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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 백기투항인가 작전상 후퇴인가

현대건설 포기 배경 놓고 설왕설래… “얼떨결에 당했다” “부실 털고 실속” 반응 각각

  • < 유승호/ 머니투데이 기자 shyoo@moneytoday.co.kr >

MH, 백기투항인가 작전상 후퇴인가

MH, 백기투항인가 작전상 후퇴인가
현대건설을 포기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하 MH)은 ‘백기투항’한 것일까, 아니면 치밀한 사전준비 끝에 현대그룹 부실을 현대건설에 떠넘기고 빠져나간 것일까. 재계에서는 MH가 부실기업(현대건설)은 은행에 떠넘기고 실속(현대상선 등 다른 계열사)은 다 챙겼다는, 이른바 ‘현대건설 출자전환 시나리오설’이 나돌고 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현대건설 출자전환을 전후한 MH의 움직임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드러난 몇 가지 얘기를 통해 그의 심경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적어도 현대건설 출자전환에 매우 분개했던 것으로 보인다.

3월25일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 장지에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다른 형제들은 차례대로 묘소에 한 삽씩 흙을 쏟고 진행 요원들에게 삽을 넘겼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더러 슬픔을 가누지 못한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MH는 자기 차례가 되자 흙을 한 삽 쏟은 다음 돌아서서 삽을 흙더미에 ‘퍽’하고 꽂았다.

MH가 1996년 현대건설 회장직을 처음 맡을 때 그는 현대호를 이끌 ‘포스트 정주영’으로 떠올랐다. 많은 아들 중 장자도 아닌 그가 현대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을 맡았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현대의 ‘MH 시대’를 예상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채권단에 넘어가고 난 지금 그는 형제들 가운데 가장 빈약한 현대 소그룹장으로 전락했다. 그런 만큼 심사가 복잡할 것이다.

채권단이 현대건설 빚을 자본금으로 바꾸는 이른바 ‘출자전환’을 하고 현대 일가의 주식을 완전감자하면 MH는 현대건설에 대한 지배력을 완전 상실하게 된다. MH가 갖고 있던 현대건설 주식(6.38%)은 물론이고,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남긴 5062만주(15.77%, 739억원 상당), 현대종합상사가 가지고 있는 1.52% (487만주)와 아산재단의 1.33%(428만주)도 모두 휴지조각이 된다. 반면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으로 일찌감치 분가한 정몽구 회장이나 정몽준 의원(현대중공업 고문)은 사실 현대건설 출자전환으로 손해볼 게 별로 없다.



MH, 백기투항인가 작전상 후퇴인가
그렇다면 MH는 현대건설 출자전환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전격적인 출자전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적어도 그 ‘믿기 싫은 현실’을 예감하고 있었고, 사전에 대비한 측면이 있다. 정부와 채권단도 ‘사전 준비’를 계열 분리란 명목으로 묵인했다고 볼 수 있다.

MH가 현대건설의 출자전환을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 것은 최근의 일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 자금부서 관계자의 말에서 MH가 막판까지 현대건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MH가 ‘대주주 감자동의서’를 외환은행에 제출한 3월 초만 해도 완전감자까지 당할 줄은 예상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현대건설은 이번에 부도를 내 유동성 문제로 출자전환된 게 아닙니다. 시장에서 그렇게 불신을 받으면서도 자금을 막아왔습니다. 다만 회계감사를 통해 전액 자본잠식되고도 9000억원이 모자라는 상황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명분게임’이 끝났을 뿐이죠.” 그러나 MH는 적어도 진념 경제부총리 등 경제장관들이 지난 3월28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현대건설 출자전환 방침을 확정하기 전에 이같은 방침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남긴 현대건설 지분을 상속받지 않고 현대건설에 증여하기로 한 것에서 반증된다. 정명예회장이 남긴 현대건설 지분은 무려 739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를 상속받은 후 출자전환으로 완전감자될 경우 실제 그 지분을 상속받지도 못하면서 상속세만 수백억원 내게 된다는 것을 미리 간파했다고 볼 수 있다.

