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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납북자·국군포로 가족의 눈물

국군포로 유해부터 넘겨받자

정치적 입장 떠나 자유롭게 논의 가능…생존자 귀환은 단계적으로

국군포로 유해부터 넘겨받자

국군포로 유해부터 넘겨받자
8월29일 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장관급회담에서 정부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에서는 ‘국군포로는 한 사람도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군포로 문제는 경우에 따라서 남북 협상 자체를 꼬이게 할 수도 있는 ‘뜨거운 감자’나 다름없는 사안이다.

현재 정부는 국군포로 문제를 어디까지나 ‘이산가족 범주 안에서’ 제기한다는 입장이다. 이산가족 상봉에 관해서만큼은 이미 추가상봉까지 예정되어 있는 만큼 국군포로도 넓은 의미의 이산가족이라는 점에서 다룬다면 향후 남북 협상에서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부가 국가를 위해 싸우다가 청춘을 저당잡힌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국군포로 문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해법이 이산가족 상봉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선 전쟁 포로에 관한 처리를 규정하고 있는 제네바협약은 ‘포로는 적극적인 적대행위가 종료한 후 지체없이 석방하고 송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협약에 따르면 당연히 미송환 국군포로는 지금이라도 남한으로 돌아와야 한다. 남한은 지난 1957년 이 협약에 가입했고 북한은 66년에 가입했다. 따라서 남북 모두에 구속력을 갖는 협약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들이 포로로 잡힌 것은 53년에 끝난 한국전쟁 중의 일이다. 남북한이 이 협약에 가입하기 이전에 발생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제네바협약이 소급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제네바협약은 이를 이행하기 위해 이익이 충돌하는 당사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익보호국’을 두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는 이익보호국조차 선정하지 못했다.



또 유엔측과 북한측이 포로 교환 협상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포로 교환 협정을 조인하자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 감독하에 있던 반공포로 2만7000여명을 몰래 탈출시켜 버렸다. 바로 이 반공포로 석방이 지금까지도 북한측이 남한에 대해 ‘국제법 위반 행위’라며 국군포로의 실체를 부인하는 빌미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은, 반공포로 석방은 휴전협정이 체결되기 이전의 일이라는 점에서 북한측이 이 문제를 물고늘어지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측은 전쟁 중에 붙잡힌 국군을 인민군에 억지로 편입시켜 놓고 이를 바탕으로 ‘국군포로는 한 명도 없다. 해방전사만이 있을 뿐이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94년 조창호 소위, 97년 양순용씨 등 생존 국군포로가 40년이 지나 귀환하면서 북한 내 생존 국군포로들의 실상이 드러남으로써 북한측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포로들이 ‘전쟁 영웅’이라는 북한측의 설명과 달리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며 본인은 물론 자식들까지도 신분상의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러한 ‘실체’와 ‘해법’ 사이에서 고민 끝에 나온 정치적 타결방안이 바로 장기수와 국군포로를 맞교환하는 방안이다. 북한측이 이러한 방식에 동의한 적은 없지만 남북 협상에서 충분히 카드로 활용할 만한 방안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명지대 김명기 교수(법학)는 “국군포로-장기수 맞교환 방안이 무산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전제한 뒤 “국제적십자사에 의뢰해 북한이 실체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국군포로들의 자유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이미 남한 가족들의 신고 등을 통해 300명이 넘는 생존 포로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이 명단을 바탕으로 포로 여부와 송환 의사 등 당사자들의 의견부터 공개적으로 청취하자는 것이다.

또한 생존 포로 송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외곽을 돌아오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유해부터 송환하자는 의견도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은 이미 90년대 200여구가 넘는 미군 유해를 인도받은 바 있다. 96년에는 유해 1구를 넘겨받기 위해 200만 달러의 경제적 대가를 지불한 적도 있다. 죽은 자에 관한 한 정치적 입장에서 벗어나 훨씬 자유롭게 논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이미 경기도 파주에 북한군과 중국군 묘역을 조성해 놓은 바 있다. 제네바협약 정신에 따라 사망자의 유해를 존중하고 정부간 인도협정이 체결될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국군포로를 독립변수로 볼 것인지 이산가족의 하위범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싸고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이와 관련한 남북 고위급회담 전략 수립에 참여했던 경북대 허만호 교수(정치학)의 충고.

“포로 문제를 놓고 ‘있다’ ‘없다’는 입씨름을 계속하다 보면 말싸움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18조에 이산가족 재결합에 관한 규정이 있는 만큼 국군포로를 이산가족으로 취급해 이산가족 상봉에서 최우선 순위로 지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을 당사자로 하는 조약이기 때문에 제네바협약과는 달리 현실적 법적 구속력이 남북한 모두에 미치고 있다.

물론 재향군인회나 국군포로 가족 등 당사자들은 강경론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박재규 통일부 장관을 방문해 2차 장관급회담에서 국군포로 문제를 의제로 올리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재향군인회측은 이산가족 상봉과 국군포로 송환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한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정부가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비판하고 있다. 재향군인회측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뒤 ‘장기수 송환’이라는 선물을 주었으니 김정일 위원장도 서울 답방에서 국군포로 송환에 대해 정치적 결단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군포로 송환 문제로 인해 남북 화해 국면이 다시 꼬이는 것은 모두가 부담스러워하는 입장인 것 같다. 국군 포로 가족들도 ‘국군포로 가족협의회’를 결성해 놓은 바 있지만 활동은 미미한 형편이다. 일부에서는 ‘현재 대부분의 국군포로들이 전사자로 처리됐기 때문에 50년간 전사자 연금을 받아온 가족들 중에는 내심 가족 귀환을 원치 않는 사람도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재향군인회 임종섭 안보국장(예비역 소장)은 “300명이 넘는 국군포로를 한꺼번에 돌려받는다는 욕심을 버리고 단계적으로 교환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0.09.07 250호 (p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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