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2

2000.12.07

산성비보다 더 치명적인 ‘산성 안개’

오염물질 대량 함유 체류기간 길어…석조문화재 피해 최소화 위한 연구 필요

  • 입력2005-06-03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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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성비보다 더 치명적인 ‘산성 안개’
    산성비가 문화재에 해를 입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산성비는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등이 빗물에 섞여 황산, 질산 등으로 변해 수소이온농도(PH)가 5.6 이하인 빗물을 말한다.

    그러나 산성비가 문화재에 얼마만큼의 해를 입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조사된 바가 없다.

    따라서 뚜렷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문화재 당국자들이 주력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11월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문화재 보존환경 공동연구’ 발표회에서도 문화재 전문가들의 이런 고민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날 발표회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일본 도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995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진행했던 1기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산성비 등 환경요인이 문화재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 공감해 이루어진 연구였다.

    이날 세미나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조유전)는 “1기 실험 결과 대리석은 실외가 실내보다 7.7배 빨리 부식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철재 등은 기간에 따라 부식 정도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광화문 국립중앙박물관 옆 연구소 옥상과 탑골공원, 불광동 국립환경연구원 등 세 곳에 시험대를 설치해 1년여 동안 노출 시험을 실시한 결과다.



    한일 양국은 2005년까지 진행될 2기 연구에서는 △석조 및 금속 문화재의 손상원인 규명과 대책 △측정 시스템의 개발 △환경측정법 확립 등에 주력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경복궁과 강화도 등, 일본은 히로시마와 닛코 등에 있는 문화재가 대상이다. 한일 양국은 앞으로 중국까지 포함해 연구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도 올 4월부터 경주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 주변에 산성비 영향 측정을 위한 장치를 설치하고 독자적으로 실험을 진행중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내부에 산성우(酸性雨) 측정기를 들여놓고 인공으로 산성비를 만들어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두 곳의 조사 결과가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환경부는 전국 30개 도시, 58개 지점 측정소에서 산성비를 측정해 문화재 관련기관에 제공하는 등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산성비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환경부가 민주당 박인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표’ 참조)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울 등 전국 6대 도시에 내린 비의 62.5%가 산성을 띤 것으로 나타났다. 수소이온농도(PH)는 평균 5.2(산성비 기준은 PH 5.6). 환경부 측정 결과 94년에는 전국 6대 도시에 내린 비의 50%가 산성이었다. 94년 당시 평균 PH는 5.8.

    이처럼 갈수록 산성비가 심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산업시설 및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매연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매연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 등이 빗물과 만나 산성비가 돼 쏟아지는 것.

    중국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아황산가스는 연간 30여만t이나 되는 규모로 알려졌다. 중국은 환경문제를 5대 국책과제 중 하나로 책정하고 예산의 1%를 환경 분야에 투입했지만 베이징 등 8개 도시가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 10대 대기오염 도시’에 드는 불명예를 안았다. 환경기술개발연구원은 “우리나라에 내리는 산성비 원인의 30%는 중국에서 흘러오는 대기오염물질 때문”이라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산성비 문제에 공통의 이해가 걸린 한중일 3국은 올 초 베이징에서 환경장관 회담을 열고 산성비 및 장거리 이동 대기오염물질 조사 등 9개항에 합의하는 등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일부 문화재 전문가들은 “산성비보다 더 심각한 것이 산성안개인데 이것이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환경부가 인터넷에 올린 자료에도 “산성안개는 오염물질을 다량 함유할 가능성이 크며 체류 기간이 길어 산성비보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고 돼 있다. 외국과 달리 안개 발생이 잦은 우리나라의 경우 특별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산성비 등 대기오염과 관련해 문화재에 대해 가시적인 보존조치를 취한 것은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국보 41호)의 경우가 처음이다. 1999년 6월이었다. 차량 통행이 잦아 매연 배출이 많은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위치한 이 철당간은 환경오염에 의한 훼손을 미리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청주시가 발주해 보존조치가 이루어졌다.

    보존처리를 담당했던 호암미술관 부설 문화재보존연구소 이오희 소장은 “보존처리 중 자동차 매연 등 환경오염 물질이 유물 표면에 상당 부분 묻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철은 대부분의 경우 산성물에 매우 취약하며 특히 습도가 높은 곳에서 부식이 쉽게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대전대 환경공학과 박태술 교수)도 나와 있다.

    용두사지 철당간에 이어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2호)도 99년 12월 말 산성비와 비둘기 배설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투명 유리로 보호각을 씌우는 보존조치가 내려졌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하고 있는 경천사지 10층 석탑(국보 86호)은 산성비 대비 차원에서 2003년 용산에 완공되는 새 국립중앙박물관 실내로 옮길 예정이다. 이 두 석탑은 재질이 대리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리석은 본질적으로 석회암과 생성 유래가 같아 화강암에 비해 산성비에 더 취약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석조문화재의 대부분은 특별한 보존조치 없이 야외에 그대로 방치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이명희 보존과학실장은 “탑은 화강암이 많지만 비석의 경우 대부분 대리석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김수진 교수는 “많은 수의 석조문화재가 손톱으로 긁으면 긁힐 정도로 약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비석에 새겨진 글씨도 못 알아볼 정도로 훼손되고 있다”고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호암미술관 이소장은 “90%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석조문화재는 겉으로 봐서 별 문제가 없어 보여 그동안 등한시돼 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전문가들은 “산성비의 피해에 대한 종합조사를 벌여 중요한 문화재부터 보호각을 씌우거나 별도 보존처리를 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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