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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에 진짜 배우 됐다”

장동건, 데뷔 8년 만에 대박 … “연기에 책임 느껴”

“나이 서른에 진짜 배우 됐다”

“나이 서른에 진짜 배우 됐다”
“그사람 장동건처럼 생겼어?” 흔히 잘생긴 남자를 말할 때 여자들이 기준으로 삼는 이가 바로 장동건이다. 컴퓨터 채팅을 하는 상대가 ‘잘생겼다’고 하면 대뜸 ‘장동건 닮았어요?’라고 묻고 학교나 회사에서 가장 미남이라는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장동건’이라는 별명이 붙여진다.

데뷔한 지 10년이 가까워오지만, 그는 여전히 완벽한 미남의 표상이고 뭇 여성들에게는 ‘이브의 모든 것’(장동건이 출연한 드라마)이다. 연기가 좀 밋밋하고 어색해도, 그의 멋진 얼굴 외에는 도무지 볼 것이 없는 작품이어도, 그런 것쯤은 쉽게 용서가 된다는 여성들이 많은 듯하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장동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한 경험이 될 테니까.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인기 절정의 순간에 모든 활동을 접고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에 들어간 것이나, 데뷔 이후 줄곧 ‘폼나는’ 주인공이었던 그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조연으로 출연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이 아닌 ‘조연상’을 수상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축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진심으로 “기쁘다”고 했고 “이제야 진짜 배우가 된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했다.

오늘(4월7일) 또 한번 그의 감격에 겨운 얼굴을 봤다. ‘친구’ 개봉 1주일째, 아침 첫 상영시간에 맞춰 종로의 한 극장을 찾은 장동건은 감독, 동료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객석에서는 안타까운 탄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지만 그의 태도에서는 거들먹거림이나 왕자병 증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가 여러분 덕분”이라고 말하는 공손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가 잘생겼을 뿐 아니라 실제로 어질고 착한 사람일 거라는 대책 없는(?) 믿음마저 생겨난다.

전날까지 전국적으로 143만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는 영화사 관계자의 말을 전해들은 감독과 배우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여섯 번째 영화에서야 비로소 홈런을 친 장동건. 그는 이런 숫자가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전 그냥 이 정도면 됐다 싶어요. 기록보다도 ‘좋은 영화’라는 칭찬을 듣는 게 정말 기분 좋아요. ‘정직한 비평가에게 칭찬 받으면 성공한 사람’이라는 글을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칭찬에 인색한 분들에게 인정 받은 것이 무엇보다 기쁩니다.”



영화와 함께 장동건의 연기에 대해서도 예전에 없던 찬사가 쏟아지고 있으니 그로서는 이보다 더 기쁠 순 없을 듯. “이제 나도 성공을 시작한 건가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쑥스러운 듯 웃는 그의 모습에서 남몰래 보냈을 좌절과 고통의 시간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매스컴에 등장하자마자 스타가 되어 줄곧 인기 정상에 서 있었지만, 데뷔 이후 청춘드라마와 감각적인 트렌디 드라마의 주연을 도맡아오면서 내면에 숨은 야성적 기질과 연기에 대한 폭발할 듯한 열정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장동건은 스크린으로 건너와 주연을 맡은 영화가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동안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

대머리에 가까운 브루스 윌리스, 수박머리 톰 행크스가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이듯, 한석규 박중훈 송강호 설경구 등 ‘비미남형’ 연기파 배우들이 인기를 얻고, 조금 덜 생겨도 개성이 연기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90년대 이후의 연예계에서 장동건은 너무 잘생긴 것이 콤플렉스가 되었다. 그는 ‘미남’이라는 소리가 제일 싫었고, 맘먹은 대로 연기가 되지 않아 힘든 때도 많았다고 고백한다.

“내가 하는 연기가 식상하게 느껴져 과연 연기를 계속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는 장동건은 “이제야 연기가 재미 있고 배우로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대선배인 안성기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영화 ‘인정사정…’은 그의 연기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이 영화를 통해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한뼘쯤 넓어진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장동건은 이때부터 비록 한 신이 나오더라도 좋은 작품이라면 언제라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후 ‘아나키스트’를 거쳐 ‘친구’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에만 매달렸고, 처음 영화를 찍는 배우의 심정으로 ‘동수’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그의 나이 스물 아홉에 시작해 서른에 완성한 이 영화는 어쩌면 그의 생애 첫 영화이자,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지 모른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부터 독자가 소설을 읽듯이 빠져 들어갔어요. 준석이라는 캐릭터도 매력적이었지만, 제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동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안성맞춤인 외모와 스타일을 타고났지만, 장동건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에서 쉽사리 발견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고 말한다.

이미 ‘의가형제’ 같은 드라마를 통해 선보인 그의 악역 이미지는 ‘친구’의 ‘동수’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비열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인물. 학창시절 누구나 그 곁을 슬슬 피해갔을 ‘겁 없는 아이’에서 거친 남자로 성장한 동수의 야성적이고 강렬한 매력은 장동건의 조각 같은 외모에 감탄할 틈을 주지 않는다.

삐딱한 표정으로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며 툭 내뱉고, 하와이로 가라는 준석의 말에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며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일갈하는 그의 연기는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만큼이나 짜릿하게 관객의 가슴에 와 꽂힌다. 그의 말쑥한 얼굴 어디에 이런 거친 캐릭터가 숨어 있었던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살의가 이글거리는 그의 눈동자를 쉽게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고, 동수 역시 실존했던 인물. 동수를 ‘독종 근성에 2인자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로 설정한 장동건은 사나이의 거친 삶 속에서 젊은 날의 순수와 우정, 삶의 슬픔과 굴곡을 연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담배 두 갑을 연달아 피우고 난 후 카메라 앞에 섰다는 이야기는 그가 이 영화에 가졌던 애정의 깊이를 실감하게 한다.

“전 아직 완성된 배우가 아니에요. 지금 너무 기쁘지만 사실 앞으로 더 걱정입니다. 갈수록 연기에 대한 부담감과 책임감이 커지는 걸 느껴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자주 ‘책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서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내가 서른이 됐다는 생각을 하면 괜히 가슴이 설렌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 자신의 모습과 일에 대해 책임질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멜로를 좋아한다지만, 그의 차기작은 SF 대작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다. “예전엔 멋모르고 쉽게 했지만, 멜로야말로 배우의 연륜과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할 수 있는 장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실한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려면 경험도 필요하겠죠?”

외로움을 느낄 여유도 없이 바쁜 그에게 요즘 들어서는 부모님도 “너도 슬슬 결혼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니?”라며 넌지시 물어온단다. 연애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강조하는 장동건은 “가끔은 곁에 누가 있었으면 해요”라는 말로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내비친다.

“제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성격도 아니고 사람들과 있을 때도 주로 얘기를 듣는 편이라 명랑하고 밝은 성격의 여자가 좋아요. 여자 앞에서 재미있는 얘기도 할 줄 모르니 조용한 사람보다는 다소 수다스러운 사람이 잘 맞을 것 같아요. 제 스타일상 여자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관계의 진전이 없을 거예요”(웃음).

명실공히 ‘범아시아적 스타’가 된 그이지만, 성실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그가 자랑스럽다.



주간동아 2001.04.17 280호 (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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