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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앞에서 법원은 또 …”

임창렬 경기지사 항소심 ‘무죄’선고 일파만파 … 4년 도지사 임기 사실상 보장

  • < 신석호/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kyle@donga.com >

“정치인 앞에서 법원은 또 …”

“정치인 앞에서 법원은 또 …”
4월 3일 오후 2시 서울고법에서 열린 임창렬 경기지사에 대한 선고공판에도 여느 때처럼 100여명이 넘는 방청객이 운집했다. 대부분 임지사 지지자들이었다. 반은 자리에 앉고 반은 선 방청객들은 재판장인 손용근 형사3부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언하자 우레와 같은 손뼉을 쳤다. 박수 소리는 별다른 제지 없이 10여초간 계속되었다.

선고가 끝난 뒤 손부장판사는 기자들을 만나 “검찰이 지나친 정열을 가져 객관적 사실을 간과했다. 정열이 지나치면 못생긴 여자도 예쁘게 보이는 법”이라는 말을 남겼다.

다음날인 4일 오후 3시40분경. 1999년 인천지검 특수부 검사로서 임지사를 수사했던 서울지검 강력부 권오성 검사가 몹시 격앙된 표정으로 기자실에 내려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자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 탓인지 권검사는 A4용지 5장에 미리 적어온 ‘반박성명서’만을 낭독한 뒤 결연하게 자리를 떴다. 이후 “귤(뇌물)을 탱자(정치자금)라고 할 수 없다”는 검찰과 “귤(정치자금)을 보고 귤(정치자금)이라고 했다”는 법원의 말씨름이 계속되었다.

업자에게서 1억원을 받았던 정치인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고, 법관이 검찰을 공개 비난하며, 검사가 재판부와 판결문을 공식 반박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모두 임지사가 ‘매우 중요한’ 정치인이었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인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법조계와 여론의 논란을 빚은 경우는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업자에게서 33억5000만원을 받아 정치자금법위반과 알선수재, 뇌물혐의로 기소되었던 김윤환 민국당 대표에게는 2월 1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5년이 선고되었다. 서울지법은 그러나 그가 “중요한 위치에서 활동해 온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다.



또 업자에게서 법 개정을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2억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되었던 박관용 한나라당 의원 역시, 지난해 11월 서울지법 서부지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법 개정 대가라기보다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업자가 선거운동을 하라며 준 정치자금으로 보인다”는 것이 무죄의 이유였다. 이 판결들은 “일반 구속자와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거나 “뇌물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향후 정치인들의 은밀한 뇌물수수행위를 처벌할 수 없게 된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임지사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두번째 유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임지사가 98년 5월28일 서이석 당시 경기은행장에게서 1억원을 받은 것은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와 검찰은 99년 임지사가 검찰청에서 은행퇴출이라는 대가성을 인식하고 돈을 받았다는 취지로 했던 ‘자백’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가장 쟁점이 되는 부분은 임지사가 99년 7월24일 진술하고 서명 날인한 6회 피의자 신문조서.

“서이석과 리츠칼튼호텔에서 처음 만났을 때 서이석이 경영정상화 계획을 제출하여 두고 실사를 받는 중이라며 퇴출대상으로 거론되는 어려운 상황이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중략), 돈을 받을 때 경기은행의 퇴출 등과 관련하여 어려운 점에 대해 도와달라는 것으로 알았으나 선거에 임박하여 워낙 많은 돈이 소요되는 등 돈이 필요한 나머지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런 분간을 할 여유 없이 그 돈을 받아 선거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같은 조서에서 임지사는 이렇게 받은 1억원을 돌려준 경위에 대해 “경기은행이 퇴출된 후 제가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서이석에게 연락해(중략) 만나자고 하여 마음이 편치 않은 돈이라며 돌려주었다”고 진술했다. 임지사는 이 조서를 읽고 자신의 진술과 다른지를 확인한 뒤 도장을 찍었으며 최후의 순간에는 프린트된 조서 위에 ‘돌려받을 것을 강권하여’라고 친필로 조서를 수정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자백이 ‘거짓자백’이라고 본 이유 중 하나는 이렇다. 검찰이 진술을 조작했다는 취지다.

