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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의대 유학생들 눈물

중의학은 못믿겠다?

서울고법 한의사 응시제한 판결… 6백여명 취업길 막혀 ‘발 동동’

중의학은 못믿겠다?

중의학은 못믿겠다?
“자격증을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고 시험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건데….”

광주에 사는 강성후씨(36)는 4월3일 서울 고등법원이 “중의학(中醫學) 전공자에게 한의사 시험 응시 제한을 두는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에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의사 시험을 볼 수 없는 졸업증은 휴지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광대 중문과 1기 졸업생인 강씨는 교환장학생으로 선발돼 대만 문화대학에 유학했다. 1년간 석사예비반을 거쳐 대학원에 진학할 즈음인 92년 8월, 한-중 수교가 되면서 대만과는 국교가 단절됐다. 그는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인민대 석사과정에 편입해 중문학을 전공할 계획이었으나 졸업후 진로를 감안해 93년 9월 베이징중의약대학에 입학했다(98년 졸업).

강씨처럼 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의학을 배우러 유학을 떠난 한국 학생이 3000여명에 이른다. 그 중 600명 정도가 졸업했는데, 현행 의료법상 이들은 한국에서 한의사 면허를 딸 수 없기 때문에 개업도 취업도 불가능한 상태다.

그래서 경제적 여건이 된다면 언젠가 법이 개정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 유학기간을 연장하거나(석-박사 과정), 개정을 기다리다 지쳐 미국 캐나다 스웨덴 스페인 등 동양의학이 각광받는 나라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1개 중의대 한국 졸업생들이 모여 결성한 ‘대한민국 중국 중의약대학 총연합회’(위원장 박재길·이하 대중연합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있는 졸업생은 200여명에 불과하다. 그 중에는 생계를 위해 버스운전을 하거나 사업실패로 노숙자가 되고, 발 마사지 업소를 운영하는 등 의료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다. 또 대부분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며 자괴감 속에 살아가고 있다.

강씨가 유학 당시 한의사 자격취득을 낙관했던 것은, 90년말 우리 정부가 상해중의학원 출신 중국교포 김연휴씨에게 국가시험응시자격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 명의의 자격인정 통보서에는 “그간 중국의 의료제도, 의료인 배출 교육기관 및 면허제도 등을 신중히 검토한 결과 중국을 ‘보건사회부 장관이 인정하는 외국’으로 인정해 응시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다수의 한국 유학생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유학생들이 형평성 문제를 따지자 보건복지부는 “김연휴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미수교국일 당시 귀순자로서 대공산권 문호개방정책을 감안하여 … 특별히 인정한 경우이므로 유학생 문제와는 별개”라고 답변했다.

유학생들은 정부를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서울 고법의 판결은 베이징중의약대학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권영자씨(35)가 “중국에서 중의학(中醫學)을 전공한 사람에게 국내 한의사 시험 응시자격을 주지 않는 근거 법률인 의료법 5조가 헌법상 평등에 위배된다”며 위헌 신청을 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의사 자격시험은 인간의 생명에 직결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뽑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복지부 장관의 인정 절차를 통해 응시자격을 제한한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 것도 아니다”며 기존 입장만 확인했다. 그렇다면 중의학을 공부한 학생들은 인간 생명을 다룰 자격이 없다는 말인가.

유학생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애초에 잘못 입력된 정보가 모든 판결의 근거자료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는 “재판부가 그렇게 판결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발뺌하고, 재판부는 “복지부가 제시한 자료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며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여기에 중의대 졸업생의 국내 유입을 원치 않는 한의학계의 배타적인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중의대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한국 의대는 6년제인데 중국은 5년제이며 중의약대학 중의학대학 중의학원 침구골상학원 의학원 등이 혼재돼 있고 3년제의 함수반(통신대학)까지 있어 우리의 교육제도와 크게 차이가 난다. 둘째, 한국 한의대에서는 사상의학뿐만 아니라 해부학 면역학 양방생리실습 양방병리실습 양방진단학 등 동서양 의학지식을 함께 배우지만 중의대는 양방과목을 서너개밖에 안배운다. 셋째, 한의학과 중의학은 이론과 임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중연합회의 조성원이사(천진의대 졸업)는 “의료인의 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교육의 질인데, 중국의 교육 양이나 강도가 결코 한국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순히 수업일수로 비교하면 중국은 1학기당 21주(법정일수는 20주나 대개 21주 수업)로 5년이면 210주가 된다. 더욱이 4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여름방학 없이 3, 4주 가량 집중적으로 임상실습을 하기 때문에 이것까지 포함하면 213주나 된다고 한다. 반면 한국은 1학기당 16주로 6년을 공부해도 192주다. 학제가 5년이라는 것만으로 공부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단견이라는 것이다.

