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2001.02.15

막강파워 ‘운동권 중·고생’ 떴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 회원 1500여명 거대조직 부상 … “교육 관련 이슈 실력 행사도 불사”

  • 입력2005-03-18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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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강파워 ‘운동권 중·고생’ 떴다
    ‘…불의에 항거한 광주 학생 항일운동과 4·19 민주화 혁명에서 보인 중-고교생의 역사적 의의를 이어받은 학생연합은 교육의 학생 제일 주체론을 강력히 견지하고 교육의 기회 평등을 고수하며 학생 권익 증진에 이바지한다….’

    비장한 문체와 낯익은 어휘들. 언뜻 보기에 80년대 대학생 조직의 정강을 연상케 하는 이 글은, 그러나 놀랍게도 10대 청소년들이 모여 지난해 12월23일 출범시킨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하 학생연합)의 공식 강령이다.

    서울을 비롯한 8개 지역연합으로 구성된 학생연합은 현재 회원 1500여명(회비 납부 기준)을 자랑하는 전국조직. 사이버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창백한 동호회’들과는 그 격이 다르다.

    “우리의 지향은 ‘민주노총’입니다. 교육 관련 이슈에 대해 수업거부 같은 적극적인 방식으로 실력을 행사하는 ‘운동조직’이 되고자 하는 겁니다.” 서울 명동 유네스코 회관에 자리잡은 사무실에서 만난 중앙집행위원회 육이은 위원장(18·서울 여의도고 2년)의 말이 사뭇 다부지다.

    ‘두발 제한 철폐운동’ 성공적 평가



    막강파워 ‘운동권 중·고생’ 떴다
    “회원 개인을 구성단위로 하는 시민단체형 조직과 달리 학생연합은 각 학교별로 조직된 지회를 그 기초단위로 합니다. 한마디로 ‘상급단체’인 셈이죠.” 서울만 해도 현재 300여 학교에 지회와 회원이 퍼져 있다고 서울 지역연합장을 맡고 있는 정여진양(18·서울 성북구 수유동)은 설명한다.

    계속되는 전문가 수준의 설명. 잠시 머리를 스치는 ‘혹시 배후세력이…?’ 하는 의문은 이들이 ‘초보자’가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 곧 해결된다. 육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집행부는 지난 95년 결성된 하이텔 동호모임 ‘학생복지회’ 출신. “수년간 활동경력을 쌓으며 ‘노선’을 구체화해 왔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동호회 조직이 갖는 한계도 그런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거고요.”

    이러한 노하우가 성공적으로 구체화된 것이 지난해의 ‘두발 제한 철폐운동’이었다고 이들은 평가한다. 6개월 동안 20 차례 이상 집회를 개최한 결과 교육부로부터 “두발문제는 학교 구성원들의 토론을 거쳐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지시를 받아냈던 것. 마치 머리털이 완전 자율화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당시 언론 보도들은 사실과 다르지만 그를 통해 자신감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라고 이들은 평가한다.

    “올해의 사업 기조는 학교 안에서 학교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입니다. 학생회 선거 개입과 교칙 개정운동이 그 두 축이고요.” 우선 3월부터 각 학교 학생회 선거에 학생연합의 이름을 걸고 후보를 출마시킬 예정이다. 사실상 선생님들이 지명한 ‘모범생 후보들의 잔치’였던 선거를 본격적인 학교민주화의 축제로 만들겠다는 것. “학생연합이 일종의 정당 역할을 하게 됩니다. 거수기에 불과한 지금의 학생회가 제자리를 찾게 하는 첫걸음이죠.”

    한편 교칙개정운동은 ‘UN 어린이-청소년 권리조약’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하는 교칙조항들을 개정토록 하는 것이 그 목표라고 사업팀장 김다정양(17·서울 Y고 1년)은 설명한다. “80년대 말 이미 폐기된 ‘학교교칙준칙’이 아직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요. 시대의 흐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거죠.” 사업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 인권운동사랑방의 고근예 간사도 “징계에 대해 학생 본인은 전혀 변호나 소명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점 등 인권침해의 소지가 농후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수집된 ‘문제학칙’들은 변호사와 대학교수들로 구성된 위원단의 정밀분석을 통해 오는 5월경 토론회 형식으로 정식 공개될 예정.

    이렇듯 대놓고 학교의 문제점을 ‘까발리는’ 학생연합 활동이 학교나 교육당국의 환영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실제로 많은 회원들이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지역연합장인 장여진양은 지난해 9월 한 일간지에 학생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학교측이 이를 문제삼자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제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잖아요. 특히 엄마가 그 일로 인해 마음 고생 하신 걸 생각하면 지금도 견딜 수가 없어요.”

    학생연합이 학생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한다고는 하지만 이들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안양고 문준환 교장은 “시대에 따라 규제도 달라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이 즉흥적인 감정에 치우쳐서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한다. 학생연합의 활동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한 서울 면목중 현원일 교사(42·전교조 학생생활국장)는 “내가 부모라 해도 선뜻 활동을 허락할 수 있을지 의문일 만큼 이들 개인이 겪어야 할 어려움에 대해서는 걱정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태지 CD와 스케이트보드가 굴러다니는 놀이터 같은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던 고모군(18·서울 K고 2년)이 기자를 향해 던지는 한마디. “민주주의가 뭐 별건가요. 어른들은 우리한테 맡겨두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보세요, 지금도 잘해내고 있잖아요? 적어도 학교보다는 훨씬 더 민주적이잖아요.”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은 학교와 싸워가며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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