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9

2000.04.13

‘작은 공간 큰 감동’ 새 클래식 명소들

서울 도심에 다목적 문화공간 잇따라 개관…“미술서 영상-음악 분야로 영역 확대”

  • 입력2006-05-10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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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공간 큰 감동’ 새 클래식 명소들
    IMF한파가 제일 먼저 찾아왔던 미술과 공연 문화계에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다. 다목적 문화 공간들이 잇따라 문을 열거나 새 단장을 하고 작품과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27일 LG아트센터가 LG강남사옥에서 첫 번째 공연을 시작했으며 서울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가 개관 준비에 한창이다. 여름엔 흥국생명 신문로 신사옥 내에 미술 및 영상 문화공간이 문을 연다. 신축된 무교동 SK사옥 내에도 ‘미디어센터’라는 복합 문화공간이 들어선다. 여의도 CCMM빌딩(국민일보 사옥) 지하에 위치한 영산 아트홀은 클래식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존재하는 미술관들이 영상과 음악 분야로 영역을 확장해 가는 경향도 뚜렷해져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술관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로 유명해진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은 지난해 말 대대적인 음향 보수공사를 끝내고 올초부터 아예 3층을 ‘금호 리사이틀 홀’이라는 이름의 전문 공연장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선재아트센터와 가나아트센터도 미술 전시 외에 각각 독립영화와 공연장으로 고유한 관객층을 확보해 가는 중이다.

    최근 문을 연 문화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 대형 공연장이나 미술관이 아니라 중소형의 아담한 규모라는 것. 대신 예술 장르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최고의 공연 시설과 편안한 좌석을 갖추고 있다. 도심에 위치해 대중교통수단으로 접근이 쉽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LG아트센터(1100석)의 경우 가변적인 음향 조절 시스템을 설치해 음악, 연극 등 모든 공연예술 장르를 가장 좋은 조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강남과 분당권 시민들을 주요 관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테헤란밸리의 사람들과 강남역의 젊은이들에게 ‘아날로그’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연암문화재단(이사장 구자경) 김주호부장의 말이다. LG아트센터에서는 오는 8월20일까지 개관 공연이 열린다. 4월3~6일 열리는 독일의 천재 안무가 피나 바우쉬-부퍼탈 탄츠 테아터 공연, 호주의 신체극단(physical theater)을 초청한 ‘서커스 오즈’(5월3~8일)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모키 조스 카페’(5월18~31일), 로열 세익스피어 컴퍼니의 ‘말괄량이 길들이기’(6월6~10일) 등이 기대를 모으는 프로그램이다.

    영산아트홀(710석) 역시 도심의 인구를 대상으로 한 클래식 전용 공연장으로 음반 녹음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매월 두 번째 수요일 KBS와 함께 여는 무료 정오 음악회가 주부와 직장인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재단법인 순복음교회가 운영하고 있으며 조용기목사의 부인 김성혜씨가 관장이다.

    금호 리사이틀 홀(171석)은 규모가 작다는 것이 오히려 클래식 악기의 소리를 따뜻하게 감상하게 하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매주 화, 목, 금요일 세 번의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화요일은 14세 미만의 어린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무대이고, 목요일에는 고교생과 대학생들이 공연하며, 금요콘서트는 기성 연주자들이 출연한다. 금호재단의 김정연씨는 “공연도 관객 스스로 참여하는 장르라는 의미에서 모든 음악회는 초대권 없는 100% 유료연주회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트선재센터는 클래식 음악회에서 실험적인 미술, 독립 영화, 언더그라운드 밴드까지 새로운 문화 현상을 빠르게 수용해 보여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매월 세 번째 일요일 열리는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다. 입장료 4000원으로 공연도 보고 전시장에도 들어갈 수 있다. 아트선재센터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주차장 프로젝트’는 젊은 미술가들의 작품 발표 공간으로 자주 흥겨운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모기업인 대우그룹의 위기로 아트선재센터의 미래도 불확실하긴 하지만 기업과 미술애호가들로부터 후원금을 충당해 전시를 기획하는 등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의 정상 운영을 위해 발벗고 뛰어다니는 김선정부관장(김우중회장의 딸)의 힘과 인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서울 시립박물관 건너편 흥국생명 사옥 내 복합문화공간은 전시장과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운영될 예정이어서 영화계의 기대를 모으는 곳이다. 태광그룹이 출자한 일주 학술문화재단이 운영을 맡은 영상관은 필름 35mm(300석)는 물론, 16mm(80석), 비디오 상영이 가능하다. 영화 기획은 동숭씨네마텍을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는 영화사 백두대간에 ‘아웃소싱’했다. 일주 학술문화재단의 허정민씨는 “1층과 지하가 미술과 영상, 여가 시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문화공간으로 기획됐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최초로 외국에서 볼 수 있는 시네마테크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최태원 SK그룹회장의 부인이자 노태우전대통령의 딸인 노소영씨가 운영을 맡은 ‘SK미디어센터’는 기업이미지를 고려해 테크놀로지가 중심이 되는 미디어아트로 방향을 정한 상태다. 미술관과 영상관이 들어선다는 것이 결정됐으나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난 경험으로 보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문화사업이 경제 상황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서 잇따라 문을 여는 무대를 보는 시선 또한 조심스럽긴 하다. 그런 점에서 LG아트센터가 안정적인 운영자금을 확보하고 문을 열었다고 자랑하는 것이나 일주 학술 문화재단에서도 ‘절대 돈 벌기 위해 영상관을 운영하진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사실은 일단 반갑게 들린다.

    LG연암문화재단 김주호부장은 “아트센터 건설 도중 IMF를 맞아 개관이 불확실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에서 문화가 수익사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면서 “연간 60억원의 적자는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경영을 소유주의 인척이 아닌 전문 예술행정가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아진 것도 새로운 현상이다.

    한편 98년 명배우 회고전을 시작해 영화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이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영상자료원이다. 영상자료원은 저렴한 이용료(연회비 3만원, 일일 회원은 영화편수에 상관없이 1000원) 덕분에 영화학도들이나 장-노년층이 즐겨 찾는다. 자료열람실에서는 비디오 감상도 가능한데 옛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용 비디오테이프를 자료로 확보해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이어서 우리나라에서 출시된 모든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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