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0

2001.04.17

저무는 광주, 떠오르는 목포

전남도청 목포권 이전 놓고 두 도시간 희비 엇갈려 … ‘힘의 이동’은 이미 시작

  • < 광주·목포=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입력2005-02-25 1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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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무는 광주, 떠오르는 목포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이웃 도시 광주와 목포는 현 정권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대통령을 포함해 민주화운동에 나선 수많은 인사들을 배출했으며, 역대정권으로부터 수십년간 소외받은 아픔까지 공유하고 있다. 과거 해태타이거즈의 전성기에 광주 시민들이 야구장에서 목이 터져라 부르던 응원가가 바로 ‘목포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후 3년이 지난 지금, 두 도시간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그것은 뚜렷이 엇갈리는 미래에서 비롯되었다고 이 지역 사람은 말한다. 현재 상황만 놓고 봤을 때 광주는 ‘서산에 지는 해’와 같고, 목포의 시세(市勢)는 유달산의 개나리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다고 한다.

    ‘광주에서 목포로 힘의 이동이 시작되었다’는 논란은 광주에 있는 전남도청을 목포권으로 옮기는 사업이 임박해지면서 더 가열되고 있다. 광주-전남통합추진위원회(이하 통추) 관계자는 “앞으로 목포가 광주를 대신해 전남의 중심지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73개 기관 빠져나가 상권 몰락”

    저무는 광주, 떠오르는 목포
    4월3일 밤 광주시 전남도청 앞 ‘함평천하’라는 음식점. 도청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는 전남경찰청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있었다. 이 음식점 직원은 “도청이 목포로 옮겨가면 공무원 손님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날 오전 금남로의 명물음식점인 ‘뽐뿌집’에 모인 부근 상인들은 정치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도청 이전 반대하는 거 잘하는 거여” “한나라당이 이번에 더 세게 나와줘야 할 틴디.” 3월24일 광주 중심지 충장로의 상인들은 도청 이전 반대를 위한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이때 만든 격한 내용의 플래카드들은 지금도 충장로 곳곳에 걸려 있다.



    도청 이전은 광주와 목포 두 지역에서 경제적-감정적으로나 엄청난 폭발성을 지닌 뇌관이 되었다. 광주시 자치행정과 김문옥 계장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도청 이전에 따라 광주의 지역 총생산(연간 10조2000억원 규모)은 최고 2.6%가 줄어들며, 현재 진행중인 광주 중심권의 도심 공동화현상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한다. ‘통추’가 공개한 광주전남발전연구원 자료는 광주 인구가 최고 2만6000명이나 줄어들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통추의 임택 사무처장은 “실제 영향은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도청이 옮겨가면 도경찰청, 도교육청, 농협 등 73개 기관이 함께 광주시에서 빠져나간다. 도심상권 몰락에 이어 시내 건설업체는 물론 인쇄업체 같은 소규모업체까지 개발수요가 있는 목포권으로 몰려갈 것이다. 우리는 이에 따르는 광주시의 인구감소가 20만∼3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본다”(임택 사무처장).

    도청 이전사업은 국고 지원액까지 결정하여 올해 10월에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광주시민들은 “지금이라도 무효화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왜 광주는 도청에 이토록 강하게 집착하는가. 광주경실련 변동철 부장은 “관공서가 발생시키는 경제효과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광주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98년 아시아자동차 부도 이후 주저앉은 중소기업의 수는 회복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광주의 재정자립도는 광역시 중 가장 낮으며, 실업률은 7대 도시 중 두 번째로 높고, 연간 1인당 총생산은 755만원(전남 1182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택시기사 김용택씨는 “도심에 지하상가 공사를 한창 진행하다가 갑자기 땅이 도로 메워지더니 없던 일로 되었다. 지어봤자 사업성이 없기 때문 아니겠느냐. 비애를 느꼈다”고 말했다.

    대구시가 자체적으로 100억원을 모아 프로축구단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도 광주를 우울하게 한다. “100억원이면 해태타이거즈도 광주에 그대로 둘 수 있다. 그런데 광주경제는 그 정도 돈을 마련할 능력마저 없다는 것인가”(광주시 한 공무원).

