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0

2001.02.08

윤락 늪에 빠진 여대생 ‘악몽의 1년’

카드빚 마련 위해 “딱 한달만” 생각으로 시작… 돈 벌기는커녕 2500만원 빚더미

  • 입력2005-03-16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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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락 늪에 빠진 여대생 ‘악몽의 1년’
    지난해 12월12일 서울 청량리 경찰서. “분명히 줬잖아요. 만약 돈을 안줬으면 내가 다른 업소에 갈 수 있었겠어요? 소개비며 이자, 하이방비 다 줬잖아요.”

    경찰 조사를 받던 김수민씨(가명·27·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하이방비’란 윤락을 할 수 없는 날 포주에게 내는 벌금을 말한다.

    “××년아! 니 년이 그냥 날랐잖아. 아유! ×발.” 욕설 섞인 포주 H씨(38)의 말에 김씨는 억울함이 복받쳐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자신을 고용했던 경기도 파주 속칭 용주골의 윤락업소 포주 H씨가 김씨에게 받은 돈이 하나도 없다며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했기 때문. 여기까지는 윤락 여성과 포주 사이에 종종 벌어지는 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씨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김씨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서울 모대학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윤락 여성의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포주들과 소리지르며 싸우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지난해 초까지 김씨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원룸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살아왔다.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그는 남은 기간 여행을 떠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 그가 윤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카드빚 때문이었다.



    지난해 2월 신용카드대금 고지서를 받아든 그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갚아야 할 돈이 무려 700여만원. 평소 씀씀이가 컸던 탓에 옷과 화장품, 구두 등을 꽤 많이 샀지만 이렇게까지 썼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했던 피아노 레슨비만으로는 카드빚을 한 달 내에 갚기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님에게 손벌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부모님과 실랑이 끝에 독립했기 때문에 만약 돈을 갚아달라고 부탁하면 집으로 들어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이리저리 카드빚을 갚을 궁리를 하던 김씨는 생활정보지에 나와 있는 다방의 여종업원 모집 광고를 보게 됐다. ‘한 달에 300만원 수입보장’이라는 문구에 솔깃해진 그는 광고를 낸 다방에 무작정 찾아갔다. 그러나 그가 찾아간 곳은 다방을 가장한 무자격 직업소개소. 소개업자 겸 윤락업소 주인인 M씨(29·여)는 마치 친한 언니처럼 김씨를 설득했다.

    “언니가 여기서 일하면 한 달에 700만원을 충분히 번다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경악했죠. 그러나 집요한 설득에 뭐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방에서 두 달 간 일하느니 차라리 여기서 한 달만 눈 딱 감고 일하자고 생각했죠. 모든 판단은 제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게 순식간에 이루어졌어요.” 그러나 이 한순간의 실수가 결국 그를 수렁에 빠지게 만들었다.

    김씨는 경기도 평택시의 한 사창가에서 일을 시작했다. 선불금으로 1000만원을 빌려 카드빚을 갚은 뒤 일을 하면서 그 돈을 갚기로 했다. 화대는 손님 한 사람당 6만원. 번 돈은 주인과 반씩 나누게 되어 있어 이론상으로는 ‘환상적’인 돈벌이였다. 하루에 손님 6명만 받아도 한 달에 1080만원을 벌게 되고 그중 540만원은 고스란히 김씨의 몫이 되는 것. 두 달만 일하면 1000만원은 쉽게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니까 각오를 단단히 했죠. 그러나 처음 손님을 받은 날은 정말 죽고 싶었어요. 스스로에게 ‘손님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최면을 건 적도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빨리 돈을 벌어서 이곳을 벗어나야지’라는 생각만 하게 됐어요. “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처음 보름여 동안 김씨가 번 480만원 중 김씨 몫인 240만원에서 방세 명목으로 75만원, 김씨가 3일간 쉬었기 때문에 업소가 피해를 봤다는 이유로(속칭 하이방비) 300만원을 빼앗겼다. 결국 소득보다 빼앗긴 돈이 더 많았던 것. 두 달여가 지나고 보니 처음 빌린 1000만원에 오히려 200여만원의 빚이 더 불어 있었다.

