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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개혁 딜레마

빚더미 ‘한전’은 DJ정부 골칫덩어리

빚 33조 이자만 매년 3조…요금 인상·구조조정 악역 떠안을 판

빚더미 ‘한전’은 DJ정부 골칫덩어리

빚더미 ‘한전’은 DJ정부 골칫덩어리
요즘 한국전력이 시끄럽다. 한전의 자회사로 종합기술 용역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전력기술㈜의 일부 노조 세력이 지난해 10월부터 최수병 한전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사실상 농성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총선 이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한전의 내홍(內訌)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되지 않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김대중대통령은 지난 3월초 YTN과의 인터뷰에서 “한전 구조조정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전은 무려 33조8000억원이라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데, 이중 7조원(68억9000만달러) 정도가 외채다. 이로 인해 한전은 원금의 10% 가량 되는 3조원 정도를 매년 이자로 지불하고 있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김대중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초지일관 한전 구조조정을 강력히 표명해 오고 있는 것이다.

역대 정권 요금 안올리기 선심

이에 대해 한전과 한전 자회사의 노조원들은 결사 반대하고 있다. “종업원들의 고용은 100% 보장해 주겠다”고 해도 반대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15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된 전력산업 개편 법안이, 16대 국회가 개원해 다시 상정되면 한전 구조조정 논란은 더욱 거세게 재연(再燃)될 전망이다. 야당의원들이 이 법안 통과에 반대할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 그런데 여당 의원들까지도 ‘지역구’와 ‘표’를 의식해 이 법안 통과에 협조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따라서 한전 개혁은 ‘김대중 대 모든 세력’ 간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현상은 김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과연 김대중대통령은 개혁의 원론에는 ‘찬성’해 놓고도 개혁의 구체화 작업에는 ‘결사 반대’하는 모순된 현상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



‘표 1’은 한전이 왜 빚덩어리 기업이 됐는지를 명쾌히 보여주는 자료다. 전두환정부가 출범한 81년부터 김대중정부가 집권한 98년 사이 소비자 물가는 140.4%나 올랐는데, 전기요금은 오히려 6.7% 내렸다. 그동안 한국의 전력기술이 놀랄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전기요금을 내린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전은 ‘예고된’ 분규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매년 250만kW 정도씩 전기 소비량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북한은 700만kW 정도의 발전시설을 갖고 있으나, 시설 노후화 등으로 인해 실제 생산하는 전기는 250만∼300만kW 내외다. 북한 전체 생산 전기량에 맛먹는 막대한 전력이 매년 더 소비되기 때문에 한전은 발전소 건설에 거액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대개 원자력발전소 한 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이 100만kW이므로 한전은 매년 원전 2.5기를 지어야 늘어나는 소비량을 맞출 수 있다. 원전 한 기 건설 비용은 대략 2조원 정도이므로 한전은 매년 5조원 정도를 발전소 건설비로 투자해야만 한다. 이 5조원은 전기를 팔아서 번 돈으로 충당해야 한다. 따라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했음에도 지난 20여년간 모든 정권은 전기요금 인상을 강력 억제해 왔다.

전두환대통령은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정권으로 기록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후계자에게 미루었다. 하지만 노태우대통령도 전기요금을 올린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아 YS에게 공을 넘겼다. YS 역시 이 공을 재빨리 DJ에게 ‘패스’해 버렸다. 그런데 한전 개혁을 주장하는 DJ조차도 현재까지는 전력요금 인상을 거론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전기요금 인상은 권력에 부담스러운 문제인 것이다.

이런 속사정 때문에 97년 일본의 kWh당 평균 전력요금은 200원이 되었으나 한국은 3분의 1 수준인 72원(98년)에 불과했다. 이렇게 싼 전기요금 덕분에 IMF 환란으로 크게 위축됐던 한국의 모든 산업들이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다. 하지만 한전은 지난 20년간 누적된 부담 때문에 33조8000억원의 빚을 지게 되었다. 이 거대한 ‘종양’(빚)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 20년간 올리지 못한 전기 요금을 합산해서 대폭 인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안은 너무 충격적이다. 한꺼번에 전기요금을 인상하면 값싼 전기요금에 의존해 근근히 경쟁력을 갖춰온 국내 기업들은 ‘서리맞은 호박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요즘 상종가 행진을 계속하는 벤처 산업도 하루아침에 고개숙일 것이다.

제조업과 벤처 산업이 무너지면 증시가 폭락하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 97년보다 더 큰 환란이 닥쳐올 수 있다. 따라서 김대통령으로서는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 한전의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김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산업자원부가 그 방안으로 내놓은 것이 발전소 매각 방안이다. ‘표 2’에서처럼 전국의 발전소를 6개 그룹으로 묶어, 6개의 발전 자(子)회사를 만든다. 이 중에서 원자력과 수력발전회사는 한전이 직영하고, 나머지 5개 회사는 민간 기업에 매각한다는 것이다.

