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8

2000.11.09

한국농구 ‘고공시대’연 대선수의 은퇴

  • 입력2005-05-26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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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농구 ‘고공시대’연 대선수의 은퇴
    황새는 첫 인상이 별로 좋은 편이 못된다(필자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깔끔하게 생긴 외모와 흰 피부가 둥글둥글하고 원만한 인상보다는 신경질적인 느낌을 먼저 준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이 ‘스타는 도도하다’는 속설과 어우러지며 처음 대하는 사람은 쉽게 말을 붙이지 못하게 만든다. 거짓말을 못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때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깐깐한 황새’ 김유택(37·부산기아)에 대한 이런 느낌은 사실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예전에는 사실이었다. 서랍의 물건 하나도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할 정도로 생활 모든 것이 깔끔했다. 성격도 짜증이 많은 편이라 ‘군기가 센’ 옛날에는 후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함께 대표팀 생활을 한 서장훈(26·청주SK)은 “(김)유택이형에게 잘못 걸리면 죽었죠. 워낙 농구도 잘했기 때문에 후배들은 ‘찍소리’도 못했고요”라고 술회했다.

    플레이스타일도 꼼꼼한 성격을 반영해 힘과 높이가 판을 치던 당시의 농구계에 ‘기술센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그다. 단순히 키(본인은 정확히 맨발로 1m97.8 이라고 설명)만 큰 것이 아니라 한국농구의 골밑 플레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완벽했다.

    10월26일 황새가 20년의 현역생활을 접고 은퇴했다. 어떠한 수식어로도 부족한, 한국농구의 고공시대를 연 대선수가 코트를 떠난 것이다.



    그날 저녁 황새와 함께 가볍게 술을 한 잔 했다. 선수로서는 마지막이었고 지도자로서는 첫 술잔이었을 것이다.

    사실 농구기자를 시작하고 3년이 넘도록 김유택 선수와는 별다른 친분이 없었다. 필자의 잘못이 크다. 위에서 언급한 황새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선뜻 다가서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중 2년 전 우연히 합석하게 된 저녁식사가 계기가 돼 많은 얘기를 나눴고 이후 생일까지 챙겨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다.

    재미있는 것은 필자가 그를 알게 됐을 때부터 그에 대한 주위의 평가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유택이형이 정말 많이 변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프로 최고령 선수(현재까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나이까지 코트를 누빈 선수다)에, 플레잉 코치가 되면서부터 자신보다는 남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주변에 사람들(특히 후배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코트를 떠나는 지금 그가 더 이상 예전 같은 ‘외로운 황새’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시종 끊이지 않는 웃음 속에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옛이야기가 술안주로서의 효력을 다할 무렵 황새가 마치 유언을 하는 것처럼 인사말을 남긴다.

    “정말 허전해. 예전엔 사람들이 내게 먼저 다가왔지만 이젠 내가 다가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우리 아들들이 나중에 ‘김유택은 농구뿐 아니라 사람농사도 성공했다’는 말을 듣게 해주고 싶어.”

    용병센터들이 판을 치며 국내 정통 센터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황새를 위해 멋진 고별사를 하나쯤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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