MH는 현대건설 출자전환 방침이 확정되자 정부와 채권단에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념 경제부총리와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이를 공식 확인해 주기도 했다. 진부총리는 현대건설 출자전환, 대주주 완전감자 방침이 발표된 직후 “MH가 반발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게 되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으며,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도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재벌에겐 재산이 전부인데 왜 반발이 없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MH와 전화 통화한 결과 모든 것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MH는 2조9000억원의 적자를 산정한 삼일회계법인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졸지에 몰락한 재벌이 된 MH가, 그것도 유동성 문제로 부도상황에 처하지도 않았는데 출자전환으로 자신의 현대건설 지분을 모두 감자당하면서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고, 특혜시비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따라서 MH의 반발은 현대건설 출자전환을 둘러싼 특혜시비를 잠재울 수 있는 ‘극적 효과’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진심으로 반발했다면 금감위원장의 전화 한통에 모든 것을 수긍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MH는 현 경제팀과의 ‘거래’에서 결코 손해봤다고는 할 수 없다. 그는 현대건설을 잃었지만(정부 일각에선 MH에게 언젠가는 현대건설을 다시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많은 것을 얻기도 했다.

현대건설 출자전환이 지난해 10월30일 1차 부도 이후 또는 11월3일 기업 퇴출 전에 이뤄졌을 경우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기업퇴출이 이뤄지기 하루 전인 11월2일 현대건설이 보유하던 현대상선 보통주 1563만주가 주당 2430원, 총 매각대금 380억원에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되었다. 당시 현대건설은 이 거래의 목적이 단순히 재무구조 개선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건설이 보유하던 현대상선 지분은 단순한 투자유가증권이 아니었다. 현대상선`-`현대전자`-`현대증권 등 MH 계열사들에 대한 경영 지배권이 붙어 있는 현대건설의 핵심자산(core assets)이었다. 이를 시가대로 매각함으로써 현대상선은 현대건설에서 독립했고, 출자전환이 이뤄진 이제 와서 보면 MH는 그 거래로 현대상선과 그에 딸린 계열사를 챙길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채권단은 이상하게도 현대상선 지분 매각을 순순히 용인해 줬다. 그것도 11·3 퇴출 하루 직전이라는 미묘한 시점이었다. 현대건설 출자전환이 두고두고 특혜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은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MH는 현대건설의 완전감자가 현실로 닥칠 것으로 믿고 싶지 않았겠지만 현대상선 지분 매각을 통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현대건설 출자전환이 무려 5차례의 자구계획이 차질을 빚고 1차 부도까지 냈는데도 6개월 이상 미뤄진 것은, 정부와 MH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정부는 현대건설 출자전환에 따른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끌며 현대건설과 MH 소유의 다른 계열사와의 관계를 끊도록 했고, 그 덕분에 MH는 현대건설을 포기하는 대신 다른 계열사라도 건질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다.

지난 4월6일 MH 장모 김문희씨는 지난해 11월2일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한 현대엘리베이터의 최대주주로 등극, 관심을 끌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지분율 15.16%)임을 감안한다면 김씨가 MH계열사를 장악한 셈이다. 현대상선은 현대건설이 지분을 매각한 이후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어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를 장악하면 MH계열 현대계열사를 모두 장악하게 된다. 현재 현대상선은 중공업 12.46%, 전자 9.25%, 상사 6.23%, 증권 16.65%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는 “정확한 목적은 모르지만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이고 그룹 내에서 수익이 상대적으로 좋은 엘리베이터를 끌어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 내에서 정회장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려는 조치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해 김씨의 지분 매입이 MH 입지 강화와 무관하지 않음을 내비쳤다. 결국 현대건설 부실 경영으로 인한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되었지만 MH는 외견상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게 되었다. ‘특혜설’까지 나오는 현대건설 처리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주간동아 2001.04.17 280호 (p26~27)

< 유승호/ 머니투데이 기자 shyoo@moneytoda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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