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0

2001.04.17

교육열 못 잡으면 개혁 물거품

뿌리깊은 경쟁의식에 사교육비 폭증 … 교육수준 높아져도 高실업 ‘기형적 사회구조’ 이어질 판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입력2005-02-28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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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열 못 잡으면 개혁 물거품
    문민정부시절부터 진행되어 온 일련의 교육개혁은 사교육비라는 이름의 과외 없애기를 최우선과제로 삼아왔다. ‘학력고사’를 ‘수학능력시험’으로 바꾼 것이나 수능 난이도를 낮추는 문제, 생활기록부와 논술-면접의 강화,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고액과외 집중단속까지 알고 보면 사교육비 줄이기 총력전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갖가지 묘책을 마련하여도 과외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한국사회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오욱환 교수(교육학)는 “이런 대책들은 사교육비가 근본적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제쳐버리기 위해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경시하고 있다. 상대적 우위를 점유하고자 하는 부모들과 자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제어할 수 없다면, 어떠한 형태의 대책도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오교수는 저서 ‘한국사회의 교육열, 기원과 심화’(교육과학사 펴냄)에서 한국사회의 교육열은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하는 경쟁 △내적 발전은 무시되고 외적 비교에만 치중한 경쟁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경쟁 △개인전과 집단전 혼합한 경쟁 △범위도, 한계도 없는 경쟁 △세대를 이어가며 벌어지는 경쟁 등 지극히 부정적인 성격을 띠고 심화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교육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양반임을 증명하던 조선시대부터 이미 교육열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후 일제시대와 미군 점령기, 대한민국 정부수립 등 사회구조의 전면적 붕괴를 경험하면서 한국인들은 강한 평등의식을 갖게 되었고, 출세를 성공으로 평가하는 생활유형이 자리잡는다. 이런 배경에서 오교수는 한국사회 특유의 교육열을 네 가지 개념으로 분석했다.

    먼저 ‘교육출세론’.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의 마음 속에 굳건히 자리잡은 신념이며 실제로 우리 사회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증명해 왔다. ‘집단경쟁체제론’과 ‘경험확대공유론’은 한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집단은 사회경쟁의 단위로서 개인 못지 않게 영향력을 가졌다. 한 가문에 ‘똑똑한 아이’가 있으면 집안이 나서서 지원하거나, 한 가정 내에서도 형제 자매의 희생으로 똑똑한 자식이 교육 받는 것을 당연시했다. 일단 한 사람이 출세하면 그의 가족과 친인척, 심지어 지역사회 인사들까지 자신들의 출세인 양 인식할 뿐 아니라 그 성공담이 하나의 표준이 되어 다음 세대로 확대 전수되는 독특한 현상을 나타낸다.

    ‘과잉 교육열’ 해법 없지만 낙관은 금물



    ‘외국어 자본론’은 조선시대, 일제시대, 미군 점령시대, 신생독립국가시대 그리고 그후 지금까지 외국어가 한문, 일본어, 영어로 언어의 종류만 달라졌을 뿐 한국사회에서의 출세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외국어자본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나 앞으로는 더 의미 있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외국어 습득에 투입되는 시간과 돈은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든 현재의 과열된 교육열은 다분히 소모적인 속성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처음 계획한 학력을 가지고 기대했던 사회경제적 자리를 차지할 수 없으므로 일자리에 관계없이 학력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는 과잉교육 상태가 된다. 이처럼 ‘교육 받은 실업자’가 늘어나면 교육열이 식어야 마땅할 텐데 한국사회는 이런 합리적 판단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지 않으면 완전히 낙오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때문에 더욱 교육에 집착한다.

    오교수는 이 책의 결론에서 “교육열로 인해 벌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화끈한’ 방법은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과열된 교육열과 그에 따른 치열한 교육경쟁을 문제로 인식하기는커녕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보는 그릇된 낙관주의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록 효과가 더디게 나타나더라도 교육이 출세의 도구가 아니라 즐거움이 되는 인본주의 사회의 실현을 장기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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