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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매각했다가 캘리포니아 꼴 될라

전력산업 개혁안 닮은 꼴 … 싼 요금에 전기 펑펑 써 결국 정전사태

한전 매각했다가 캘리포니아 꼴 될라

한전 매각했다가 캘리포니아 꼴 될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정전(停電)사태에 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어떤 주인가. 면적은 한반도의 두 배 정도이고, 인구는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가장 많은 3500여만명이다. 이 주는 미국에서 가장 부유해 미국 GNP(국민총생산)의 35% 정도가 이 주에서 생산된다. 캘리포니아주의 GNP는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인 이탈리아보다도 많아, 이 주는 ‘골든 스테이트’(황금의 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지난해 연말 김대중 정부와 국회는 한국전력(한전)이 보유한 발전소 중에서 원자력과 수력을 제외한 모든 발전소를 5개의 법인(발전회사)으로 나눠 매각한다는 ‘한전 개혁 법안’을 만들었다. 이 법이 발효되면 한전은 각각 700만kW대의 발전 능력을 가진 5개 발전회사를 매각하고, 매각 대금으로 누적 적자를 갚는다. 한 개 발전회사의 예상 매각대금은 7조원 대이므로, 한전은 33조원으로 추산되는 누적 적자를 단숨에 갚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경제 상황을 볼 때 그만한 인수자금을 부담할 재벌은 거의 없다. 잘나가는 삼성그룹이나 포스코(포항체철 그룹)의 자금 동원력도 1조원을 넘지 못하므로, 5개 발전회사는 전부 외국 기업에 매각될 전망이다. 발전회사가 매각되면 그때부터 한전은 발전회사들로부터 전기를 사서, 각 가정에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때 증권거래소와 유사한 ‘전력거래소’를 만들어 발전회사와 한전은 이곳에서 전기를 매매하게 된다.

전력거래소에서 입찰이 붙으면 한전은 싼 전기부터 사줄 것이므로, 5개 발전회사는 경쟁적으로 전력 요금을 인하할 것이다. 때문에 국민들은 과거처럼 값싸게 전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 ‘한전 개혁 마스터 플랜’인 것이다.

한전 매각했다가 캘리포니아 꼴 될라
지난 96년 캘리포니아주는 이와 유사한 전력산업 개혁안을 실행에 옮겼다. 한국은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발전도상국’(developing country)이지만, 캘리포니아는 발전할 대로 발전한 ‘선진국’(developed country)이라 전력 수요가 폭증하지 않는다.



96년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피터 윌슨은 이러한 점에 착안해 발전소를 매각했는데, 대부분의 발전소들은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노스캐롤라이나를 비롯한 타 주의 기업들에 매각되었다. ‘태평양가스전기(PG&E)사’와 ‘남캘리포니아 에디슨(SCE)사’ 등은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사서 각 가정에 나눠주는 역할을 맡았다. 이 개혁은 성공을 거둔 듯, 수년 동안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싼 전기를 풍족히 쓸 수 있었다. 그런데 클린턴 정권 시절 사상 유례없는 경제 호황이 계속되면서,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벤처 타운들이 대거 캘리포니아주에 들어섰다. 그에 따라 캘리포니아주의 전력사용량이 대폭 늘어났다.

한편 1998년까지 배럴당 10달러 선이던 국제 유가가 30달러 선까지 치솟자, 석유를 때는 화력발전소들은 전기 납품가격 인상을 시도했다. 그런데 높은 가격을 써내면 전기를 사주지 않으므로, 발전회사들은 입찰 시 울며 겨자 먹기로 낮은 가격을 써냈다. 다행히도 캘리포니아주는 수력이 주발전원(源)이라, 유가 인상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적었다. 이러한 발전회사들의 굴복은 캘리포니아주의 전력 개혁이 성공한 사례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지난 2년간 미국 서해안에 가뭄이 계속돼 저수지의 물이 크게 줄어들자 상황이 급변했다. 수력 발전소의 발전량은 크게 줄어든 반면 더위와 호황 덕분에 전력 소비량이 급증했다. 수력발전이 줄어들고 전력 소비가 늘면 발전회사들이 신규 발전소를 지어 수요 증가에 대응해야 하는데, 이 회사들은 항상 최저가로 전기를 제공해 왔기 때문에 신규 발전소를 지을 돈이 없었다.

