 사내는 그 자리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옷 한 벌을 만들어 내고, 여자들은 곡식을 이고 와 저잣거리를 채우며, 현란한 나들이옷을 입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워 좋은 눈요깃감이 되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족사회의 영향으로 아직도 마을의 추장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몹시 따랐던 꼬마 올가는 이런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고, 나는 담배 선물을 준비하여 추장을 만나보았다. 차 대접까지 받으며 그는 한 마을 지도자답게 한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좋은 사진을 많이 찍어 그것을 본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방문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마을에 머무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락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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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장의 절대권력에 관한 사실은 마을 한켠에 마련되어 있는 박물관 같은 건물에서 더욱 알 수 있었다. 시녀와 함께 촌장이 앉아 있고 살인한 자의 목을 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었다. 현대화하고 성문법의 발전으로 촌장의 힘은 비록 약화하였지만, 서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추장은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희생제가 열리는 날은 아침부터 온 마을이 부산했다. 우리의 추석과 설 명절처럼 이들에게 희생제는 큰 축제였다. 여인네들은 익숙한 솜씨로 며칠 전부터 ‘그렌’이라는 노란색 열매와 ‘얌’이라는 나무뿌리로 음식을 준비하고, 집집마다 희생제에 쓸 염소를 손보기에 여념이 없던 터라 그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마을 사람들은 색동옷처럼 빛깔이 현란한 전통의상과 무슬림 복장으로 말쑥하게 차려 입고 여자들은 머리와 온몸을 가리는 각양각색의 차도르를 두르고 희생제가 열리는 마을 공터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중동의 무슬림들과 다르게 그들의 복장은 아프리카를 닮은 자연의 색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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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이슬람의 역사는 의외로 깊다. 이미 이슬람은 8세기 초 북아프리카를 정복했다. 정복지 주민의 이슬람교 개종은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이슬람 제국이 분열한 후에도 이슬람 세계는 넓어져 갔다. 이슬람 세계를 넓힌 것은 단순히 정복만이 아니라 상인들과 신비주의 교단들의 힘이 컸다고 한다. 그들은 순교할 것을 겁내지 않고 아프리카에 이슬람을 전도하였던 것이다. 덕분에 내륙 지방의 아프리카에서도 이슬람을 전파하였다.

희생제를 취재하러 온 나는 처음부터 그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는데, 그중 자신을 야울루라고 소개한 청년은 희생제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희생제에 대하여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예배를 올리기 전에 수도꼭지를 붙잡고 열심히 씻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나는 물었다.

“저것은 뭡니까?”

“우두예요.”

예배를 알리는 음악이 마을에 울리고 “알라는 위대하시다, 알라에게 복종하라, 마호메트는 하느님의 사도이시다”라는 경배의 말과 함께 고통스러운 삶을 알라에게 기대려는 마을 사람들의 예배가 시작되었다.

두 손을 내려 배꼽 바로 아래에서 오른손을 왼손 위에 포개는 동작, 두 발을 조금 벌리고 서서 두 손을 양쪽 귀로 모으고 올리는 동작, 이마를 바닥에 닿게 하는 동작, 손바닥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직각으로 구부리는 동작, 그리고 쉬는 동작처럼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가 예배의 기본 동작이다. 그리고 동작이 바뀔 때마다 알라는 위대하시다는 말을 함께 하였다.

염소 잡는 행사는 예배가 끝난 뒤에 이루어졌다. 준비한 염소는 몇 초 후면 자신이 이슬람 교도들의 죄를 씻는 희생양이 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안에 떠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얌전하게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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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주관하는 제례장이 날카로운 칼로 능숙하게 염소의 목을 낚아채고 단번에 비명소리조차 날 틈도 없이 찔렀다. 염소는 마치 모든 인간의 죄 갚음을 대신하듯 많은 양의 피를 흘리면서 죽어갔다.

원래 이슬람 교도들은 ‘피는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에 염소의 피가 다 빠져나올 때까지 그대로 내버려둔다. 염소의 붉은 피는 탱골란의 붉은 흙 사이로 스며들고 마침내 염소는 껍질이 벗겨지고 작은 토막으로 잘렸다. 그리고 우산을 쓴 채 다시 한번 코란을 읽은 후 이 행사는 끝을 맺었다.

희생제가 끝나자 의식은 축제의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들뜬 마음에 야울루에게 “당신도 자신의 죄를 씻어 달라고 기도 드렸나요”하자 야울루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우리 모두의 죄를, 그리고 당신과 나의 죄를 모두 기도했지요…”

탱골란에서 보낸 시간은, 소박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서아프리카인들의 정서와 생활방식을 대할 수 있는 귀중한 나날이었다. 돌아오는 지프 안에서 야울루의 말이 화두처럼 내 귓가를 맴돌았다. 나 자신의 존재도 잊고 사는 바쁜 세상살이에 너와 함께하는 세상, 그래서 우리가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함을 희생제는 일깨워 주었다.



주간동아 2001.04.26 281호 (p92~93)

< 글·사진/ 전화식(Magenta International Press)magenta@kornet.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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