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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빈부격차 키우는 교육개혁

돈 놓고 성적 쌓기… 득세하는 ‘교육귀족’

月 70만원짜리 영어유치원·초등생 어학연수 … 출발선부터 큰 격차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돈 놓고 성적 쌓기… 득세하는 ‘교육귀족’

돈 놓고 성적 쌓기… 득세하는 ‘교육귀족’
평생을 강북에 살다 내년 딸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강남행을 결정한 주부 김모씨(39). 최근 강남학군(강남구-서초구)의 서울대 진학률이 강북의 자치구와 최대 10배, 연세대-고려대 진학률은 5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발표에 접하고, 역시 이사하기로 한 결정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씨가 이사하려는 곳은 강남구에서도 ‘과외특별학군’으로 알려진 대치동. “그동안 영어 외에 아이가 벅차하는 수학만 과외지도를 받도록 했는데, 앞으로는 전 과목 과외라도 해야 할 판”이라며 벌써부터 한숨을 내쉰다.

각급 학교의 신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을 새도 없이 수능 난이도 파동에 이어 한국교육개발원(KDI)과 교육인적자원부가 잇따라 과외실태 결과를 발표하자 학부모들은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KDI 국제대학원 이주호 교수팀의 ‘교육의 형평성과 과외에 관한 실증분석’ 결과는 단적으로 명문대 진학률이 과외비 지출 정도에 비례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진학률이 가장 높은 강남-서초구와 가장 낮은 강북 어느 구의 차이는 자녀 1인당 과외비 42만원(강남), 38만원(서초)과 15만원이라는 수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교육인적자원부의 발표 또한 우울하기 짝이 없다. 1999년과 2000년을 비교하면 과외 경험비율은 4.1% 감소했지만, 과외비는 5.2% 증가해 처음으로 7조원대를 넘어섰다. 또 연간 30만원 이하의 낮은 금액 과외는 오히려 10.7% 감소하고, 151만원 이상의 과외는 4.4% 증가해 소득의 양극화 현상도 두드러졌다. 특히 특기-적성 교육에 치중하는 초등학생들이 과외비 증가에 일조한 것으로 나타나 이미 입시경쟁은 초등학교 단계로 내려온 상태.

이번 발표를 듣고 “학교에서 보충수업도 시키지 말라고 하더니 결국 고액과외를 해야 대학 간다는 말이냐”며 못내 불만스러워하는 강북지역 학부모에 비해, 강남쪽 분위기는 느긋하다.

“수능이 쉬우면 쉬운 대로 만점을 위해 과외를 해야 하고, 수능이 어려우면 점수를 더 잘 받기 위해 과외가 필요하죠. 과외는 없어질 수 없어요.” 올해 수험생 아들을 둔 정모씨는, 그러나 발표내용대로 명문대 진학 여부가 단순히 과외비 지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요즘 강남 엄마들은 공공연하게 부모의 인문학적 소양이 서울대 입시를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심층면접을 하면 가정환경에 따라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부터 차이가 날 테니까요.”



서울대에 진학하려면 본인 실력은 물론이고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학력도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서울대 학생생활연구소가 펴낸 ‘2000학년도 신입생특성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아버지의 직업과 서울대 진학이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즉 서울대 신입생들의 아버지 직업 중 관리직이 26.6%(전국비율 14.8%)에 이르렀던 것. 고급관리직 종사자 자녀가 서울대에 진학할 가능성은 생산직 노동자 자녀보다 30배나 높다는 내용이었다. “부모가 대학생 자녀를 둘 연령이 되면 자연히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는 것 아닌가. 단순히 서울대 학부모의 직업과 전국 직업분포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서울대측의 해명이 있음에도 이 보고서는 교육불평등에 대한 불안을 확산시켰다.

