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0

2000.09.07

알짜 사업 덥석덥석 … '식욕'좋은 LG

IMT-2000·위성방송 사업권 사실상 확보…정보통신시장 탈환 부푼 꿈

  • 입력2005-06-14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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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짜 사업 덥석덥석 … '식욕'좋은 LG
    본격적인 몸집 부풀리기? LG가 최근 들어 정보통신 분야 신규사업에 진출하고 공기업 인수를 추진하는 등 왕성한 ‘식욕’을 과시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LG가 21세기 성장산업으로 평가받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 불리기를 가속화하자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김대중 정부 들어 가장 큰 실속을, 그것도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으로 챙긴 그룹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상도 기업’인 LG”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LG의 막대한 투자계획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LG반도체 및 기아자동차 인수, 금강산 관광사업 독점 추진 등으로 한때 재계의 부러움을 사던 현대는 구조조정을 등한시하고 몸집만 불리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소문난 잔치’치고는 현대가 챙긴 게 별로 없었던 셈이다.

    어쨌든 LG의 현 상황은 김대중 정부 전반기와는 전혀 딴판이다. LG는 반도체 빅딜전쟁에서 반도체 사업을 현대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당시 LG는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 반도체 사업을 ‘뺏겼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경련 고위관계자는 “LG가 빅딜을 주도했던 전경련을 믿지 못한 결과 반도체 실사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은 게 불리하게 작용했을 뿐 정부 ‘압력’과는 상관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대주주 일가, 지분 처리로 횡재

    LG는 올해 들어 구본무 회장 등 대주주 일가까지 횡재했다. 이들이 보유한 비상장 계열사 지분을 LG화학 등 상장 계열사에 ‘고가에’ 처분하면서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하게 된 것. LG측은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 작업을 하기 위해 정당한 가격평가를 거쳐 거래했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에서는 회사의 이익을 대주주에게 유출시킨다는 비난이 거세게 일면서 LG화학 등 상장 계열사 주가가 추락했다.



    현재 LG가 확보한 21세기 성장산업은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과 위성방송 사업권. 두 사업 모두 국민의 정부 최대 이권사업으로 일컬어진다. LG는 한국전력 자회사인 인터넷 기간망 회사 파워콤 지분 30%를 매각하는 입찰에도 참여, 파워콤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데이콤을 자회사로 편입했고, 하나로통신 최대주주인 LG가 파워콤을 인수하면 시내-외 및 국제전화, 무선통신, 그리고 통신망까지 갖춘 명실상부한 종합통신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LG는 그룹 정보통신 부문의 사활이 걸려 있는 IMT-2000 사업권을 의외로 ‘싱겁게’ 따냈다. 8월19일 한국IMT-2000컨소시엄이 해체의사를 밝히면서 치열한 사업권 획득 경쟁 없이 거저 손에 넣은 것이다. IMT-2000 사업자 선정 경쟁에 뛰어든 업체는 한국통신 SK텔레콤 LG 등 모두 세 곳. 정부가 올해 말 3개의 IMT-2000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어서 이들은 모두 사업권을 획득하게 된 셈.

    10월 중 사업자를 선정하는 위성방송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위원회는 국내 시장 규모에 비춰 단일 사업자에게 위성방송 사업권을 주되 한 기업이 사업권을 독점하는 것은 막는다는 입장. 이에 따라 현재 사업자 선정 경쟁에 뛰어든 한국통신 LG 일진 등 3개 컨소시엄에 단일 그랜드 컨소시엄 구성을 종용하고 있어 LG는 어떤 식으로든 위성방송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현재 LG의 위성방송 사업은 계열사인 데이콤의 자회사 DSM이 맡고 있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이효성 교수는 “사업 취지나 목적에서 공감대가 없는 이질적 사업자들이 섞여 컨소시엄의 효율성이 떨어지며 사업자가 훨씬 안이한 자세를 갖게 된다”고 우려하면서 비교심사 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통신 관계자도 “각 컨소시엄이 구상하고 있는 경영구도나 사업계획이 다른데 방송위가 일방적으로 단일 그랜드 컨소시엄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업자 선정에 따른 특혜시비 등 정치적 부담을 무조건 피하고 보자는 ‘무소신 무원칙’ 행정 때문에 LG가 위성방송에 손쉽게 진출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한국통신의 이런 입장은 비교심사 평가 방법으로 사업자를 선정할 경우 1등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재벌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표출하고 있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LG의 경우 작년에 위성발사에 실패한 반면 한국통신은 무궁화위성이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라고 자신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문제는 단일 그랜드 컨소시엄을 형성해 위성방송 사업을 하게 됐을 때 LG가 과거 위장 지분 등을 통해 데이콤을 야금야금 삼켰듯 언젠가는 이 컨소시엄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덧붙였다.

