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2000.12.07

‘ 찰떡 궁합’보다 ‘DNA궁합’이 우선?

‘결혼 시장’에 유전자 분석 마케팅 등장 … 인권 침해, 반인륜 행위 등 논란 부를 듯

  • 입력2005-06-03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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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찰떡 궁합’보다 ‘DNA궁합’이 우선?
    DNA 분석으로 최적의 결혼상대를 찾아준다.”11월22일 몇몇 일간지엔 다소 짧지만, 결혼적령기 선남선녀의 시선을 잡아채는 기사가 실렸다. 과학적 검증 여부를 떠나 꽤 매력적인 발상이다.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 기발한 상품을 내놓은 업체는 결혼정보회사 ㈜위드(www.withmeet.com). 1만2000여명의 회원을 둔 이 회사는 최근 DNA분석업체인 DNA리서치(www.dnago.com)와의 제휴를 통해 ‘DNA 매칭 프로그램’을 개발, 11월20일부터 서비스에 들어갔다.

    회원 중 신청자에 한해 DNA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상담원(커플 매니저)이 다른 이성 회원의 DNA 정보와 비교, 이른바 ‘커플 조화도’를 따져본 뒤 가장 ‘어울리는’ 상대를 소개해준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요지. 검사항목은 성격, 체질(체력), 지능, 비만, 치매 등과 관련된 유전자 너더댓 가지. 비용은 8만원 선이다.

    일단 검사 의뢰자가 모근이 붙은 자신의 머리카락 3∼5가닥이나 면봉에 묻힌 구강 상피세포를 샘플로 채취해 위드측에 우송하면 3시간 가량의 검사를 거쳐 얻은 유전자 정보를 본인에게 우편이나 이메일로 통보해준다. 이때 유전자 정보가 서로 확연히 다른 남녀일수록 친밀도가 높아 ‘좋은 궁합’이라는 것. 따라서 이런 커플이 결혼해 유전자가 혼합되면 우수한 2세를 낳을 수 있는, 소위 ‘잡종강세’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게 위드측의 설명이다.

    “물론 이 검사가 ‘궁합’의 절대 기준은 아니다. 다만 용모, 학력, 경제력 등 외적 조건에 치중한 배우자감 추천 기준을 보완해 가장 ‘적합한 매칭’을 하기 위한 보조자료는 될 수 있다.” 위드의 하성준 실장은 “DNA 검사로 유전질병 발병확률을 비롯한 ‘나’의 갖가지 신체적 장단점을 바로 알고 미래에 도래할지 모를 ‘악재’를 예방해 자신의 ‘몸값’을 높여보자는 것이 프로그램 기획 취지”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검사 주체인 DNA리서치는 어떤 방법으로 검사를 할까. 우선 성격검사는 인체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인 일명 ‘호기심 유전자’(성격 유전자·DRD4)의 유전적 변이 여부를 PCR법(DNA 종합효소 연쇄반응)으로 분석해 검사대상자의 타고난(미래에 형성될 수도 있는) 성격 즉 흥분성, 충동성, 무질서성 등을 예측한다는 것. 예컨대 변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새로움에 대한 추구성향’이 높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바람기가 많다든지, 도박에 빠지기 쉽다든지, 각종 유혹에 약하다든지 하는 ‘결격 사유’가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체질유전자(ACE) 검사는 체력의 강약 정도를 3개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어 상대의 체력 및 체질 체크에 도움이 된다는 것.

    DNA리서치 김병성 대표는 “이 프로그램은 외국에도 없는 독특한 서비스”라며 “DNA리서치 자체 사이트를 통해서도 회원을 모집중”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그러나 비판의 수위는 높다. 검사 자체의 ‘과학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후천적 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성격까지 유전자로 분석한다? 처음 듣는 얘기다.” 생명공학벤처 ㈜마크로젠의 대표 서정선 교수(서울대 의대)는 “아직 유전자와 행동양식 간 상관관계는 제대로 입증된 바 없다”며 이 프로그램의 과학성을 부정했다.

    아직까지 유전자 정보는 사람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100% 확답을 주지는 못한다고 알려졌다. 단지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이 몇% 정도라는 정보만 줄 뿐이다. 때문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많다.

