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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납북자·국군포로 가족의 눈물

“누구 위해 피 흘려 싸웠나”

정부, 국군포로 신원공개 거부 등 소극적 태도로 일관…‘직무유기 아닌가’

“누구 위해 피 흘려 싸웠나”

“누구 위해 피 흘려 싸웠나”
지난 7월 경남 진양 출신의 허모씨 등 4명의 국군포로가 귀환했다. 8·15 이산가족 상봉을 앞두고 실무 준비가 한창이던 때였다. 이들의 귀환은 북한의 국군포로 생존 사실을 확인한 가족들이 나서 이미 1년 이상 추진한 끝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들의 귀환 정보를 입수하고 기자가 확인을 요청하자 국방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사실을 밝힐 단계가 아니며 그 시기는 9월 중순, 그러니까 평양 2차 장관급회담 이후로 미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이들의 귀환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정부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들의 귀환 문제는 국가정보원 소관사항이며 조만간 국정원에서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국정원측은 ‘최근의 국군포로 귀환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통보받은 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귀국 원하는 사람들 외면 … 귀환자도 ‘쉬쉬’

그러나 이번에 귀환한 국군포로의 일부 가족들은 이미 이들의 귀환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특히 경남 진양 출신 허모씨의 경우 이미 98년 중국에서 동생 허태석씨(부산 거주)와 상봉한 바 있으며 이 장면을 모 방송사가 촬영해 놓은 필름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가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비단 정상회담 이후의 화해 분위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40년 이상 누구도 언급하지 않던 국군포로 문제가 94년 조창호 소위의 귀환 이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이후에도 정부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씨의 귀환 역시 가족들이 나서 조씨의 신병을 확보한 뒤 뒤늦게 정부가 끌려들어가다시피 한 경우였다. 그러다 보니 당초 정부는 조씨를 언론에 크게 부각시킬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는 “성수대교 붕괴 이후 궁지에 몰린 정부가 상황 반전을 위해 조씨 카드를 대대적으로 활용한 것 아니냐”고 증언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조씨의 병실을 직접 방문해 귀환 신고를 받는 등 ‘조창호 영웅 만들기’에 정부가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3년 뒤 양순용씨가 귀환하자 정부의 태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했다. 양순용씨 가족은 양씨가 귀환한 후 정부로부터 받은 200여만원의 보상금을 거절하고 이를 국방부에 반납하기도 했다. 당시 이 사건은 국군포로 가족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고, 이런 움직임은 ‘국군포로 지원특별법’ 제정으로까지 이어졌다. 조씨와 양씨의 차이가 단지 장교와 사병이라는 참전 당시 신분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포로 귀환 문제에 관해 공식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더구나 대부분 북한에 이미 부인과 자녀 등 가족을 두고 있는 포로들의 형편상 이들이 무조건 한국 송환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제3국에서 남한의 가족을 만났던 한 국군포로가 이들이 전해준 수천만원대의 돈만 챙긴 뒤 몰래 북한으로 도주해 버린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행을 원하고 있는 국군포로에 대해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한국 땅을 디딘 포로들에 대해서마저 ‘쉬쉬’ 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97년 큰아버지 양순용씨를 데리고 온 조카 양기훈씨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이들의 문제를 정부가 외면하는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000.09.07 250호 (p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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