    그러자 포주 M씨는 경기도 파주, 속칭 용주골의 한 업소에 김씨를 팔아 넘겼다. 김씨는 새로운 업소에서 1500여 만원을 선불금으로 빌려 M씨에게 진 빚을 갚았다. 이런 식으로 1년여 동안 5개 업소를 전전했지만 빚은 오히려 2500여 만원으로 늘어났다.

    “이 세계는 마치 늪과 같아요. 빚이라는 늪. 시간이 흐를수록 늪에 빠져 나올 수가 없어져요. 방세, 이자, 하이방비에 옷값, 화장품비, 간식비 등도 우리 수입에서 빼거든요. 솔직히 씀씀이도 커지게 되고… 돈 모으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어요. 빚이 생기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죠.” 회한이 섞인 김씨의 말이다.

    김씨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윤락 여성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윤락행위 등 방지법’ 때문. 제 4조를 보면 윤락행위 자체가 불법이라고 명시돼 있고 이에 따라 윤락 여성들도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가 된다.

    “만약 경찰에 신고하면 나도 똑같이 처벌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포주들은 경찰에 신고하면 결혼도 못하게 하는 등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릴 거라고 협박했어요. 월급을 전혀 못 받아도, 폭행을 당해도 신고하지 못했죠.”

    그런 김씨가 경찰에 신고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12월 초, 청량리 윤락가로 팔려가기 며칠 전이었다. 김씨는 새로운 업소에서 일하기 전까지 자신의 소개를 맡았던 포주 M씨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12월2일 오후 1시경 김씨는 M씨의 남편 S씨(31)와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를 마치고 김씨가 방으로 들어가자 S씨가 따라들어왔다. S씨는 ‘잠깐이면 된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느냐’며 김씨를 성폭행하려 했다. 김씨가 큰소리를 지르며 반항하자 S씨의 딸이 잠에서 깨어나 울어댔다. 그 덕분에 성폭행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 일로 인해 M씨와 S씨는 심한 부부싸움을 벌였고 그 불똥은 김씨에게로 튀었다. S씨는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김씨를 방바닥에 꿇어앉히고 온몸을 마구 때렸다. M씨는 이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지금도 매맞던 순간의 언니 표정을 잊을 수 없어요. 그 일이 있은 뒤 신고하기로 마음을 굳혔지요. 청량리 업소로 옮긴 뒤 같이 일하던 동생이 ‘신고할 경우 피해자 신분이 되기 때문에 윤락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처벌이 매우 미약하다’고 말하더군요. 갚아야 할 돈도 너무 많았고… 그래서 용기를 냈죠.”

    현재 S씨는 강간 미수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태. 그러나 다른 포주들은 모두 불구속 처리됐다. 2500여 만원의 빚도 여전히 김씨의 몫이다. 윤락행위 등 방지법 제 20조에는 ‘영업상 관계있는 윤락행위를 하는 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은 그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이를 무효로 한다’고 명시돼 있어 김씨는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김씨는 청량리 윤락업소 포주에게 공증사무실에서 차용증을 써준 뒤 돈을 빌렸기 때문에 그가 진 빚이 윤락행위와 관련된 것인지 입증할 길이 없다. 또 구속된 S씨와 1650만원에 합의를 보았지만 아직 김씨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갚아야 할 돈도 그대로고 신고했다는 이유로 포주들에게 협박도 받고 있어요. 6개월 안에 2500여 만원을 갚아야 하는데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요. 그래서 요즘은 단란주점을 알아보고 있지요. 솔직히 6개월 동안에 2000만원 이상 벌 수 있는 일이 이런 일 말고 더 있겠어요?”

    김씨는 이제 술집 일이 더이상 낯설거나 두렵지 않다. 불과 1년 사이에 대학생에서 윤락 여성으로 전락한 그녀에게서 일그러진 세태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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