    광주경실련 변부장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도청 이전에 따른 인구감소는 현재 공사중인 광주지하철의 적자폭을 더욱 크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실련측이 추정하는 적자만 1조원 이상. 이는 광주시청뿐 아니라 광주 경제 전체의 희망을 꺾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광주시는 도청 이전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농림부나 정보통신부 광주 유치 등 20여 가지 대안을 마련중이다. 그러나 시 관계자는 “대부분 계획단계이며 일부는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광(光)산업’은 광주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지역개발사업이다. 광주의 한 경제계 인사는 이에 대해서도 “자금이 성공적으로 들어와도 5000억원 정도의 규모이다. 태양에너지에서 광섬유까지 사업의 ‘스펙트럼’이 너무 넓지 않느냐”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광주경실련 변부장은 “광주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고 말했다.

    4월4일 오전 10시 기자가 만난 권이담 목포시장은 활기차 보였다. 그는 이날 도청 유치를 계기로 벌어지는 목포시민 의식개혁운동에 막 나서는 참이었다. 권시장은 ‘개선장군’처럼 “목포는 급진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지켜보라”고 말했다.

    저무는 광주, 떠오르는 목포
    그 시발점이 도로이며 종점은 도청 이전이다. 도로에 대한 목포의 애착은 목포시청 한 공무원의 설명에서 잘 드러난다. “지도를 보면 서울에서 내려오는 호남고속도로가 광주에서 갑자기 급커브를 그리며, 남해고속도로로 빠져나간다. 한국 최남단 도시 목포의 소외감이 어떠했겠는가. 현재 목포∼서울은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타야 하며 8시간이 걸린다. 목포가 발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부는 일정을 당겨 올해까지 서울에서 군산을 지나 목포를 잇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완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럴 경우 목포에서 수도권까지 5시간이면 충분해져 수도권 연계성이 높아진다. 목포는 또한 남해안의 광양~부산을 잇는 고속도로도 갖게 될 전망이다. 여기에다 물류유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줄 호남선 복선화사업을 2002년 완료한다. 목포 신외항 3만 t급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를 2004년 완공하며, 하늘 길을 이어줄 무안국제공항사업도 실현단계에 올라 있다.

    목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엄청난 규모의 SOC사업은 목포를 일약 국내외 교통의 요지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4월5일 목포시 대불국가산업단지는 입주율이 30%선에 지나지 않았다. 목포시 관계자는 “땅값은 평당 20만원대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목포의 교통이 사통팔달 뚫리면 대불공단은 사정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전남도청은 2004년 12월 전남 무안군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그래서 호남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도청 이전을 목포와 무관한 일로 여기기 쉽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도청을 이전하는 지역은 목포시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도청 주변에 조성할 ‘남악 신도시’의 3분의 1은 현 행정구역상으로도 목포에 속한다. 권이담 목포시장은 “무안군과 목포시는 목포시로 곧 통합한다. 도청은 결국 목포로 이전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전남도청 이전은 총 447만평에 2조5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15만명의 인구가 새로 유입된다. 권시장은 충북 청주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광복 후 읍소재지에 지나지 않던 청주에 도청이 들어오면서 청주는 목포보다 훨씬 큰 도시가 됐다”고 말했다.

    목포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SOC사업과 도청 이전은 시너지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전남도청은 남악 신도시 소개자료에서 “도청 이전으로 목포는 광주~목포 광역권 경제 행정 문화 관광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목포가 광주를 ‘제치고’ 서해안시대를 여는 전남의 대표도시로 뛰어오를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1백년 전엔 목포가 훨씬 컸다”

    저무는 광주, 떠오르는 목포
    목포의 시민단체들은 도청 이전을 이구동성으로 지지하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광주에 있느냐, 목포에 있느냐에 따라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이다. 경실련의 경우, 광주경실련은 도청 이전에 비판적 중도입장이지만 목포경실련 김종익 사무국장은 “도청이 꼭 광주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목포는 항구, 고속도로, 철도, 공항, 국가공단, 도청 등 비약적으로 발전할 토대를 마련해 가고 있다. 지금도 많은 국부(國富)를 목포에 투자하고 있다. 목포가 전남 제1의 도시가 된다고 해도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목포지역 시민단체 관계자). 목포시 관계자는 “광주는 소비도시다. 목포를 키워야 배후의 광주도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광주는 지금 실망감과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반면 고작 1시간 떨어진 이웃 도시는 ‘나가자 세계로, 미래로’(남악 신도시 계획자료)를 외치며 건국 이래 가장 희망찬 날들을 보내고 있다. 목포는 지금 덩치가 6배나 큰 광주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통추는 “100년 전인 20세기 초엔 목포가 광주보다 훨씬 더 큰 도시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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