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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국가 비전 없는 코리아

중남미 좌절은 반면교사

지도자들 권좌에 눈멀어 경제 주권 상실 … ‘잔인한 신자유주의’ 해법 마련 시급

  • < 임현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

중남미 좌절은 반면교사

중남미 좌절은 반면교사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한국의 ‘중남미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제3세계의 주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의 산업금융 종속과 자본 해외도피에 따른 경제주권 상실을 빗댄 말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다.

모두 25개 국가로 이루어진 라틴 아메리카 대륙은 찬란한 고대문명과 풍부한 천연자원을 지니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매우 심한 굴곡을 갖고 있다. 이미 15세기 말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의해 거의 300여 년 동안 식민지화되었던 이 지역은 정치적 독립 후에도 유럽, 미국, 일본에 의해 경제적으로 줄곧 예속됨으로써 대부분의 나라들이 지금까지도 부패와 빈곤과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기에 이곳이 바로 ‘해방신학’과 ‘종속이론’의 출생지요, 쿠바혁명과 니카라과혁명의 묘상(苗床)이 되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에서 군사정권에 이어 민간정권이 들어섰지만, 지배층은 여전히 백인계로 원주민이나 혼혈아는 이등시민이고 외국자본이 실질적으로 국내 산업과 금융을 장악하고 있다. 멕시코의 치아파스 농민반란이 상징하듯 지주, 상공인, 외국자본 사이의 과두적 이해로 인해 민중의 삶이 어렵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중남미의 좌절은 바로 국가비전 수립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가르쳐준다. 국가비전이란 현실에 기초한 미래의 발전가치와 전략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하면 그동안 중남미에서는 지도자의 근시안적 권력욕으로 인해 실체와 효용보다 구호와 수사만이 난무했음을 보여준다. 공동선(共同善)을 추구한다는 미명 아래 중남미 특유의 국가유기체적 조합주의(corporatism)를 내세웠지만, 인기영합적인 민중주의(populism)와 대중억압적인 권위주의가 넘나드는 가운데 외채, 부패, 실업의 악순환을 가져왔을 뿐이다.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메넴, 브라질의 바르가스, 멕시코의 살리나스, 칠레의 피노체트, 페루의 가르시아와 후지모리 등이 좋은 보기다. 이들은 나라와 국민을 들먹였지만 사익과 권좌에 눈이 멀어 있었다. 실제 지난 40년 동안 중남미 국가들치고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다. IMF식 구조조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으나, 그 결과는 ‘잔인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o brutal)란 말처럼 대체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오늘의 지구화시대엔 1950년대 전후의 자유주의적(아르헨티나), 국가주의적(멕시코, 칠레), 민중주의적(브라질)인 국가비전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 아무런 여과장치없이 자유화, 민영화, 탈규제를 단행하면서 산업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고 일부 대기업만이 살찌고 노동자들은 실업의 고통에 빠져 있는 실정이다.



극심한 빈부격차, 개혁 시스템 이미 실종

그나마 칠레가 돋보이는 이유는 구조조정을 경제개혁으로 이끌어 감으로써 아르헨티나, 멕시코, 브라질과 달리 금융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요체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시장에 일방적으로 내맡기지 않고 정부가 적절한 개입과 규제를 통해 추진한 데 있다. 대외지향적 발전전략이 종속의 심화보다 경제성장을 유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취의 바탕에 지난날 아옌데 사회주의정권 시절의 지주과두제 해체와 구리광산국유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 극심한 빈부격차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사회개혁의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중남미는 반면교사(反面敎師)다. 신자유주의로는 위기의 불은 끌 수 있지만 불씨를 잡지는 못한다. 21세기를 내다보는 거시적인 국가비전 아래 성장과 복지와 연대를 아우르는 발전가치를 도출하고 신자유주의 발전 전략이 가져다주는 단기적 이익에 급급하기보다 장기적인 폐해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발전전략을 찾아내야 한다. 대안은 없는 게 아니다. 찾지 않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주간동아 2001.02.08 270호 (p15~15)

< 임현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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