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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텔레비디오 황규빈 회장

“첨단 비즈니스 25년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실리콘 밸리는 여전히 기회의 땅”

“첨단 비즈니스 25년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첨단 비즈니스 25년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내가 자랑할 건 25년 동안 망하지 않고 버텼다는 것, 25년 동안 첨단 비즈니스 분야에서 메인테인(Maintain) 했다는 거 그거야.”

그의 나이 벌써 64세, 우리 나이로 치면 65세다.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 머리도 많이 벗겨졌고 주름살도 늘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아직도 힘차고 낭랑하다. 호탕한 웃음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황규빈.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텔레비디오(Televideo)의 회장. 1998년과 99년에는 실리콘밸리 한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활약하기도 한, 이 지역 한인 사업가들의 정신적 지주.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까지만 말하면 그가 누구인지, 텔레비디오는 어떤 회사인지 아는 사람이 국내에는 별로 많지 않다. 그만큼 황회장은, 그리고 텔레비디오는 과거의 인물, 과거의 기업이 돼 버렸다. 그 주인은 여전히 팽팽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고 회사 또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에서의 지위는 미미할 정도로 영락해 버렸다.

적어도 40대를 넘은 이들은 황회장을, 그리고 텔레비디오를 안다. 80년대 중반까지도 하나의 ‘신화’였던 인물, 그리고 기업. 황회장과 텔레비디오는 실리콘밸리에서, 더 나아가 미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한국인의 표상이나 다름 없었다.



“1964년, 유학생으로 처음 미국에 건너왔지. 당시 50달러 이상은 외화로 바꿔주질 않았기 때문에, 주머니엔 달랑 50달러밖에 없었어.” 감회어린 그의 표정. “아, 어려웠어요. 엄청나게 어려웠어요. 여름철에는 레이크 타호의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돈을 벌었지. 하지만 그게 사업할 때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

텔레비디오는 1975년에 세웠다. 단돈 9000달러로 시작한 사업. 일종의 모니터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용 터미널이 사업 품목이었다. “물론 처음엔 어려웠지. 한 2년씩 월급 못준 적도 있어. 하지만 50달러에 대한 기억이 늘 힘이 됐지. 어려울 때면 늘 그렇게 생각했어. 까짓거, 밑져봐야 50달런데, 아니면 9000달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결정도 잘 되더라구.”(너털웃음)

터미널 시장의 급부상과 함께 텔레비디오도 ‘떴다’. 1983년 미국 주식시장에 나가 1억달러를 증자했다. 당시로서는 가장 큰 규모였다. 포천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이 앞다퉈 황회장의 성공을 대서특필했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가장 대표적인 아시아인이었다.

그러나 텔레비디오는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터미널 사업에만 매달린 것이 패착이었다. PC가 등장하면서 단말기 시장은 급속히 위축됐고, ‘어어’ 하는 사이에 PC는 어느덧 워크스테이션마저 대체하기 시작했다. PC에 모니터가 딸려 있는데, 굳이 터미널을 살 이유가 없었다. 매출은 하락에 하락을 거듭했다. 순식간에 한창 때의 10분의 1도 안되는 수준까지 추락했다.

황회장이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25년 중 10년은 엄청나게 잘했지. 그러다가 3, 4년은 현상 유지했고, 지난 10년 동안은 정말 엄청나게 고생했어. 하지만 50달러로 시작한 일 생각하면서 버텼지. 요즘 벤처들마냥 처음부터 큰돈 받아 시작했다면 아마 옛날에 다 털고 나갔을 거야.” 그는 돈보다 비즈니스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노라고 말한다. “주식시장에서 증자한 돈을 잘 모아둔 게 큰 도움이 됐지. 그 이자로 몇 년을 버텼어. 부동산 처분하면서도 유지비 마련했고… 그동안, 어떻게 하면 어려움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배운 셈이지.”

믿었던 조국도 그를 배신했다. 한국에 2600만달러를 투자해 컨트롤데이터(CDC)를 샀으나 88년의 대규모 노조파업으로 결국 고객도 빼앗기고 회사도 문을 닫고 만 것. “2600만달러가, 나중에 보니 1100만달러가 돼 있더군. 1500만달러를 날린거야. 그래도 그 돈 갖고 또 버텼지… 그게 비즈니스야.”

그는 요즘 새로운 희망에 들떠 있다. 완전히 죽은 것으로 여겼던 터미널 시장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데다,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템을 찾아 ‘제2의 도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어떤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면 한 20년 가더군. 그게 한 사이클이야. 터미널 시장도 마찬가지지.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아, 20년 지나고 보니 다시 뜨는 거야.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터미널 덕택에… 참 나, 그새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터미널 회사들은 다 사라져버렸지. 마이크로소프트가 ASP 비즈니스를 실험하면서 터미널을 찾다보니 우리밖에 안남은 거야. 참 기막히지.”

그러나 그가 더욱 관심을 갖는 분야는 자동차 전장품 시장이다. 터미널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자동차라니, 이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하지만 텔레비디오는 이미 이 시장에 깊숙이 진출해 있다. KNT텔레콤, 알파테크놀로지 등 한국의 두 기업을 인수했고, 미국에 있는 프라미스(Promise) 엔지니어링도 사들였다.

황회장이 이러한 기업 사냥으로부터 노리는 것은 GPS(인공위성 자동 위치측정 시스템)와 음성인식 시스템, 무선 등을 결합한 새로운 시장이다. KNT텔레콤과 알파테크놀로지는 음성인식 기술과 핸드프리(Hand-free) 전화 송수신 솔루션, 자동차의 쌍방향 보안-경고 장치 등을 가진 기업들이다. 그중 쌍방향 보안-경고 장치는 단순히 자동차 시동을 걸게 해주는 일방향 무선장비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예컨대 주차해둔 자동차의 오른쪽 유리를 누가 깼다면 휴대용 무선 송신기에 해당 부위가 표시되면서 경보가 울린다. 또 차가 도난당했을 경우 신호만 보내면 GPS 센터로 연락되어 해당 자동차가 어디에 있는지 즉각 찾아낼 수 있다(이 경우 사전에 GPS 센터와 계약이 돼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신호는 무선으로 교신된다.

“교통체증이 늘면서 도시민들이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점점 늘고 있지. 그만큼 자동차의 ‘모바일 오피스’로서의 기능도 커지는 거고… 이번에 개발한 핸드프리 전화의 부가기능은 단순히 목소리를 인식해 전화를 걸어주는 데 그치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로 불러주는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를 자동으로 녹음하는 기능도 있지. 운전하는 중이면 메모할 수 없지 않아? 그 기술은 특허를 내놓았지. 연간 600만개, 5억달러어치를 수출할 계획이야.”

그간 ‘살아 남기’ 위해 분투한 이야기를 할 때는 다소 침울하던 그의 표정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더욱 높아졌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 같은 데서는 20초마다 자동차가 한 대씩 없어져. 누가 훔쳐가는 거야. 그러니 우리가 개발한 제품의 시장성은 무궁무진한 거지.”

그는 60을 훨씬 넘긴 나이에,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지. 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 돈 버는 것보다, 비즈니스가 재미있어. 아마 평생 이 바닥을 못 떠날 거야.” 그의 얼굴이, 문득 패기만만한 20대로 보였다.



주간동아 2000.10.12 254호 (p8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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