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0

2000.09.07

여성 전용 사이트, 들끓는 性 이야기

성적 불만 표출·섹스 예찬 등 거침없는 말 퍼붓기…전문가 상담코너까지 등장

  • 입력2005-06-15 10: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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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전용 사이트, 들끓는 性 이야기
    “남편이 성관계를 안하려고 한다. 에로 비디오나 야한 사진에 푹 빠져 있다. 사정 사정해야 겨우 할까 말까다. 적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해야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야한 비디오를 보면 남편은 이상하게 생각한다. 남자들은 온갖 짓 다 하면서… 그 이중성에 구역질이 난다.”

    “남편은 야한 비디오를 즐겨 본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다 야릇한 눈길을 보낸다. 정말 짜증난다. 난 싸구려 비디오 속 여자가 아니다.”

    이른바 ‘여성 전용’(혹은 여성 전문) 사이트에 여성들의 성담론이 넘쳐나고 있다. 여성 네티즌 인구가 급증하면서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만의’ 인터넷을 표방하는 여성 전용 포털사이트가 속속 등장한 결과의 하나다. 사이버 공간이라는 익명성으로 인해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

    ‘사이버 여성천국’을 꿈꾸며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선 사이트는 지난해 6월 최초로 문을 연 아이지아(izia. com)를 비롯해 마이클럽(miclub.com) 우먼(woman.co.kr) 우먼플러스(womenplus.co.kr) 마이홈(myhome. shinbiro.com) 홈노트(homenote. co.kr) 아줌마(ajumma.co.kr) 수다넷(sudanet.co.kr) 등이 있다.



    사이트 문을 들어서면 패션-인테리어 등의 최신 정보부터 다이어트 요리 미용 자녀교육 재테크 증권 창업 취미생활 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유익하고 즐거운 정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빠짐없이 눈에 띄는 것이 ‘성’과 관련된 정보다. ‘러브’ ‘성(sex)이야기’ ‘섹스와 로맨스’ ‘섹스 가이드’ 등의 제목으로 다양한 성지식과 최근의 성문화를 풀어내고 있는 것. 이런 사이트들 가운데는 “여자도 남자처럼 성을 누리고 즐길 권리가 있다” 등 솔직한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놓는 게시판이 적지 않다. ‘성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등식은 최소한 이곳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성에 대한 여성들의 생각과 의식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은 비밀스런 이야기가 오가는 게시판이나 채팅 코너다. “성의 기쁨을 느끼고 싶다. 어떻게 해야 감각을 개발할 수 있는지…” “남자 친구가 오럴(섹스)을 원하는데 왠지 거부감이 든다” “우리 남편은 정상위밖에 모른다. 다양한 체위로 하고 싶은데…” “남편 이외의 사람과 관계를 가질 때는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하고는 영 안 된다” “아무데 가서나 바지 벗는 남편과는 함께 살 수 없다” “왜 남자들만 여자를 갖고 노나. 나도 바람둥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여자도 그럴 수 있지 않나”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까. 약혼자와 또 다른 남자 친구 둘 다 헤어지기 싫다” 등등. 그 발언 수위는 한껏 올라가 있다.

    이처럼 적나라한 성담론이 오가는 코너나 채팅방은 남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여성 회원만 이용토록 해 ‘물관리’에 나서는 곳도 있다. ‘물관리’의 표적이 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 남성이다. 삐딱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노골적인 질문을 퍼붓는 남자, 엉큼한 마음을 품고 들어오는 ‘헌팅맨’ ‘여장남자’(여성 ID를 빌려 여성인 체하는 남자) 등이 그들.

    이런 부류의 남성들은 십중팔구 ‘왕따’당하거나 내쫓기고 ‘화장실’에 처박히기도 한다. 흑심을 품은 글이나 짓궂은 내용의 글을 게시판에 올렸다간 어김없이 사이트 한편에 마련된 ‘화장실’ 코너로 던져져 악취를 마셔야 하는 것. 대신 진지하고 매너 있게 접근하는 남성이라면 여성 특유의 친절로 여러 가지 궁금증을 풀어준다.