발전회사들의 재정이 악화하자 태평양가스전기사는 발전회사들이 망하지 않을 정도로 약간씩 전기 요금을 올려줬는데, 여기에 새로운 ‘시어머니’가 나타났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거의 모든 물가가 오르므로 주민들의 원성이 자자해진다. 때문에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은 전기요금 인상에 결사 반대한다. ‘바른 말’을 해야 하는 언론 또한 전기 요금 인상에는 반대다. 전기 요금이 오르면 윤전기 가동 비용과 촬영 비용이 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태평양가스전기사 등에 주민들에게 받는 전기요금은 올리지 말라고 압력을 가했다. 이미 발전회사로부터 비싼 전기를 사오게 된 태평양가스전기사로서는 재무 구조가 나빠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위기가 닥쳐오는 줄도 모르고 싼 전기를 펑펑 써댔다. 지난해 연말 전력 예비율이 급락하며 캘리포니아의 전력 위기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시는 금문교에 달린 834개의 색동전구에 밤새 불을 밝혀 놓았다. ‘전기가 부족하다는데 왜 색동전구를 켜는가’란 질문에 교량 관리자는 “하룻밤 전기 요금은 한 사람의 품값도 되지 않는 10달러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색동전구를 철거하려면 5.5마일에 걸쳐 한 개 차선을 막고 수십 명의 인부가 수일 동안 일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공무원조차도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태평양가스전기사와 남캘리포니아 에디슨사의 부채가 110억달러로 급증하자 두 회사는 원리금 상환을 중단하는 ‘디폴트’(default)를 선언하게 되었다. 위기가 실체를 드러내자 주정부는 전기요금을 일시에 세 배나 인상했다. 그런 조치를 취했음에도 지난 1월16일 전력 예비율이 1.5% 이하로 내려가자,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중-북부 캘리포니아 주에 전력 공급을 중단한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골든 스테이트가 하룻밤 사이에 ‘다크 스테이트’(암흑의 주)로 돌변한 것이다.

한전 매각했다가 캘리포니아 꼴 될라
전력 예비율이 1%로 내려간 것은 언제 0%에 이를지 모른다는 뜻이다. 0%에 이르면 가정에서 전기를 많이 사용할 때 두꺼비집에서 ‘퍽’하고 퓨즈가 끊어져 전기가 나가듯이, 캘리포니아주 모든 시설에서 전기가 나가 버린다. 때문에 수술중인 환자는 죽을 수밖에 없고, 엘리베이터와 지하철을 탄 사람은 구조대가 올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나가 버린 전기를 완전 복구하는 데는 수년이 필요하다. 때문에 예비율이 1%대로 내려가면 병원과 지하철 등 특수 시설을 제외한 일반 시설의 전기 공급을 끊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주지사는 캘리포니아주와 붙어 있는 워싱턴주와 오리건주에 전력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두 주 또한 가뭄으로 전력이 부족해 찔끔찔끔 지원했다. 주지사는 ‘개발도상국’ 멕시코에까지 전기 지원을 요청했으나 멕시코 정부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되자 그때까지 입 다물고 있던 미국 언론들은 ‘캘리포니아의 전력 개혁은 개악이었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자사 이기주의에 젖어 제때에 경보(警報)를 울리지 않은 언론이 뒤늦게 약방문을 남발한 것이다.

한전 개혁 후 이와 유사한 사태가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한국의 각 가정별 에어컨 보급률은 30%대이나, 일본은 120%대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수년간 한국의 에어컨 보급률은 급증할 전망이다. 에어컨 전력 소비량은 평균 3kW이므로, 단순 계산만으로도 매년 300만kW씩 전력 소비가 늘어난다. 5개 발전회사를 사들인 외국 기업들은 이러한 수요 증가에 발맞춰 제때에 발전소를 지어줄 것인가. 그들에게 한국을 위해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전두환 정부가 집권한 81년부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98년 사이 소비자 물가는 140.4%나 상승했으나 전력 요금은 오히려 6.7% 하락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정부의 압력 때문에 전력 요금을 내리면서도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소를 지었기 때문에 한전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캘리포니아 정전사태는 ‘편법’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을 올려 국민에게 절전(節電)토록 하고, 그 돈으로 한전 부채를 해결하면 된다. 잔꾀를 썼다가 한전도 죽이고 국가 경제도 죽이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1.02.15 271호 (p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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