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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세상이 공평해지려면

세상이 공평해지려면

세상이 공평해지려면
하루아침에 ‘세기적’ 놀림감이 되고 말았지만, 미국 헌법이 그리 허술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200여 년 전 신생 독립국 미국의 정초(定礎)를 닦은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그들 나름대로 합당한 논리와 치밀한 계산 아래 지금과 같은 정치 제도를 창출해냈다. 헌법을 개정해서 대통령 선출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기는 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제퍼슨을 비롯한 해밀턴, 매디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은 여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상이나 철학에서도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새 공화국이 파벌 싸움에 휘말려들지 않을 정치 원리를 고안하느라 부심했다. 파벌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신 어느 특정 세력이나 집단 또는 개인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자. 이 바탕 위에서 무한 경쟁을 자유롭게 펼쳐나가도록 하자.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다원주의(pluralism) 원리였다. 미국이 오늘날까지 전대미문의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를 이러한 정신적 유산에서 찾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게 만든다. 소수의 유명 가문들이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말만 자유경쟁이지 실제로는 ‘귀족정치’가 부활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형제가 나란히 대통령이 될 뻔했던 케네디 가문이야 또 그렇다 치자. 부시 가문은 어떤가. 할아버지가 상원의원, 아버지가 대통령을 지냈고, 이제 본인도 대통령이 ‘거의’ 된 셈이다. 거기에다 동생까지 주지사를 맡고 있다. 고어도 만만치 않다. 아버지가 이미 상원의원을 역임했고 그 밑에서 착실하게 ‘대통령 수업’을 받아왔다고 한다. 클린턴은 어떤가. 이번에 힐러리가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벌써 2004년 대통령 출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만일 호사가(好事家)들의 추측대로 부시-클린턴-부시-Mrs.클린턴 순으로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 역사는 완전히 새로 쓰여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미국 사람들은 능력 제일주의를 내세운다. 다양한 검증 과정을 거쳐 능력이 인정된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커 나갈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당하게 가문의 덕을 보아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손해를 보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능력만 있으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부시는 선대의 은덕을 입어 벼락출세 한 것이 아니냐는 사시(斜視)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능력 때문에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지 집안 덕을 본 것은 아니라고 기회가 날 때마다 역설했다. 미국 유권자들도 그 주장에 동조한 모양이다. 그러니 그 정도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미국 대선 결과 ‘귀족정치’ 부활의 신호탄?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인생 설계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 후 불과 10여 년 만에 ‘세계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을 만큼 부시는 비범한 인물이었을까. 힐러리가 똑똑한 여성이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안다. 그러나 과연 힐러리 뒤에 대통령 남편이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도 차기를 꿈꾸는 것이 가능했을까.

카를 마르크스는 ‘능력에 따른 분배에서 필요에 따른 분배’를 노래했다. 그러나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일단은 능력에 따라 몫이 돌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 그래야 ‘빽’도 없고 기댈 데도 시원치 않은 절대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춥고 배고프다고 해서 신데렐라 신세를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허망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니 ‘대를 이은’ 영광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가 뭔데?’라는 반발심리,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공평해진다.



주간동아 2000.11.23 260호 (p106~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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