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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몸매 환상이 부른 ‘제니칼 열풍’

가짜 비만환자들 너도나도 처방전 청탁… 외국 온라인 업체에도 구입신청 쇄도

  •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

마른 몸매 환상이 부른 ‘제니칼 열풍’

마른 몸매 환상이 부른 ‘제니칼 열풍’
제니칼(Xenical)은 과연 ‘마법의 약’인가. 지난 2월10일 국내 발매를 시작한 ‘먹는 비만치료제’ 제니칼의 열풍이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제니칼은 이른바 3대 ‘해피 메이커’(Happy Maker)중 하나. ‘제대로 식사를 하면서 살을 뺄 수 있다’는 강점 때문에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대머리 치료제 프로페시아 등과 함께 인간 생활을 개선시키는 획기적인 신약으로 손꼽힌다.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Roche)가 1997년 개발한 이 약은 반드시 의사의 처방전을 요하는 전문의약품.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 ‘다이어트 약’이나 ‘미용보조제’쯤으로 치부하면서 오남용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현재 제니칼의 판매가는 84캅셀 들이(120mg 1캅셀씩 1일 3회 복용- 4주분) 1통에 10만~11만원선. 약국에 들어오는 가격은 8만8550원이다. 이와 관련, 제니칼의 국내 수입-판매원인 ㈜한국로슈측은 “영업전략상 구체적인 매출액 및 매출 증감추이를 밝힐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일선 약국들엔 제니칼 구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영양사를 전문상담원으로 두고 상담전화를 운영중인 한국로슈에도 제니칼 관련 문의가 3월 한 달간 2000여건이나 쇄도했다. 이중 1200여건은 의-약사가 아닌 일반인의 문의. 특히 30~40대 여성들의 문의가 가장 많았다.

이런 열풍의 이면엔 제니칼을 의외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구입경로가 한몫하고 있다. 제니칼의 처방 대상은 원칙적으로 체질량 지수(BMI: 자기 체중을 m로 환산한 신장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30kg/m² 이상(예를 들어 키 160cm인 경우 체중 76.8kg 이상)이거나 또는 고혈압, 당뇨, 이상지방혈증 등 다른 위험인자를 가진 27kg/m² 이상의 비만환자. 그러나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안면 있는 사람들에게서 제니칼을 구해달라는 청탁을 수없이 받는다. 실제로 처방전을 내준 경우도 많다.” 모 대학병원 내과 전문의(40)는 “제니칼이 반드시 필요한 ‘환자’보다는 비만이 아니거나 날씬한 몸매를 가진 여성들에게 편법으로 처방전이 나가는 경우가 전체 처방전 발급 중 40~50%는 족히 될 것”이라고 털어놨다.



한 개업 약사(50) 역시 “시판 초기인 2월엔 제니칼의 인기가 워낙 높아 일선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몰래 판매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며 “하지만 사실상 처방전은 제니칼 판매와 관련해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가짜 비만환자’들이 제니칼을 찾는 이유는 부작용이 적은 제니칼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제니칼(성분명 오르리스타트)은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식욕억제제가 대다수를 이룬 기존 비만치료제와 달리 중추신경에 작용하지 않는 소화억제제, 즉 약 성분이 전신으로 흡수되지 않는 대신 지방분해효소인 리파아제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비만의 주원인인 지방의 체내 흡수를 막고 변으로 배설하도록 하는 약이다. 따라서 외국의 임상시험 결과는 제니칼을 1년간 복용했을 때 10% 가량의 감량효과가 있으며, 복용 초기 지방섭취를 과다하게 할 경우 지방변과 복부 팽만감, 방귀, 잦은 배변, 급변 등 일시적 부작용만 나타날 뿐 안전성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의 일부 약품 도매상들은 최근 급증한 한국의 제니칼 수요를 겨냥해 한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약국’ 사이트까지 개설, 온라인 판매에 나설 정도다. 뉴질랜드에 주소를 둔 ‘사이버 김약국’(4월5일 현재 홈페이지 보완중)과 미국 LA에 소재한 ‘코리아타운 쇼핑센터’는 처방전 없이 간단한 온라인 질문지와 주문서만 받고도 84, 90캅셀 들이 제니칼 1통을 각각 89달러와 190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마른 몸매 환상이 부른 ‘제니칼 열풍’
물론 이같은 온라인 의약품 판매는 불법. 때문에 국내 세관에는 소비자들이 인터넷으로 구매한 제니칼의 반송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세관 국제우편출장소 이익표 계장은 “한 달 평균 20~30개의 제니칼 소포가 도착한다”며 “그러나 추천서나 처방전을 제대로 갖춰 제니칼을 찾아가는 사람은 전체의 10% 미만이며 나머지 ‘주인없는’ 제니칼은 전량 반송된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국외로 연결된 이런 음성적인 구매 루트를 차단하더라도 국내의 제니칼 남용을 원천 봉쇄할 방안은 아직 미약해 보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해 11월 제니칼의 국내 시판 허가를 내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3월18일부터 제니칼에 대한 대대적인 약사감시활동에 나섰지만 아직까진 전국 약품 도매상에게서 판매내역서를 수집하는 단계. 물론 단속실적은 전무하다. 식약청 의약품관리과 곽병태 사무관은 “판매내역서를 모두 수합하는 대로 지역을 시-군-구별로 나눠 처방전 없는 제니칼 판매에 대한 실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약청은 제니칼의 불법거래 및 오남용 사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제니칼을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그렇더라도 의사들이 비만환자에게만 제니칼 처방전을 발급해야 하는 처방기준을 어기는 행위까지 제재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형편이다. 현재 처방기준의 준수 여부를 가려낼 방법은 건강보험 심사가 유일하지만 제니칼은 비보험약이어서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

이런 규제적 측면과는 별도로 국내의 상당수 의사들은 제니칼의 효능 자체에 대해 강한 의문을 표한다. 서울 강동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김수영 교수는 “제니칼은 고지방식을 즐기는 서구인에겐 적합하지만, 탄수화물 섭취량이 많고 평균 식사에서 지방함량이 30%를 넘지 않는 한국인에게까지 똑같은 약효를 보일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의사들이 많다”고 말한다.

제니칼 이상열풍을 의식한 듯, 판매회사측도 무척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한국로슈 제니칼팀 이혜규 과장은 “날씬한 외모 가꾸기를 위해 제니칼을 남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제니칼 복용을 중단하면 일단 다시 체중이 늘고, 저칼로리 식이요법과 운동이 패키지화한 감량프로그램을 병행해야 제니칼의 약효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숙지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어쨌든 ‘가벼운 몸, 풍성한 삶’을 표방한 제니칼의 ‘청록색 캅셀’ 돌풍이 쉽사리 수그러들 것 같진 않다. ‘비만 강박증’에 사로잡힌 일부 소비자들이 제니칼의 ‘마법’에서 풀리기까진 그들 대신 그들의 지갑이 적잖은 ‘감량 효과’를 볼 듯하다.



주간동아 2001.04.17 280호 (p40~41)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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