또 중의대에서 배우는 양방과목이 3, 4개밖에 안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이 한국보다 더 많은 과목을 배운다고 주장한다. 다만 중국의 특성상 면역학과 기생충학을 하나의 교과서로 배우는 등 통합과목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보건복지부도 최근에는 한의사 시험 응시제한의 근거를 한의학과 중의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쪽에 두고 있다.

그러나 권영자씨 대리로 소송을 진행해온 한헌구씨(74·권씨의 시아버지로 사설 중의학연구소를 운영중이다)는 애초에 한의학(韓醫學)이라는 용어부터 잘못됐다고 설명한다.

“86년 의료법을 개정하면서 漢醫學과 韓醫學으로 혼용되던 것을 韓醫學으로 통일했습니다. 당시 개정 이유는 ‘우리나라 전통의학인 한의학을 주체적인 민족 고유의 의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했죠. 그러나 독자성을 강조하다가 세계 어디에서도 통용되지 않는 ‘韓方’을 만들어버린 겁니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 이 분야를 공부한 학생들이 학력을 인정받을 길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의료법 5조 3항에서 국가시험자격을 ‘한방의학을 전공하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는 외국의 학교를 졸업한 자’에게 준다고 돼있는데 ‘漢方’이 아니라 ‘韓方’이에요. 중국 어디에서 ‘韓方’을 가르칩니까? 처음부터 중의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국내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것이죠.”

현행 의료법의 모순된 조항을 조목조목 찾아내고 있는 권씨는 중의학과 한의학을 별개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자랑하는 허준의 ‘동의보감’도 대부분 중국 원전을 정리한 내용이고 그중 일부만이 독자적인 연구라는 것.

어쨌든 중의대 출신 유학생들은 올해부터 보다 적극적인 권리찾기운동에 나선다. 민원 내고 답변 기다리는 식의 소극적인 운동에서 탈피해 대중연합회를 중심으로 법정투쟁과 대국민 홍보용 장외집회도 준비중이다. 모호한 법조항 때문에 피해를 보는 데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며,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재판부에 제시한 자료가 위증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위헌청구도 할 계획이다. 바야흐로 한-중 의학계의 정면충돌은 불가피해졌다.

中醫大 출신 한국 유학생들의 투쟁일지

91년 옌볜 22명 헤이룽강 4명 첫 중의학 본과 입학.

92년 한-중 수교.

96년 7월 첫 중의학 본과 졸업생 배출.

97년 7월 제2기 졸업생 배출, ‘한의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인정’에 관한 행정소송(패소).

98년 6월 ‘한의사 국가고시 응시 자격인정’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소송(패소).

99년 5월 ‘보건복지부 장관 인정의 외국 한의학대학’에 관한 고등법원 소송(패소).

99년 10월6일 ‘한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인정”에 관한 고등법원 소송(패소).

2000년 3월31일 ‘한의사 국가시험 응시자격인정’에 관한 고등법원 소송(패소).


‘의료법 제5조’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 의료인의 면허와 관련된 조항. 5조 3항에 국가시험 자격 조건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외국 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의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 면허를 받은 자’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의학 분야에서 장관이 인정한 외국대학은 한 군데도 없는 데다, 중의학에서는 면허제도 자체가 없어 의도적으로 중의학을 배척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주간동아 230호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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