서울대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표된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는 그간 우려했던 ‘학력과 신분의 대물림’의 실체를 수치로 입증했다. 전국 5000가구를 대상으로 89년과 99년 두 차례에 걸쳐 부모와 자녀세대 간의 학력 및 직업적 신분의 세습과정을 분석한 결과, 부모의 학력 및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자녀의 교육정도 및 직업적 지위 또한 높을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사회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력은 40% 이상이라는 것. 그중에서도 아버지의 직업보다 학력이 세대간 세습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컸다.

이 조사를 진행한 한국노동연구원의 방하남 연구조정실장은 “산업화와 경제개발 40년의 사회적 변동기를 거치면서 부모-자녀 세대간 교육적-직업적 지위세습 정도가 점점 약해졌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오히려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학력과 학벌에 따라 삶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한 부모세대가 경쟁적으로 자녀세대에 더 많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이미 높은 학력 수준을 가진 부모가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자녀에게 지위를 세습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돈 놓고 성적 쌓기… 득세하는 ‘교육귀족’
역시 한국노동연구원 황덕순 연구원이 진행한 ‘도시취업자의 세대간 계층이동과 세대 내 유동성’ 연구도 부모세대의 직업 및 계층을 자녀에게 대물림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즉 부모가 생산직일 경우 자녀의 최초 직업이 생산직일 가능성이 높고, 사무직이면 아들은 사무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높다. 딸은 예외적으로 부모가 생산직이거나 농업종사자일 경우 사무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높다.

황연구원은 결론에서 “세대간 계층이동에 교육이 중요한 매개변수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계층간 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교육기회가 계층간에 공평하게 주어지도록 하는 정책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다양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각종 교육정책들이 오히려 교육의 불평등을 심화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실시했더니 강남-서초-분당의 소위 있는 집 동네에서는 월 70여만원짜리 영어유치원이 성행하고, 초등학생들이 여름방학에 미국-캐나다로 어학연수 가는 게 유행이다. 영재학교가 생긴다니까 벌써부터 영재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영재과외가 인기다. ‘선견지명 있는’ 부모들은 영재학교 입학준비로 분주하지만, 먹고 살기 바쁜 부모들은 영재교육진흥법이 통과되었는지, 시행령이 뭔지 알 턱이 없다. 수행평가는 컬러프린터 없는 집 아이들을 울렸고, 한 가지씩 특기가 있어야 한다고 하니 수영에 스케이트 과외까지 하고 있다. 내 자식 기 죽여선 안 되고 남들과 똑같이 시작하면 뒤처질까 겁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꾸 격차가 벌어지니 수준 차가 심해 함께 공부할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올 법도 하다.

‘교육의 형평성과 과외에 관한 실증분석’을 한 이주호 교수는 “비평준화 지역의 평균 과외비가 평준화 지역에 비해 가구당 최고 3만5000원 정도 적었다”는 사실을 들어 평준화정책이 실패였다고 결론지었다. 또 “평준화 정책이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기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과외의존도를 높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 KDI측은 교육재정 투자 확대와 함께 자립형 사립고 도입, 선발자율화, 수월성-다양성 교육의 실시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자립형 사립고 도입이나 선발자율화가 과연 과외비를 줄이고, 학교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새로운 입시명문, 귀족학교의 탄생으로 입시경쟁만 과열시킨다는 교육시민단체의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다. 서울 서초-강남 교육시민모임을 이끌고 있는 김정명신씨(공동회장)는 “지난달 치른 서울시교육청 학력평가에서도 지역차가 크게 벌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내신성적 등에서 불리한 강남지역 일부 학부모 입장에서 자립형 사립고나 고교등급제에 마음이 갈 수 있겠지만, 섣부른 자율화와 다양화가 계층화-계급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과외금지 위헌 결정(지난해 4월27일)이 난 지 꼭 1년. 어느새 과외는 금지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이 되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과외를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얻는 완전자율경쟁체제다. 앞으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을 듣기 힘들지도 모른다.



주간동아 2001.04.17 280호 (p50~51)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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