산자부는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라 이름붙인 발전회사들이 500만kW 내외의 발전시설을 갖도록 발전소를 나눠놓았다. 여기에 건설중인 발전용량을 합쳐 5개 발전회사들은 북한 전체 발전시설량과 비슷한 700만kW 남짓한 시설 용량을 갖도록 했다. 산자부는 이 거대한 새끼 공룡(발전회사)들에 한전이 진 부채를 일정 비율에 따라 전가시킨다. 전체 한전 자산에서 5개 발전회사가 차지하는 비율이 55%이므로, 33조8000억원의 부채 중에서 55%인 18조5000억원을 이 회사들에 떠넘기는 것이다.

산자부는 5개 발전회사의 총자산을 34조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따라서 5개 발전회사를 전부 매입하는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는 15조5000억원만 현금으로 내고 나머지 18조5000억원의 빚을 떠안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한전은 매각대금 15조5000억원으로 한전이 지고 있는 45%의 나머지 빚 15조3000억원을 너끈히 갚을 수 있으므로,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도 빚을 청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발전회사를 매입하는 회사는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기업이 될 수도 있다. 특급 보안시설인 발전소 소유권이 외국기업에 넘어가는 것은 ‘쓰라린’ 국부(國富) 유출일 수도 있지만,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고 한전의 부채를 청산하려면 현재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발전회사 매각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을 팔 때, 판 사람은 매각대금의 일정 비율을 양도세로 내고, 국민주택 채권과 도시철도 채권을 의무적으로 매입하여야 한다. 5개 발전회사를 매각하면 한전은 양도세로 2조9000억원, 채권 매입으로 6000억원, 도합 3조5000억원 정도를 지출해야 한다.

발전회사 매각으로 생긴 15조5000억원에서 부대 비용 3조5000억원을 빼면 12조원이 되므로 15조3000억원의 빚을 다 갚을 수 없다. 따라서 발전회사 매각에 앞서 ‘한전이 발전회사를 매각할 때에는 양도세 납부와 채권 매입을 면해준다’는 내용의 특별법을 제정해 줘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 제정은 여타 기업과의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한전은 외채를 빌릴 때 ‘한전이 외채로 지은 자산을 매각할 때는 채권자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이면 계약을 맺었다. 따라서 발전회사 매각에 앞서 돈을 빌려준 외국은행으로부터 발전회사 매각에 관한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동의는 한전이 발전회사를 매입한 회사로부터 매각대금을 받을 때까지는 일시적으로 원리금에 대한 상환을 중단한다는 ‘디폴트’(default) 선언으로 이어진다.

디폴트는 국가가 외채에 대한 지불유예를 선언하는 ‘모라토리엄’(moratorium) 못지 않게 국가의 신뢰도를 약화시키는 조치다. 한전이 디폴트를 선언해 놓고 무사히 발전회사 매각을 마치려면, 한전 개혁을 추진하는 정권은 국내외로부터 강력한 신뢰를 받아야 한다. 임기 말로 접어든 김대중정부가 국제 사회로부터 과연 이러한 신뢰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같은 문제 때문에 한전 개혁안 관철은 쉽지 않다.

대처 전 영국총리는 이러한 일을 과감히 해냈기 때문에 ‘철(鐵)의 여인’으로 불린다. 92년 대선에서 실패하고 ‘야인’으로 돌아가 영국 옥스퍼드에 체류하며 영국의 전력산업 개편을 지켜봤던 김대통령이 과연 한국의 대처가 될 것인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디폴트의 위기를 넘기면 또 다른 ‘해일’이 닥쳐온다. 매년 250만kW씩 늘어나는 발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회사를 매입한 회사는 새로운 발전소를 착공해야 한다. 이때 민간 발전회사들은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발전소 건설 비용을 마련할 것이므로 전기요금 인상은 필연적이다. 한전 구조 개편의 결과가 전기요금의 가파른 인상이라면, 상당수의 국민은 한전 구조개편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김대중정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게다가 한전 노조원들이 국부 유출을 이유로 매각 반대투쟁을 벌이면 한전 개혁은 죽도 밥도 안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전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도 없다. 김대중정부는 진퇴유곡의 위기를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국민을 상대로 전기요금 인상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국민으로 하여금 변혁이 초래하는 위기에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전력인은 “한전 개혁은 김대중정부가 통과해야 할 ‘좁은 문’이다. 이 좁은 문은 ‘전기요금 인상이라는 인기없는 정책을 펼칠 배짱이 있는가’란 질문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29호 (p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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