    한편 공개적으로 성 토론을 벌이거나 성에 대한 주장을 펼치는 곳도 있다. “섹스는 생활의 활력소다. 남녀 서로 즐겨야 한다”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 “섹스는 몸으로 느끼는 의사소통 방법이다” “남자들만 에로 비디오를 즐기란 법은 없다” “부부간에도 원치 않는 강제적 성관계는 폭력이다” 등의 주장들이 주류를 이룬다.

    ‘첫 생리와 첫 사정의 차이점’이라는 제목으로 ‘첫사랑’이라는 ID를 쓴 네티즌이 올린 글은 신랄함마저 엿보인다. “여자가 첫 생리를 시작하면 어른이 되었다는 신호로 여겨 부모의 축하를 받고 첫 경험에 놀란 가슴을 따뜻하게 보살핌 받으며 부드러운 안도의 시간을 보낸다. 반면에 남자가 첫 사정을 하면 음흉한 늑대가 되었다는 신호로 여겨져 절대 부모에게 들키지 말아야 하고, 난생 처음으로 밤중에 몰래 숨죽여 팬티를 빨래하는 경험을 한다. 여자가 비키니를 입고 백사장에 엎드려 일광욕을 하고 있으면 살짝 다가가 오일을 발라주고 싶다. 반면에 남자가 그렇게 하고 있으면 똥침에 대한 강력한 욕구로 파라솔 기둥을 바라보게 된다.”

    여성 전용 사이트인데도 남녀 네티즌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환영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성폭력, 성차별, 여성과 남성의 성심리, 잘못 알고 있는 성지식 등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남녀 갈등 문제 또는 성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코너다. 또 의사나 상담위원 등 전문가가 진행하는 성 상담 코너, 성과 관련한 질의-응답 코너 등이 남성들의 출입제한 해제 구역이다.

    대표적 여성전문 사이트인 ‘우먼플러스’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여성 회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가운데 몇몇 조사는 최근 여성들의 성의식 단면을 잘 보여준다.

    “남자 친구가 있는 당신에게 꿈에 그리던 이상형 남자가 프로포즈해 온다면?”이라는 질문에 응답한 네티즌 수는 총 644명. 이 가운데 461(72%)명이 “일단 한번 만나본다”고 대답했다. “아주 마음에 드는 남자가 첫 데이트 때 섹스를 요구한다면?”이라는 질문에는 1550명이 응답했다. 응답자 중 646(42%)명은 “거절한다”고 한 반면, 461(30%)명은 “응한다”고 대답했다. “영화 속 섹스 장면을 보면 흉내내고 싶은 충동이 생기나?”라는 질문에는 응답자 299명 중 254(85%)명이 “한번쯤 해보고 싶다”고 대답했고, 29(10%)명은 “해보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다. 점차 대담해지고 있는 여성들의 성욕구를 읽을 수 있다.

    우스갯소리나 유머 코너에는 ‘고개 숙인 남자’들을 섬뜩하게 만드는 글이 종종 발견된다.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남편은 돈 못 벌어오는 남편이 아니라 밤일을 제대로 못하는 남자다” “결혼한 여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서운 게 없어진다. 특히 남편이…. 결혼한 남자 역시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서운 게 없어진다. 마누라 빼고….”

    뿐만 아니라 “여성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기득권을 가진 만큼 변화를 두려워하고 도무지 변화를 내켜하지 않는다”며 남성들의 의식 전환을 촉구하는 메시지도 눈에 띈다. 지금 여성 전용 사이트에서는 “성차별을 타파하자” “성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육체 언어다” “세상을 다 바꿔!”라는 외침이 뜨겁다. 분명 인터넷은 여성들의 성의식까지 바꾸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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