“당시 검사가 전날 피고인의 변호인이 기자회견에서 피고인이 받은 돈은 선거자금이었을 뿐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하여 화를 내면서 자백을 강요하기에 그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마음먹고(중략), 실제로는 그와 같은 진술을 한 적이 없음에도 검사가 그런 방향으로 조서를 작성해 오자 단순히 그곳에 서명무인만 한 것으로 변소(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배척(받아들이지 않음)할 자료는 보이지 아니한다.”(항소심 판결문 6,7쪽)

특히 ‘자백을 강요하기에…실제로 그와 같은 진술을 한 적이 없음에도’라는 대목은 검찰의 명예와 자존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권검사의 성명서 파동은 여기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권검사는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당시 피고인은 대단한 실세로 알려져 검찰 수사는 전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피고인은 소환 첫날부터 거의 날마다 변호인을 접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검사가 어떻게 진술하지 않은 사실을 조서에 기재할 수 있으며 피고인이 어떤 사람인데 말도 하지 않은 사실이 적힌 조서에 서명하겠습니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수사과정에서 검사는 피의자에게 ‘지사님’이라고 호칭을 했는데 무슨 억압이 있을 수 있습니까? 또 당시 임지사에 대한 수사 자체도 부담스러웠는데 단 한 점의 의혹이나 문제가 생기면 수사는 고사하고 무슨 일이 벌어졌겠습니까?”(성명서 3,4쪽)

임지사가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한 과정에 대한 사실관계와 이에 대한 판단도 판이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억울한 마음에 심사를 신청했다가 다음날 검사가 피고인을 소속 정당에서 출당조치했다는 신문을 보여주면서 구속은 청와대가 결정하였다는 취지로 말하자 자포자기상태에서 심사신청을 포기하고 검찰의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수사기록에 의하면 검사의 4회 신문 이후 심사를 포기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일견 명백하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그러나 권검사는 “피고인이 심사를 포기한 것은 7월16일이고 처음 자백한 것은 7월19일이다. 17일과 18일은 국경일과 일요일이어서 피고인을 소환하지 않아 피고인이 변호인을 충분히 접견하고 휴식을 취한 상태에서 4회 조서를 받고 첫 자백을 했다”며 “피고인이 4회 조서를 받은 뒤 심사를 포기했다는 것은 법원이 사건 기록을 정독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피고인의 진술만 맹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범죄의 증거를 판단해 법률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검찰과 법원의 직무는 기본적으로 같다. 그러나 임지사를 수사한 검찰과 항소심 재판부는 거의 대부분의 증거에 대해 견해를 달리했다. 과연 검찰의 정열이 지나쳤던 것인지, 법원이 일방적으로 피고인의 진술만을 맹신한 것인지는 향후 대법원의 판단에 맡겨지게 되었다.

누구의 말이 옳든 간에 임지사는 이번 판결로 엄청난 정치적 혜택을 받게 되었다. 만일 대법원이 항소심 판단을 파기하더라도 사건이 다시 고법을 거쳐 대법에 상고되는 동안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임지사는 대법원 판단 여부에 관계없이 4년 동안의 지사직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된 셈이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임지사에게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면 올해 말이나 다음해 초 경기도 지사직을 다투는 선거가 있었을 것이고, 이 선거의 결과는 바로 대선 판도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국당 김윤환 대표의 경우도 비슷한 시각으로 보는 이가 있다. 그가 법정구속되었다면 민주당과 자민련, 민국당의 3당 정책연합을 성사시키는 ‘대업’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1.04.17 280호 (p38~39)

< 신석호/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kyl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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