    IMT-2000 사업은 LG에 ‘꽃놀이패’나 마찬가지라는 게 업계의 평. 현재의 무선전화 시장구도를 뒤엎을 수도 있고, 부호분할 다중접속(CDMA) 단말기 1위 업체인 삼성전자까지 넘볼 수 있기 때문. 잘 알려진 대로 LG는 김영삼 정부 시절 PCS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더욱이 국민의 정부 들어 이동통신업계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외돼 현재 PCS 3사 가운데 가장 왜소한 모습.

    그러나 IMT-2000 사업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LG는 일찍부터 IMT-2000 사업 기술 표준으로 비동기식을 채택했다. LG전자와 합병 예정인 LG정보통신에서 오래 전부터 비동기식 IMT-2000 단말기 기술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왔기 때문. 잘 알려진 대로 비동기식은 현재 전세계 시장의 80%를 점하고 있어 국제 로밍의 범위(한 단말기로 통화할 수 있는 국가의 범위)가 동기식보다 넓은 게 장점.

    문제는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의 입장. 50% 이상의 국내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SK텔레콤은 초기 투자비가 적게 든다는 이유로 동기식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자 LG는 한국통신과 같이 비동기식의 장점을 부각시키면 SK텔레콤을 IMT-2000 사업에서만큼은 따돌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두 회사 사이에서는 공동망 설립 등 협력 방안에 대해 상당히 깊숙한 얘기가 오갔다.

    그러나 뒤늦게 SK텔레콤이 비동기식으로 선회하면서 이런 구도는 깨져버렸다. 업계에선 한국통신의 대주주인 정부가 동기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한국통신이 동기식으로 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통신 고위 임원은 “SK텔레콤이 애초 생각대로 동기식을 채택했다면 IMT-2000 사업은 볼 만한 게임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LG로서는 SK텔레콤이 비동기식을 채택한다고 해도 손해볼 게 없는 게임이다. 뒤늦게 뛰어들어 고전했던 PCS 사업과는 달리 비동기식 IMT-2000사업은 어차피 LG나 SK텔레콤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하기 때문. 여기에 SK텔레콤이 비동기식을 채택할 경우 CDMA 단말기 세계 1위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는 오른팔을 잃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LG전자로서는 차제에 비동기식으로 삼성전자를 꺾어보자는 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것이다.

    LG가 걱정하는 것은 한국통신과 SK텔레콤이 모두 동기식을 채택할 경우. 이렇게 되면 비동기식을 채택하는 LG만 고립돼 여러 측면에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업계에선 LG가 고립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자금이다. LG는 당장 8월 말까지 전자와 정보통신 합병에 따른 주식매수 비용으로 1조122억원을 지불했다. 정보통신 전체 발행주식의 38.6%에 해당하는 주주들이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당초 5000억~6000억원대를 예상했던 LG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9월로 예정된 파워콤 2차 입찰에서 20% 이상의 안정된 지분 확보를 위해서는 최소 1조40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룹의 사활이 걸린 IMT-2000 사업은 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초기 자본금 3000억원으로 내년 1월 설립될 IMT-2000 컨소시엄(가칭 LG글로콤)에 LG는 최대주주(지분 50%)로 참여하기로 결정한 상태. 따라서 LG가 부담할 초기 자본금은 1500억원. IMT-2000 컨소시엄의 경우 자본금 1조원 정도는 돼야 사업을 제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고 보면 LG는 자본금만 해도 50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출연금 1조원에 대해 LG의 지분 비율만큼 부담한다고 할 경우 5000억원의 현금이 필요하다. LG가 2, 3년 내에 확보해야 할 자금은 3조원 안팎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내년 4월부터는 30대 대기업의 과다한 업종 다각화에 따른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계열사 및 타법인 주식 소유를 순자산의 25%로 제한하는 출자총액 제한 제도가 도입된다. 1년간의 유예 기간을 주긴 하지만 LG가 해소해야 할 초과 출자총액은 올 4월 말 현재 1조6000억원에 이른다. LG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인 셈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LG가 신규사업에 진출해 출자액이 더 늘어날 경우 1년의 유예기간을 주더라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김대중 정부가 재벌 개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제력 집중 완화 정책에 상관없이 확장 의욕을 불태우는 LG의 행보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증권가에 LG의 ‘자금난 소문’이 돈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고 덧붙였다.

    LG는 이에 대해 신규사업에 대한 초기 투자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 출자총액 초과분에 대해서도 △비주력사업의 주식매각 △외자유치 △계열분리 등을 통해 2002년 3월31일까지 이를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최근 나돌고 있는 LG의 자금난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시장은 LG의 왕성한 ‘식욕’이 현대처럼 뒤탈이 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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