    유전자 감식업체 ㈜코젠바이오텍의 김종기 박사도 “자칫하면 인간과 환경 간의 연관성을 배제한 채 유전자로 인간 행동양식과 습관을 모두 해석하려는 ‘유전자 결정론’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유전공학의 한 갈래인 ‘행동유전학’의 지극히 지엽적인 ‘주장’일 수 있는 가설을 일반화할 위험이 있다는 것.

    반대론자들의 또 다른 비판은 윤리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설사 이 검사법이 ‘과학적 사실’이라 하더라도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에서 이런 방법이 용인될 경우 적잖은 사회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 유전자 정보를 ‘보조자료’로만 활용한다고 하지만 이를 고스란히 믿고 결혼한 커플에서 각종 가정문제가 생겼을 때 부각되는 ‘책임’의 문제, 질병 발병확률이 높거나 ‘괴팍’한 성격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불량 유전자’의 소유자가 회원 추천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불이익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 박병상 사무국장은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명백히 ‘유전자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다. 이 프로그램을 대중화해 인생의 중대사인 사랑과 결혼문제에 혼란을 야기할 경우 반인륜적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대상자의 유전자 정보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잖다. 위드측은 검사결과를 본인과 상담원에게만 알려줄 계획. 또 샘플 보관을 엄격히 하고 회원 탈퇴나 결혼시엔 반드시 샘플과 유전자 정보를 본인에게 되돌려줄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상담원에 의해 이성 소개의 기초자료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많은 신체적 ‘비밀’이 담긴 DNA 정보가 ‘구전’을 통해 전파될 위험이 상존하는 것은 사실이다.

    ‘ 찰떡 궁합’보다 ‘DNA궁합’이 우선?
    “실명, 직업 등 기본 신상정보가 이미 공개된 개인 유전자 정보는 국내외 생명공학업계가 탐을 낼 만큼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실험자료다. 실제 미국 생명보험회사들은 이를 입수해 보험료 책정에 반영할 정도다. 체계적 관리가 어려운 상태에서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다는 것은 ‘위험한 장난’에 불과하다.” ㈜코젠바이오텍 윤요셉 이사의 지적이다.

    그는 “유전자 감식업체에서도 의뢰자의 모든 정보는 보안유지가 필수”라며 “샘플 및 검사정보가 당초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의뢰자와 업체간 각서를 교환하고 가명의 의뢰자에겐 코드번호(일종의 암구호)를 부여해 이를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정보가 철저히 관리된다 하더라도 ‘DNA 매칭 프로그램’은 ‘얄팍한 상술’을 노리고 있다는 근원적 비판에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은 친자확인 등 각종 DNA 분석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DNA리서치측의 사전포석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업영역 확대를 위해 여러 결혼정보회사와 사주궁합을 주로 봐주는 점술인들과의 제휴도 모색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면 신종 사업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에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

    “유전자 정보를 당사자 동의 없이 유통시킬 경우엔 문제가 된다.” 과학기술부 생명환경기술과 관계자는 “그러나 현행법상 유전자 관련산업에 대한 규제조항은 없다. 보건복지부의 ‘유전자재조합실험지침’이 있긴 하지만 이는 처벌조항이 없는 그야말로 ‘지침’일 뿐”이라고 답했다. 과기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도 최근에서야 생명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인권-윤리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단계다. 사실 각종 행사에서 이벤트성을 중시해온 결혼정보업계의 특성상 이번 프로그램도 이벤트 색채가 짙은 ‘흥밋거리’ 정도로 바라볼 순 있다. 그러나 이를 가볍게 넘기기 힘든 까닭은 이벤트의 수단이 개인의 유전적 프라이버시가 고스란히 담긴 DNA이기 때문이다. 11월23일 현재 DNA 검사를 신청한 회원은 아직 없다. 그러나 위드측은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검사를 희망하는 회원이 많았다. 우선 위드 직원부터 먼저 검사를 해볼 예정”이라며 본격적인 홍보전략을 펼치고 있다.

    위드의 ‘유전자 마케팅’은 성공할까. ‘21세기에 맞는 신선한 발상’과 ‘생명공학기술의 상업적 변용’이란 극단적 평가 속에서 신세대들이 과연 서슴없이 ‘머리카락을 뽑을’ 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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